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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상세페이지

첫사랑

김명환 시집 | 마이노리티시선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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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9.01 전자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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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작품 정보

‘첫사랑’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추억은 가슴 깊숙한 갈피에 고이 간직돼 있다. 정신없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문득, 젊은 날의 사랑이 아픔으로, 슬픔으로 되살아날 때가 있다.
그 ‘옛사랑’이 ‘현재의 사랑’이면 안 되는가?
‘첫사랑’은 왜 추억이어야만 하는가?

김명환 시집 『첫사랑』을 통해 우리는 ‘변해가는’ 나와 ‘변하지 않는’ 나 사이의 고뇌와 절망과 부끄러움과 아픔을 만난다.

시집 소개
서평 / 김재형(생명평화운동가)
첫사랑, 깊은 부끄러움


1. 깊은 부끄러움

인간됨과 인간 아님을 나누는 경계와 같은 감정 중의 하나가 ‘부끄러움’이다. 옛날부터 어른들은 아이들을 꾸짖으면서 늘 마지막엔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하는 말로 끝내곤 했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을 강요할 경우에는 지배의 도구이기도 하다. 인류는 오랫동안 지배의 도구로 사용되는 ‘부끄러움의 강요’에 대해 저항해 왔다. 자유의 이름으로, 진보의 이름으로, 사랑의 이름으로 ….
부끄러움은 지배자의 도덕인 넘어야 할 벽으로 인식되며, 꾸준히 그 영역은 좁혀져 왔다. 이제 우리 삶에서 부끄러움이 남아 있는 공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당연히 많은 시인들이 있지만, 부끄러움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시인은 많지 않다. 부끄러움은 시선을 외부로 향하는 감정이 아니다. 부끄러움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자신을 바라볼 때 피상적으로 봐서는 부끄러움의 감정에 도달할 수 없다. 부끄러움은 그 자체로 깊은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깊은’ 부끄러움이라는 말은 말의 과잉이다. 그러나 부끄러움의 본질적 의미가 상실된 시대에는, 부끄러움을 느낌 그대로 표현하고 싶으면 ‘깊은’이라는 수식어를 쓰지 않을 수 없다.

김명환을 아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시는 ‘어색한 휴식’일 것이다.
2000년 갈무리출판사 마이노리티시선의 시집 제목이 ‘어색한 휴식’이었고, 그 표제시이다.

나는 오이에게 미안하다
나이 스물이 되면서
이 땅의 시인이려면
민주화운동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나는 고추에게 미안하다

나는 호박에게 미안하다

나는 토마토에게 미안하다

내게 휴식은 어색하다
나이 마흔을 바라보며
나는 어색한 휴식을 즐긴다.

― ‘어색한 휴식’ 중에서

시인이 텃밭에 심어둔 채소 하나 하나를 부르면서, 스물에서 마흔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과정에 느끼는 ‘부끄러움’을 노래한 이 시는 부끄러움의 감정이 자기 삶의 근원적 기초임을 잘 드러냈다.
그리고, 이제 근 10년이 되어 새로운 시 10편을 더해 ‘첫사랑’이라는 시집이 나왔다. 그동안 그의 시에서 근원적 상징인 ‘부끄러움’이 더 깊어졌다.

2. 깊은 부끄러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경계

부끄러움의 근원적 의미는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 짓게 하는 내면의 힘이다.
세상은 바뀌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살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기 때문에 변해야 할 것이 변하는 것은 죄도 아니고, 어리석음도 아니다. 오히려 변해야 할 때 변하지 않아서 폭력과 권위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문제는 변화 자체가 아니라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첫사랑도 그럴 것이다. 이루어진 사랑을 첫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말하고,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아름답게 깊어진 것을 말한다. 첫사랑은 깊어지는 것이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바뀔 수 있는 것은 첫사랑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진보정당의 의회진출을 지지하는 선언에
이름을 걸 거냐는
송경동 시인의 전화를 받고
아직은 아니라고
아직은 볼세비키의 친구로 남고 싶다고 했지만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어
어제의 답변은 실수였다고
아직 이라는 부사를 취소한다고 말했다

슬펐다
변해가는 내가 슬펐지만
변하지 않는 나도 슬펐다.

