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절반은 이 책 덕분이다. 좋은 의미로.”-독자 서평 중에서
퇴사와 이직 사이, N년차 직장인의 필독서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2019 리커버 에디션 출간
흥미로운 일을 하고 싶은 마음과 월급 봉투 사이에서 매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직장인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책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가 리커버 에디션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단기적 일자리가 장기적 계획을 무력화하고, 눈앞에는 '저성장'의 내리막이 펼쳐져있는 시대.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일에서 의미를 찾고 만족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일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일을 이루는 활동, 일이 낳는 결과와 함께 일이 놓인 차원과 일을 통해 형성되는 국면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라는 문제를 훨씬 더 정교하게 구성하게 된다. 저자 제현주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자신의 욕망을 돌아보는 개인적 차원에서 출발하여 사회가 우리의 능력을 재단하는 기준을 되짚고, 더 나아가 혼자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해답을 찾아보는 지점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몇 시에 퇴근할지도 모르는 세상인데 10년 후라니
:장기적 계획이 불가능한 시대에 일하며 살아가는 법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오늘 저녁 몇 시에 퇴근할지조차 확신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내 24시간조차 통제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이들에게 5년, 10년 단위의 장기 계획을 세우고 실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우리의 일자리 자체가 장기적인 기획과 전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 곳의 직장으로 30년씩 출근하던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우리 세대는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끊임없이 자리를 옮기는 노마드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잠시 동안’만 머물게 되는 직업에서 정체성을 쌓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자신의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괴로움이 생겨난다. 이런 조건 속에서 어떻게 일에서 의미를 찾고 만족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일의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해답을 찾아나선 저자의 끈질긴 모색의 기록이다.
처음만나는 우리 시대 일에 관한 사유
:솔직하고 현실적인, ‘일’에 관한 객관적 응시
일에 관한 고민이 인생의 고민 중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도, 막상 일이 주는 괴로움을 정교하게 따져보기는 쉽지 않다. 쌓이는 피로를 해결하기도 벅찬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가 놓인 사회적 지평을 바라볼 여력을 갖기 어렵기 마련이다. 저자는 먼저 ‘우리에게 일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를 함께 점검해보자고 제안한다.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무엇에 가로막혀 있는지, 무엇은 타협하고 무엇은 고수할 것인지를 세세하게 따져 묻지 않고서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밥벌이의 무거움이 일의 다른 욕망들을 모두 집어삼키는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놀이하듯 일할 수는 없을까? 일을 나의 정체성의 일부로 삼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저자는 이러한 다양한 고민에 답하며 일하기를 조망할 수 있는 너른 시야를 제공한다.
월급이 필요하지만, 월급만으로는 일할 수 없다
:내리막 세상, 우리 시대 일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좌절
요즘 청년세대는 다른 세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직업윤리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일이 꿈을 실현하는 장소여야 한다고 교육받으며 자라났다. 직업이 단순한 생계유지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장기적인 저성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우리 사회가 공급하는 일자리 중에서, 일에서 의미를 찾고 자아를 발견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욕망, 흥미로운 일을 하며 창조성을 발휘하고 싶은 욕망, 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싶은 욕망, 스스로 판을 짜서 능동적으로 일하고 싶은 욕망을 전부 담아낼 선택지는 만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복잡다단한 욕망들을 되짚고 조율하려는 시도를 통해 이러한 좌절을 극복하고자 모색한다. 자신의 욕구를 면밀히 관찰하고, 욕망들 사이의 우선순위를 따져보며, 가능한 현실적 조건을 찾아나갈 때에만 최적의 균형점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