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쌍둥이고
우리는 불운하고
하지만 우리는 만만치 않다
1년에 단 하루,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는 두 형제 이야기
애달프지만 가슴 따뜻해지는, 이사카 월드의 원점 회귀작!
‘일본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제왕’ 이사카 고타로의 2018년 작 『후가는 유가』가 김은모의 번역으로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2014년 『가솔린 생활』을 시작으로 그의 작품들을 엄선해 국내에 소개해 온 ‘현대문학 이사카 월드’의 열한 번째 책으로, 불행한 운명에 주저앉지 않고 자신들의 유일한 무기인 ‘순간 이동’ 능력을 이용해 사회 곳곳의 ‘악’과 맞서는 쌍둥이 형제를 그렸다.
이사카 고타로는 2005년 『사막』을 발표한 직후 처음 이 소설의 구상에 들어갔으나 수차례 시행착오와 수정을 거듭하면서, 결국 완성하기까지 10여 년이 걸렸다고 일본 현지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만큼 『후가는 유가』는 작가의 각별한 애정과 열의, 오랜 고민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1년에 단 하루 생일날에만 두 시간 간격으로 위치가 뒤바뀌는 쌍둥이’라는 독특한 설정에 간결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이야기로 단숨에 일본 독자들을 사로잡았고, 출간 이듬해인 2019년 서점대상 10위에 이름을 올리며 이사카 고타로의 필력과 대중적인 영향력이 변함없이 건재함을 증명해 보였다.
기발한 발상과 데뷔 20년차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전대미문의 쌍둥이 미스터리
이야기의 주인공은 후가와 유가라는 이름의 쌍둥이 형제다. 흡사한 외모로 마치 한 사람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쌍둥이’는 사실 추리소설의 트릭으로도 종종 쓰이는 익숙한 소재다. 나아가 살인범이 자신과 닮은 쌍둥이 형제를 이용해 알리바이를 만들고 수사를 혼란에 빠뜨린다는 설정은 이제 공식이라 할 만큼 흔하디흔하다. 하지만 이사카 고타로는 늘 그렇듯 20년차 베테랑 작가의 노련함과 ‘제왕’다운 기발한 발상으로 진부한 기존의 방식을 모두 전복시킨다.
부모의 학대로 고통받던 후가와 유가 형제는 어느 날 순식간에 서로의 위치가 뒤바뀌는 기이한 경험을 한 후, 자신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혹독한 일상을 견디게 해 줄 탈출구쯤으로 가볍게 여기고 이것저것 시험해 보던 두 사람은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세상에 슈퍼히어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냉소하면서도, 어느새 그 능력을 이용해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돕기 시작한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을 응징하고, 숙부의 돈벌이 수단으로 착취당하던 소녀를 구해 내고, 납치당한 아이를 부모의 품에 돌려주고, 나아가 잔혹한 살인마와 맞서면서, 형제는 힘없이 당하기만 하던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을 구원하는 ‘슈퍼히어로’가 되어 준다.
기묘한 능력을 가진 쌍둥이 형제와 악한들의 추격전. 할리우드 히어로물처럼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와 절체절명의 순간에 터져 나오는 이사카 고타로 특유의 해학이 긴장과 웃음을 번갈아 선사하며 결말까지 멈출 수 없게 만든다. 한편 힘겨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위하는 두 주인공의 강한 형제애, 현실에 냉소하다가도 결국 약자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이들의 따뜻한 ‘인간미’는 책장을 덮은 뒤에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때로는 추리소설 같고, 때로는 히어로물이나 성장소설 같기도 한 이 독특한 작품에 대해 일본의 저명한 번역가이자 평론가 오오모리 노조미는 ‘전대미문의 쌍둥이 미스터리’라고 호평했다.
이사카 고타로는 오래전 해외의 한 독자로부터 ‘이사카 씨의 작품은 슬프고 씁쓸하지만, 다 읽고 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는 편지를 받은 적 있다고 한다. 그는 『후가는 유가』가 그러한 감정을 소중히 여겼던 초기 시절로 다시 한번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는, 원점 회귀의 작품이라고 했다. 이 책은 그의 초기작이 안겨 주었던 순수하고 따뜻한 여운을 그리워해 온 오랜 팬들은 물론, 재미와 감동이 적절히 어우러진 완성도 높은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찾고 있던 새로운 독자들에게도 최상의 선택이 될 것이다.
■ 줄거리
센다이 시내의 레스토랑에서 한 남자가 자신을 찾아온 다카스기라는 방송 제작자에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남자의 이름은 도키와 유가.
유가와 그의 쌍둥이 동생 후가는 불운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걸핏하면 폭력을 휘둘렀고, 그 밑에서 기도 펴지 못하던 어머니는 자식들이 학대당하는 것을 보고도 나 몰라라 하다가 가출해서 자취를 감추었다. 오로지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 버티던 형제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중 순식간에 서로 위치가 뒤바뀌는 기묘한 경험을 하면서 자신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일은 1년에 단 하루, 생일에만 두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며, 그 순간에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정지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물건을 쥐고 있거나 사람을 붙잡고 있으면 그것들도 함께 이동한다. 이 기이한 능력은 고통뿐이던 형제의 일상에 작은 탈출구가 되어 준다. 중학생이 되어 재활용품 수거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두 형제는 핏자국처럼 붉은 얼룩이 묻은 백곰 인형을 주웠다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어린 소녀에게 ‘나쁜 일을 막아 주는 부적’이라는 농담과 함께 그 인형을 안겨 준다. 하지만 다음 날 뉴스를 통해 그 소녀가 미성년자가 모는 차에 치여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소녀가 죽어 가면서까지 백곰 인형을 ‘진짜 부적인 양’ 끌어안고 있었다는 것에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 형제는 이후 둘만이 공유하고 있는 순간 이동 능력을 이용해 왕따를 당하던 친구를 도와주고, 숙부에게 착취당하던 후가의 여자 친구 고다마를 구출해 내고,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악한들을 응징하며 죄책감을 떨쳐 보려 애쓴다. 그러던 중 소녀를 치어 죽인 가해자가 실은 실수로 사고를 낸 게 아니라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살인범이며, 자산가인 부모님 덕분에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나 멀쩡히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