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유물을 응시하면, 유물도 당신을 응시한다
타이베이 고궁의 국보 36점으로 들여다보는 미에 대한 광적인 추구
공습, 무너짐, 야간 이동, 폭격 속에서 살아남은 소장품들
천하를 돌며 수집하고 명산에 숨겨져 있던 것을 찾아내다
각 유물은 어떤 사연, 역사, 예술사를 농축하고 있는가
일상이 유물처럼 탁월해질 때까지
유물을 감상하려면, 해설하려면 이 사람처럼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정잉의 『애착 유물』이다. 감식안과 해석, 해설, 글쓰기에서 발군의 기지를 발휘하고 있다. 중국 고전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런데 사흘이 멀다 하고 이들과 함께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간다. 문턱이 닳고 신발창이 해지는 만큼 유물에 대한 박식과 애정이 깊어져, 총 36점의 보물을 소개하는 데 500쪽 분량의 책을 쓰게 됐다. 저자는 역사적 지층을 세밀화하고, 해석을 다양화하며, 글의 결을 풍부히 하면서 총천연색 유물 해설을 선보인다.
책의 콘셉트는 황제들의 다보격에서 빌려왔다. 다보격은 서랍식 수납 상자로 황제들은 몹시 아낀 유물을 수집·정리·분류·귀납해 여기에 담아두었다. 저자는 그들 황제처럼 독자들의 다보격에 총 36점의 유물을 담아드리겠다고 말한다. 국내외 도자기와 가마터를 보려고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파편들만 봐도 황홀해하고, 역사와 문학을 아울러 당대의 예술적 심상 속으로 파고들었기에 저자의 선별 기준은 신뢰할 만하다.
저자의 변별성은 첫째, 시계를 거꾸로 돌려 유물이 제작된 당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데 있다. 36점 모두 느릿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둘째, 당대의 장면들을 드라마로 극화해 펼치는 기량이 있다. 이는 후각, 청각, 시각, 촉각이 총동원된 결과다. 셋째, 사물을 보는 심성이 단련되어 있다. 즉 유물을 눈으로 보기보다 완상으로 유물 안에서 뜻을 기를 줄 아는 자질을 지녔다. 넷째, 언어 미감과 정서적 환기의 탁월성을 지녔다. 가령 여요를 보고 쓴 ‘시야에 푸른 샘물이 들어온 것 같아 마음이 고요해진다’와 같은 문장은 빛난다. 저자의 마음은 유물을 비추는 거울일 뿐 아니라 독자(관람객)의 마음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 유물에 상응할 만한 언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책의 특징 가운데 문체를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경어체의 극진함으로 독자 마음의 문을 열며 단락마다 달콤한 문체의 열매를 맺고 있다. 경어체는 보통 쉽고 친절하게 다가가기 위한 도구로 여기기 쉽지만, 저자는 유물 제작자와 수장가에 대한 경외의 마음까지 문체에 담아 역사 인물들과 현대의 독자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한다. 이로써 독자의 일상을 유물의 역사만큼이나 탁월함과 고상함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여백에 도는 빛깔을 보고 흰색의 곤경을 돌파하다
당신의 도랑과 연못 또한 농묵과 중채로 물들길
타이베이 고궁의 유물들 가운데 저자가 최고로 꼽는 것은 ‘북송 여요 청자무문수선분’이다. 이 작품에 대한 묘사를 보자.
“그의 아름다움은 야트막한 타원형 기물 형태, 바닥을 받친 네 개의 운두, 안정적인 태골에 있습니다. 그의 아름다움은 기물 전체에 발린 유약의 함치르르하면서도 부드러운 청천빛 유색에, 가장자리의 유약이 얇게 발린 곳에서 도는 은은한 분홍빛의 훈색에도 있습니다. 기물 전체가 깨끗하고 무늬가 없어서 구름은 가볍고 바람은 산들거리는 푸른 하늘 같은데, 마치 시간의 통로로 송나라에서 청아한 미감을 가져온 듯합니다. (…) 장인들은 미쳐야 산다는 기세로 유약에 마노 분말을 넣어서 은은한 분홍빛 광택이 드러나게 했습니다. 치구 형태, 즉 아가리가 넓은 형태의 수선분은 그 높이도 연두색 잎맥이 우뚝 선 모습을 완벽하게 드러내기에 꼭 알맞습니다.”
관람자의 눈은 보통 유물의 형태와 빛깔을 먼저 받아들이고 거기서 아름답다거나 슬프다는 감상을 느끼며, 이어서 작품의 기법이나 그것이 품고 있는 역사에 대한 문헌 조사와 해석을 한다. 저자는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의 유물들을 누구보다 많이 감상한 이로서 유물을 깊게 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예컨대 물질과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송나라의 하얗게 빛나는 소박한 정요, 얼음 같고 옥 같은 여요 청자, 그 이후 남송의 관요까지 한달음에 안내하면서 “이것은 송 명리학의 시대로구나!”라고 깨우치게 한다. 성리학의 정심靜心과 격물格物, 절제의 사상을 미학에 적용하며, 생활 용기까지 이토록 담백하게 만든 데서 사물을 관찰하고 도를 깨닫는 법을 알려준다.
