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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베트남인으로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미군과의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글을 읽지 못하는 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며, 인종차별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면. 그런 조건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긍지나 자랑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스스로를 축소하고 침묵하는 쪽이 더 자연스러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쓰기를 택한다. 읽히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편지를 쓰고, 도달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말을 건넨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한 행위라기보다, 무너진 자리에서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방식에 가깝다. [지금껏 저는 저 스스로에게 우리가 전쟁으로부터 태어났다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제가 틀렸었어요, 엄마. 우리는 아름다움으로부터 태어났어요. 누구도 우리를 폭력의 열매로 오인하도록 내버려두지 마세요. 그 폭력, 그 열매를 관통했던 폭력은 열매를 망치는 데 실패했어요.] 베트남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다 결국 미국으로 건너와 또 다른 차별과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삶. 그 조건만 놓고 보면 이들의 존재는 쉽게 ‘폭력의 결과’로 축소될 수 있다. 그러나 오션 브엉은 그 해석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는 자신과 가족의 기원을 전쟁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다시 말한다. 폭력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 폭력이 인간의 본질까지 파괴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선언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선택처럼 읽힌다.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는 이유로 자신을 훼손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며, 작가는 그것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저는 다시 아름다움에 대해, 어떻게 무언가가 우리가 그것들을 아름답게 여겨왔다는 이유로 사냥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 매혹적이려면, 우리는 우선 보여야 하는데, 보인다는 것은 사냥당하는 걸 허용한다는 것이죠.] 이후 이어지는 문장은 아름다움에 대한 또 다른 층위를 보여준다. 아름다움은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로 위험을 불러오는 조건이기도 하다. 매혹적이라는 것은 눈에 띄는 것이고, 보인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에 노출된다는 뜻이며, 그 시선은 언제든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사냥당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누군가가 욕망하고 질투할 만한 어떤 ‘빛’이 존재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는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도 말한다. 석양이 몇 분 만에 사라지듯, 우리가 매혹적이라고 부르는 순간 역시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 전체 역시, 그리고 그 안의 고통과 상처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이 소설이 인상적인 이유는, 그 ‘남아 있음’을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끝내 ‘말하려 한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어머니는 글을 읽지 못한다. 결국 이 편지는 도달하지 않을 편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여진다. 말해지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말하기는 전달을 위한 행위라기보다, 존재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식이다. 상처받은 삶이라도, 그것을 말하는 순간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트레버와의 관계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감각의 중심이다. 그 관계 속에서 화자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이는 존재”가 된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감각, 몸으로 먼저 느껴지는 연결, 그리고 그 안에서 경험하는 강렬한 생의 감각. 그러나 그 관계는 동시에 불안정하고, 결국 상실로 끝난다. 사랑은 그를 구원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런데 바로 그 상처 때문에 그는 말하기 시작한다. 그 경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남는다. 도시의 세세한 것들을 뒤덮은 눈처럼, 사람들은 우리라는 사건이 일어난 적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생존이 신화였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우리는 분명 존재했고, 그 시간은 실제였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이렇게 말해지고 있다.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삶이라도, 말해진 순간 그것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받은 삶이라도, 그것을 말하는 순간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_________ 도시의 세세한 것들을 뒤덮은 눈처럼, 사람들은 우리라는 사건이 일어난 적이 없다고, 우리의 생존이 신화였다고 말할 테죠. 그러나 그들은 틀렸어요. 엄마와 저, 우리는 진짜였지요. 우리는 기쁨이, 우리 입술의 꿰맨 부분을 찢어버릴 거라는 걸 알고 웃었어요. 기억하세요. 규칙은, 거리들처럼 엄마를 ‘알려진’ 장소로만 데려갈 수 있을 뿐이에요. 격자 밑에는 들판이 있어요. 늘 그곳에 있었죠. 그 들판에서 길을 잃는 건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 단순히 더 가는 거예요. 하나의 규칙으로서, 더 가세요. 하나의 규칙으로서, 엄마가 그리워요.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 오션 브엉, 김목인 저 #지상에서우리는잠시매혹적이다 #오션브엉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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