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바로 그 손절의 아이콘이잖아.”
한국 문학과 사회의 바로미터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이후 10년 만의 야심작
소설가 조남주의 신작 장편소설 『재이』를 문학동네에서 펴낸다. 한국 문학과 사회의 바로미터라 불러도 좋을 법한 감각으로 시대의 기분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또 그것을 소설로 지어 독자에게 건네온 그의 네번째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2016년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한 텍스트가 사회·문화 현상으로까지 자리하게끔 문학의 외연을 넓힌 것은 물론, 선보이는 작품마다 긴요하고도 적실한 사회적 화두를 던지며 풍성한 담론과 독자들의 치열한 후기를 생성해왔다. 『82년생 김지영』이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곤경에 대한 핍진한 보고서였다면, 신작 『재이』는 서울의 한 달동네에서 한강 뷰 아파트로 계급 횡단한 한 여자가 써내려간 부와 가난의 포트폴리오다.
소시민적 군상을 모티프로 인물을 향한 넉넉한 공감의 자리를 만들어두던 작가가 이번 신작에서는 입체적이다못해 파편적이고 심지어 분열증적인 인물 ‘재이’를 독자 앞에 내어놓는다. 동창들에게는 손절의 아이콘, 직장 동료에게는 상식이 모자란 사람, 부모에게는 혼자 잘 먹고 잘사는 야박한 딸, 남편에게는 의논도 상의도 겁도 없이 덜컥 집 계약서를 쓰는 여자 재이. 달과 가까운 달동네에서 나고 자라, 마찬가지로 달과 가까운 한강 뷰 초고층 아파트에 입성하기까지, 보금자리(Home)도 집(House)도 없었던 한 여자의 계급적 변천사이자, 지난 반세기 서울 부동산의 위상도, 무엇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한 인간의 인생 역정이 지독하리만치 현실적이고, 외면하고 싶을 만큼 진솔하게 『재이』 속에 담겨 있다.
나는 우범지대에 사는 모범생이다. 상식과 교양이 없는 명문대생이다. 성적이 뛰어나지 않은 장학생이다. 스펙이 뒤떨어지는 대기업 사원이다. 나는 사회에서 만난 동료들과 사고나 행동 체계가 달랐고, 동시에 내 가족은 내가 쓰는 어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가난과 복지에 대해 말하는 부자가 되었다. 때로는 소외감을 느끼고 때로는 죄책감을 느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결과적으로 평생 주변을 속이며 살아온 셈이다. 그 혼란과 모순 속에서 나는 과감하고 가벼운 방식을 선택했다. 버리는 것. 다 두고 떠나는 것. 오류도, 수치도, 어차피 버리면 된다.(56~57쪽)
“계속 높아지고 있어. 신분 상승중이야, 우리.”
달동네에서 한강 뷰 아파트로
한 여자가 써내려간 부와 가난의 포트폴리오
“그 시절, 사람들은 순수했고 이웃 사이에는 따뜻한 정이 넘쳤다는 말을”(147쪽) 재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 가파른 오르막, 극악의 웃풍, 아래가 뻥 뚫린 재래식 화장실. 동네 사람들의 비속어와 음담패설, 일탈과 몰상식이 일반이 되는 달동네. 재이에게 유년과 유년의 공간은 이제 와 특별한 감정은 없지만 “불편하고 더럽고 피로한”(12쪽) 것으로 기억된다. 방치에 가까운 성장 환경, 과한 욕심을 부리면 탈이 난다며 적당한 성공의 선을 그어주는 부모, 그런 부모에게 악다구니를 쓰고 자해도 서슴지 않는 쌍둥이까지. 고만고만한 삶의 가두리 안에서,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을 겪을 때마다 재이의 선택지는 하나다.