자기만의 동선을 확보하고, 눈비 오는 날에도 박물관을 드나들면서 당신의 도랑과 큰 연못 또한 농묵濃墨과 중채重彩로 물들이고 싶다는 바람으로 부드럽게 이끈다. 가령 옹정제 화법랑의 여백에 도는 빛깔을 보고는 흰색의 곤경을 돌파한 이래 중국 미감이 향하는 곳을 황제 3대에 걸쳐 치밀하게 탐색하는 것이다. 이 책 전체가 창 앞에는 대나무가 있고, 안에는 산수화가 걸려 있으며, 청동으로 된 이정彝鼎이 놓여 있고, 침향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관요 담병에 꽂힌 국화를 응시하는 느긋한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유물은 동경과 같다. 응시하면 자신이 겪었던 시대와 사연이 드러난다. 이를테면 하늘과 땅이 소통한 패스워드가 양주의 옥종玉琮에 드러난다. 섬섬옥수 위에서 춤추는 한대의 옥무인, 남자처럼 씩씩한 당삼채 기사여용, 비가 갠 푸른 하늘처럼 싱그러운 여요 자기, 금홍金紅의 욱영 인장이 찍힌 옹정 법랑산수대완 등에서 응축되어 있던 시간이 서사가 되어 풀려나온다. 이처럼 저자가 바라보았던 자기 한 점 한 점, 거비산수巨碑山水 한 폭 한 폭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만든다.
스스로를 닦달하고 채근한 예술 총감독 황제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이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미감과 유물을 수집할 재량이 있는 황제들 덕분이었다. 그중 청나라 강희제-옹정제-건륭제 3대가 수장한 유물들은 만주사변 이후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옮겨지며 지금의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을 빛내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각자의 사연을, 역사가 농축된 예술사를 품고 있다.
세 황제는 정치와 행정을 넘어 예술 총감독의 기량을 발휘했다. 황제의 심미관은 한 왕조, 한 세대의 예술 성취를 이끈다. 황제의 취향은 까다롭거나 편협할 수도 있지만, 시간의 긴 강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강기슭의 특수한 경치가 된다. 이를테면 옹정제의 모든 성취는 규율이 엄격한 데서 나왔다. 그는 하루 4시간만 자면서 자신이 만들라고 명한 공예품의 제작을 철저히 감독했다. 그리하여 청나라의 피와 살이 유물들 속에 면면히 살아 있으며, 그 디테일은 극치에 이른다. 옹정제의 명령은 모순되는 것들을 모두 아우르는 치밀함을 보였다. “양식은 점잖아야 한다.” “양식은 수려함을 갖춰야 한다.” “태골은 날렵해야 한다.” “태골은 정교함을 갖춰야 한다.” “세세한 곳에도 신경 써라.” 평가가 갈리는 황제이지만 유물만큼은 최상의 솜씨를 가진 장인에게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게 했다. 이 장인들은 시詩·서書·화畫·인印 네 가지를 모두 완벽하게 구사했다. 옹정이 관요 어자의 제작을 전면적으로 주도했다는 것은, 화면의 요소에서 배색에 이르기까지 전부 관여했다는 것을 뜻한다. 강희는 대범했고, 그 아들 옹정은 문인의 노선을 밟았으며, 손자 건륭은 이를 계승하면서도 교묘한 아이디어를 발휘했다.
그러나 이 세 황제 가운데서도 진짜 주인공은 건륭제다. 저자는 그를 륭 오라버니, 륭 어르신, 인장광 등으로 부르며 건륭이 얼마나 뛰어난 궁정의 예술 총감독이었는지를 밝힌다. 아버지 옹정을 이어받아 한 시대의 스타일을 성취하고 싶었던 건륭은 스스로를 압박하고 채근한 덕분에 압도적인 솜씨를 발휘할 수 있었다. 바로 ‘금상첨화’법을 구현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제시·전각, 궁실 내부의 공간 설계까지 자신이 지나간 곳에는 반드시 흔적을 남겼으며, 어느 것 하나 의취意趣로 충만하지 않은 게 없었다. 가령 「부춘산거도」에는 쉰다섯 곳에 평과 도장의 흔적을 남겼다.
일본군의 포화가 점점 집중되던 만주사변 때 시간의 강 속에서 자금성의 고궁으로 하나둘 흘러왔던 유물들은 상자 하나하나에 담겨 다시 강호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1만3427개의 상자와 64개의 짐에 든 유물은 역사상 가장 큰 모험의 여정을 떠나 산과 강과 바다를 지났다. 그 와중에 강희-옹정-건륭 3대의 법랑채 자기 369점은 아무런 고민도 없이 통째로 타이완 고궁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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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유물과 사연 하나하나는 서랍 한 칸과도 같다. 저자는 진심과 사랑, 연모를 담아 이것들을 설명한다. 서랍을 한 칸씩 열고 나면 독자들에게도 미에 대한 광적인 추구가 하나씩 피어날 것이다. 찬연하고도 영원히 바래지 않을 4000년, 5000년 전의 빛이 고요히 스며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