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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에세이’는 이렇게 쓰는 것이다. 나도 한 번 책을 내보자 하는 욕심에 별 것도 아닌 끄적임을 에세이라며 묶어내는 요즘의 세태와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고급진 에세이의 모범인듯 하다. 신변잡기인듯 하지만 그 감정과 성찰, 고뇌의 깊이가 남다른 박경리 선생님의 글. 짧지만 묵직하고 시시하지 않다는 것이 너무 놀랍다.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이 되었고, 금쪽같은 외아들도 먼저 저세상으로 앞세운 경험. 박경리 선생님의 슬픔과 고뇌가 가짜가 아닐 수밖에 없음은 너무나 분명하다. 홀로 생활전선에서 원고마감날짜와 싸워가며 치열하게 사는 와중에도 박경리 선생님은 당시의 비극적인 정치•사회적 문제들에도 침묵하지 않았다. 작품 속에 수록된 <어린 비둘기를 더 이상 욕보이지 말라>는 4.19 혁명 당시 계엄군과 정부를 향해 날린 박경리의 메세지다. “ 무엇이 이들 천진한 청소년들을 항거의 길로 몰아넣었는가. 그들은 비겁하고 안일에 빠진 어른들을 타기했을 것이다. 그들은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운 추악한 어른들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언행이 상반된 상업주의적인 교육자를 경멸했을 것이다. 이제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우리들이 힘을 합하여 호소해보자고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평화적인 데모는 어찌하여 불법으로 탄압을 받아야 했고 드디어 폭력으로 화했단 말인가. 어찌하여 그들의 순수한 동기의 호소는 피를 보게 되고 폭도라는 끔찍스런 이름으로 불려야 했던가. 우리는 폭도라는 용어에 의아를 느낀다. “ 또한 침묵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에게도 따끔한 일침을 날린다. ” 지금 이 시각에도 가슴을 쥐어뜯고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부모들의 울음소리가 도처에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살벌한 병실에서 숨을 거두는 학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냉정한 방관자일 수밖에 없단 말인가. 내 자식이 죽지 않았으니까, 내 형제가 죽지 않았으니까 하며 자기 주변에다 안전한 절벽만 쌓아 올리면 된단 말인가. “ 박경리 선생님의 추상같은 호령은 <일본산고>에서도 읽은 적 있었다. 수위를 넘나드는 원색적인 비난도 거리낌없이 일본정부를 향해 속시원하게 내뱉으시던 문장들을 읽으며 속이 다 후련했었는데. 과연 요즘에 박경리 선생님같이 무게감있게 야무진 비판을 조목조목 할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싶다. 모든 것은 결국 인간과 생명을 소중히하는 올바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지. 억울하고 핍박당하는 존재들에서 눈길을 거두지못했던 박경리 선생님, 어쩌면 그렇게 예민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기에 남들보다 더 깊고 진한 외로움에 힘들어하셨을지고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고독하고 독한 세월일지언정 버타고 살아가며 자기 임무를 착실히 수행하며 살다보면 그것이 오히려 힘내서 살아가는 원인이 되고 결국엔 ‘약이 되는’ 것임을 담담하게 술회한다. 정말 그렇다. 음… “ 인생에는 결론이 없다. 미지로써 한 인생이 끝나는 그 날, 즉 죽는 그 날 비로소 결론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건 행복하건 사람은 다 자기의 세월을 살아야 하며 남의 세월을 살아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서도 자기 인생 속에 사랑이 있고 희생이 있고 의무가 있고, 그러한 것들은 또한 가장 불행했을 때의 삶의 구실이 되기도 한다. ” ________ 문학의 바탕은 휴머니즘이다. 애정과 아픔 없이 인간과 운명에 접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무리 부유한 사회라도 진실이 결여되면 인간은 풍요한 그 물질의 일부가 될 것이며 예술은 소멸될 것이다. 아무리 가난한 사회라도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이요, 물질도 더불어 생명을 누릴 것이며 미래를 지향하게 될 것이다. <약이 되는 세월>, 박경리 #약이되는세월 #박경리 #다산북스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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