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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이민온 베트남 가족, 엄마는 네일샵에서 일하고 19살 아들 ‘하이’는 집안에서 유일한 대학생이었다가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약에 취해 하루하루 폐인처럼 지낸다. 사랑하던 연인이 돌연 자살하면서 상실감에 자포자기 상태가 된 것. 가난한 베트남 이민자이자 성소수자인 그에게 미국 사회에서 발 붙이고 살아가기란 너무나 막막했다. 영문도 모른 채 아들에게 실망한 엄마가 퍼붓는 폭언을 참다못해 하이는 그만 의대에 합격했다며 의사가 될거라는 거짓말을 한다. 졸지에 엄마의 환대를 받으며 다시 집을 떠났지만, 갈 곳도 할 일도 없는 하이는 철교 위에 올라 자살을 결심한다. 이를 목격한 노부인이 그를 만류하고, 치매를 앓고있던 그녀를 도와주는 대가로 하이는 숙식을 제공받는다. 가족을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할머니 그라지나는 미국에 오기 전 전쟁통에 남동생을 잃었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정신이 없을 때는 하이가 자신을 도와주러 온 군인이라고 생각하며 동생과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하이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홈마켓이라는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그곳에서 자폐를 가진 사촌 동생 소니와 다른 괴짜 동료 직원들을 만나 우정을 쌓아간다. 가난, 인종차별, 마약, 질병, 장애에 시달리는 하류계층 사람들이 서로의 처지를 돌보고 지켜주는 찌질하면서도 짠내나는 감동이 있는 이야기. 그라지나는 자신의 남편이 모아놓은 낡은 물건들이 가득한 쓰레기더미 지하실 한 공간을 하이에게 제공한다. 거기에서 하이는 죽은 연인과의 추억이 담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으면서 암담하고 고단한 하루 중의 안식을 취한다. 그러나 그라지나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아들 루카스는 억지로 그녀를 다른 보호시설로 보내려하고, 이를 막아보려고 애쓰는 하이와 과거와 현실을 왔다갔다하며 혼란스러워하는 그라지나의 스쿠터 탈주가 이어진다. 결국 붙들려 차에 태워지는 그라지나를 보며 하이는 허울좋은 말뿐인 자유에 갇히는 그녀와 미국 안에 갇힌 자신의 처지를 겹쳐 생각한다. [ 그런데 그라지나는 어디로 가나? 그가 가는 곳에는 자유가 약속되어 있지만, 그 자유는 벽과 자물쇠로 이루어진 억제된 평등주의적 공간 안에서만 가능하다. 끝없는 타지(他地) 출신의 직원들이 낯선 타인들이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느라 자기 자식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기는 포기하고서, 긴 복도를 오락가락하며 매일 정해진 양의 영양분을 배급해주는 곳. 당신의 몸이 아직 따뜻한 동안 은행 계좌에서 돈을 빨아내기 위해 당신을 살아 있게끔 지켜주는 곳. 안정제로 움직일 수 없게 된, 배부르고 감각이 없어진 몸이 숙성 단계를 지날 만큼 농익어가는 곳. 그라지나는 결국 미국으로 가고 있었다. 진정한 미국. 모두가 거기 가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 저자가 시인이라는데, 역시 시인이 쓴 소설은 약간 다른 분위기가 있는 듯.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장면 묘사도 굉장히 시적이다. 암울하고 어두운 구석이 많은 소설이지만, 비단 미국 뿐 아니라 작금의 삭막한 자본주의 사회 어디에서도 누구나 느낄 법한 소외와 혼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서로 따스하고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것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우리들이라는 것. 누누히 되뇌이지만, 원래부터 세상에 희망이란 없는 것이다. 그래도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 중요한 것일 뿐.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 그게 제일 쎈거다. _______ “미안해요, 할머니.” 그는 베트남어로 말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해, 노아. 미안해, 엄마. 소니, 킴 이모, 민 이모부. 나는 여러분 모두를 실망시켰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나는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이는 돼지의 살짝 열린 입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서 프랙털 모양으로 반짝이는 초록색 빛이 보였다. 그것은 헛간 판자들 사이로 비쳐드는 아침 햇살이었다. 피부에 닿는 온기가 느껴졌고,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앞에 소니의 얼굴이 보였다. 소니가 하이의 뺨에 입김을 불고 있었다. 유리창에 김을 서리게 만들어서 손으로 글씨를 쓸 때처럼. “너 잠꼬대했어. 그리고 엄청 슬퍼 보였어.” 소니가 말했다. “그래서 괜찮아를 써주려고.” 소니가 하이의 뺨에 손가락으로 괜찮아라고 끼적였다. “자, 됐다.” 소니가 만족한 듯 말했다. “새것처럼 됐어.” 기쁨의 황제 | 오션 브엉, 김지현 저 #기쁨의황제 #오션브엉 #인플루엔셜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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