부당과 불의가 소나기처럼 내게 쏟아질 때마다 왜 하필 나인지 계속 생각하고 억울해하고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날까 매번 두려워하면서 살 순 없었다. 너무 자주 소나기를 만나는 아이들의 생존법. 안 젖었다고 생각하기, 안 맞았다고 생각하기, 안 보이고 안 느껴진다고 생각하기.(42~43쪽)
그런 재이의 삶에 인생의 첫 조력자인 홍영신 선생님이 나타난다. 리코더 실기시험을 계기로 재이를 기특하게 여겨온 선생님은 이듬해에 담임으로 부임하고, 재이를 한 은행의 장학재단에 장학생으로 추천한다. “그냥 재이한테 마음이 자꾸 가. 네가 잘됐으면 좋겠어”(127쪽)라고 따스하게 말해주는 선생님 앞에서 “그런 얘기 처음 들어봐요”(128쪽) 대답하며 재이는 눈물을 후드득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이후 재이의 삶의 반경은 원가족의 것보다 훨씬 넓어지고, 장학재단의 안정적인 지원을 받아 명문대에도 입학한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 모두와 소소하게 부딪쳤고, 내내 미칠 것 같았고, 그걸 계속 참”아오던 어느 날, 가벼운 반항을 했다가 “아버지에게 빡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맞”(69쪽)은 날, 재이는 언니와 함께 설거지를 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짐을 싼다. “나 간다, 하고”(70쪽) 나왔지만 재이를 붙잡는 가족은 아무도 없다.
그러게. 나 나쁜 년이네. 그럼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잘살아보겠다고, 돈을 벌어보겠다고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열심히 벌어서 내 원래 가족들을 다 책임져야 했을까? 아, 나는 정말 나쁜 년이다.(112쪽)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지만 자꾸만 말하고 싶은 이야기”
‘처음’과 ‘다음’을 여는 작가 조남주
이 세상의 혼자들에게 건네는 홀로 되기와 홀로서기의 기술
각 부의 제목인 단절, 조력자, 성찰적 비순종, 운은 재이가 재이가 아니게끔, 재이가 재이이게끔 만들어준 키워드에 다름 아니다. 원가족과는 물론 친구들과의 ‘단절’,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온전히 외부적 요인인 ‘조력자’, 일탈을 일삼는 곳에서 자신을 똑같이 두지 않는 ‘성찰적 비순종’, 그리고 결정적인 동시에 우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운’. 재이는 그렇게 장학금을 지원해주던 은행에 입사하고, ‘준수’를 만나 결혼하고,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재테크에 성공하고, 제 가난을 팔아 책을 내며 조금씩 조금씩 상승한다. 다만 체화된 가난으로 인해-체득한 부로 인해 그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와 계급을 반추하는 탓에 비난과 자책, 자기변명을 멈출 수 없다.
나는 충분히 가난하고 불행했고, 또 그렇게까지 가난하거나 불행하지는 않았다. 그 사이에서 답답하고 불안했던 것 같다. 느린 속도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한없이 거꾸로 걸어올라가는 기분이랄까. 막막했나. 우울했나. 콕 집어 표현하기 어렵다. 언어가 없으면 감정도 사라진다.(53쪽)
재이는 자신의 “삶 속에서 세상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깨달았고” 자신이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사고의 영역 안에서, 실행하고 책임질 수 있는 역량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218쪽). 그렇기에 “부끄러움도 진심이고, 부끄러움이 부끄러운 것도 진심이다.”(같은 쪽) 그리고 이제 “이 모든 복잡한 마음들이 뒤엉켜 서로를 침범하거나 훼손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까”(같은 쪽) 자문하며 자기 자신을 향해, 독자를 향해 『재이』라는 한 권의 책을 써내려간다.
왜 작가는 소설을 쓰고, 우리는 다름 아닌 소설을 읽을까? 『재이』는 왜 다름 아닌 ‘소설’로 쓰여야 했을까? 실재하는 가난 앞에서, 압도적인 불행 앞에서 우리는 입을 떼지 못하거나, 피상적인 이해를 표하거나, 다소 기만적인 위안을 건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외면을 택한다. “일기에도 거짓말을 쓴다”(208쪽)는 인간의 유구한 자기기만, 배려, 회피 앞에서 ‘소설’은 오히려 내 이야기를 안전하고도 과감하게 쏟아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이건 독자에게도 다르지 않아서, 『재이』를 읽은 이들이라면 자신의 이야기를 그 어디에라도 쏟아내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너의 이야기인 나의 이야기로서, 우리의 가난과 부끄러움은 더 적극적으로 말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