― ‘첫사랑’ 중에서

나는 김명환의 이 지점을 깊이 존중하고 사랑한다. 변해가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함께 바라보는 것과 그것에 대해 슬픔과 부끄러움을 갖는 깊은 눈이다.
우린 너무 많이 변했고, 언젠가 우리가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잊어버리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니, 벌써 왔지만 부정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이 와서 다시 우리가 시작한 자리, 첫 마음과 첫사랑을 찾아봐야 할 때가 오게 되면 김명환의 시 ‘첫사랑’을 읽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발문 / 조정환(문학평론가)

전향을 위하여


『첫사랑』을 위해 모은 10편의 시를 받고서야 김명환 시집 『어색한 휴식』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음을 깨달았다. 그는 농담처럼 웃으며 ‘1년에 한 편 씩 쓰고 10년에 한 권 씩 낸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것이 진담일 줄이야. 1990년에 『우리를 헤어져서 살게 하는 세상은』을 낸 후, 2000년에 『어색한 휴식』을 냈고 올해 『첫사랑』을 내기 위해 준비한 시가 정확히 10편이다.

『어색한 휴식』에 붙인 해설에 나는 ‘꿈의 만회를 위한 싸움은 오래 지속된다’는 다소 긴 제목을 붙였다. 제목만 긴 것이 아니라 다시 읽어보니 횡설수설 말도 많다. 그때가 2000년이니 나로서도 10년 만에 비로소 실명으로 말할 권리를 얻었던 해이기 때문이리라. 내가 그 여러 말을 통해 한 가지 확실히 말하고 싶었던 것은 시인 김명환에게서 시는 악몽의 시대에 그 시간을 견디면서 희망의 꿈을 키워나가는 무기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희망의 꿈은 흔히 생각되듯 미래에야 실현될 가능성이나 관념이 아니라 이미 여기에서 작용하는 힘이며 삶의 물질적 양상이다. 그의 시 곳곳에서 절절히 노래되는 그리움, 기다림, 추구, 사랑 등이 그것이다. 나는 그의 시가 1990년대에 들어와서 부끄러움의 정조에 의해 채색되어 갔다고 보았다. 그것은 1991년 소련의 붕괴와 이에 뒤이은 혁명운동의 쇠퇴에서 비롯되는 것이었고 절망의 감정과 태를 잇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부끄러움은 단지 절망과 동일한 것만은 아니고 절망 속에서 절망에 저항하는 정조이고 절망을 넘어설 길을 찾고 있는 감정이다. 즉 꿈의 만회를 위한 긴장의 정서이다. 2000년대 첫 십년 동안에 쓰인 김명환의 시를 읽으면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그가 이 긴장을 어떻게 다스리며 풀어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것은 시인 자신의 시적 모색과 성취를 보여줌과 동시에, 쌍용자동차 파업농성투쟁의 시말이 보여주듯이, 199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적 지배에 대항하는 유효한 대응방식을 아직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 노동계급의 고뇌와 모색의 일단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시는 ‘망실공비를 위하여’ 1, 2 연작이다. 2003년 『진보평론』 15호에 기고했던 이 두 편의 시가 21세기 김명환의 시학적 강령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쏘비에트연합과 동구라파가 무너진 이후
나는 저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가고 싶었다
옛사랑을 만나면 회한과 연민뿐
무시무시한 고독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혁명의 시대는 가버린 것일까
총 한 번 못 들어보고
이렇게 죽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저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몹시 외롭고 배가 고프다.

―「망실공비를 위하여1」 전문

‘망실공비’란 누구인가? 이것은 토벌군이 색출하거나 사살하지 못한, 그래서 산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공비(즉 공산주의자)를 일컫는다. 주로 지리산에 남아 있었던 망실공비는 남의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적으로 규정될 뿐만 아니라 북의 사회주의로부터도 버림받은 존재였다. 1963년 11월 12일 마지막 빨치산 이홍이가 사살되고 정순덕이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는데 이들이 한국 망실공비의 마지막 인물이었다. 망실공비의 고독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처절한 것이다. 1990년대의 ‘부끄러움’은 고독 속의 회한과 연민으로 2000년대까지 지속되고 있다. 시인은 이제 이 정서가 망실공비의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명명한다. 자본주의 현실과 적대하고 있으면서도 혁명의 길마저 잃어버린 존재의 고독이 2000년대 김명환 시학의 한 축이다. 거부와 고독의 시학. 그런데 이와 동시에 발표된 「망실공비를 위하여2」는 사뭇 다른 방향의 시심(詩心)을 그린다.

나는 혁명을 노래해야 할 시인이었지만
도둑처럼 다가올 새벽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빛살로 날아오르는 노래 한 곡 부르지 못하고
산길을 서성이며 젊은 날을 보냈다
한번쯤 크게 기지개를 켜고
산을 내려가야 할 때가 되면
아주 낮고 쓸쓸한 휘파람을 불며
저녁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만
나는 너무 오래 산길을 걸어왔다
모두가 떠나간 외로운 안개 숲에서
나는 전향을 꿈꾼다. 눈물 속에 타오르는
붉은 태양을 노래하기 위해
내 젊은 벗들처럼 산을 오르고 싶다.

―「망실공비를 위하여2」 전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나 망실공비를 기다리는 것은 처연한 죽음의 시간이다. 산정 높이에서 얼거나 굶어서 죽는 것이다. 그것이 진리를 증언하는 망실공비 고유의 방식이다. 그러나 김명환의 망실공비는 그렇게 지사적이고 영웅적인 망실공비와는 다른 유형의 것이다. 그의 공비는 ‘도둑처럼 다가올 새벽을 믿지 못’한 공비이고 그래서 ‘빛살로 날아오르는 노래 한 곡 부르지 못하고/ 산길을 서성이며 젊은 날을 보’낸 공비이다. 공비 속의 공비, 공비의 이 분열증이 그로 하여금 새로운 욕망을 갖게 만든다. 그것은 ‘전향’의 꿈이다. 하지만 그 전향은 포기나 투항 같은 것은 조금도 함의하지 않는다. 그의 전향은 ‘눈물 속에 타오르는 붉은 태양을 노래하기’ 위한 것이며 다시 산을 오르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21세기 김명환 시학의 또 하나의 축이다. 자기혁신의 시학.

이 두 경향의 내면적 길항은 표제작 「첫사랑」에 여실히 나타나 있다.

진보정당의 의회진출을 지지하는 선언에
이름을 걸 거냐는
송경동 시인의 전화를 받고
아직은 아니라고
아직은 볼세비키의 친구로 남고 싶다고 했지만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어
어제의 답변은 실수였다고
아직 이라는 부사를 취소한다고 말했다

슬펐다
변해가는 내가 슬펐지만
변하지 않는 나도 슬펐다.

―「첫사랑」 일부

볼세비키의 ‘친구’이고자 한 ‘나’가 있다. 그 ‘나’는 ‘공비’이지만 ‘도둑처럼 다가올 새벽을 믿지 못’한 분열된 ‘공비’이다. 과거의 볼세비키들이 변하여 진보정당을 만들고 의회에 진출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변하고 싶지 않고 산에 남고 싶다. ‘나’는 ‘아직’은 ‘볼세비키의 친구’로 남고 싶다. 그러나 ‘나’의 ‘친구’가 되어줄 볼세비키는 하나둘 사라지고 있고 ‘나’의 분열은 심화된다. 한편에서 나는 ‘아직’이 아니라 변함없이 ‘볼세비키의 친구’로 ‘남고 싶다’. ‘아직’이라고 말하는 ‘내가 슬’프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변함없이 ‘볼세비키의 친구’이고자 하는 ‘변하지 않는 나도’ 슬프다. 자아는 완고했다. 그것은 ‘내가 오르던 산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내가 건너던 강에는/ 물고기가 헤엄치지 않는다/ 나는 바람이거나 물결이었지만/ 산과 강엔 안개가 내리고/ 나는 나조차 흔들 수 없는/ 돌이 되어 버렸다’(「돌」)의 돌처럼 완고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시적 화자 ‘나’의 내부에 분열이 도입되고 그 분열은 자본주의 세계와 타협하고 싶지도 않고, 시류에 휩쓸리고 싶지도 않고, ‘아직’이라고 말하면서 어느새 변해가고 있는 ‘나’를 용납하고 싶지도 않고, 이 완고한 자아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든, 몇 겹으로 분열된 ‘슬픔’의 상태에 놓인다. 이런 의미에서 슬픔은 21세기 김명환 시의 주조 정서이다. 스피노자는 슬픔이라는 정서를 ‘정신이 더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수동’(『에티카』, 142쪽)으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슬픔은 그 자체로 변화의 과정이며 세계 앞에서 기존의 자아가 축소되는 과정이다. 완고한 자아는 힘을 잃는다. 그래서 ‘결국은 돋보기를 썼다’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돋보기」는 「망실공비를 위하여3」이라고 불러도 좋을 곳에 자리잡는다.

결국은 돋보기를 썼다
안 보이는 게
불편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외면하는
내가 미워서

볼 만큼 보고
쓸 만큼 썼으므로
세상에 눈 감으면
편할 줄 알았다

나이를 먹는 거보다
더 슬픈 건
상처받기 싫어서
사랑하지 않는
나 자신이었다.

―「돋보기」 전문

‘나’가 ‘결국’ 돋보기를 쓰게 된 것은 ‘안 보이는 게/ 불편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외면하는/ 내가 미워서’이다. ‘세상에 눈 감으면/ 편할 줄’ 아는 ‘나’, ‘상처받기 싫어서/ 사랑하지 않는/ 나 자신’이 더 슬펐기 때문이다. 여기서 슬픔은 이미 새로운 이행을 준비한다. 사랑을 향한 이행이다. 돋보기를 쓰고 다시 바라본 세계는 어떠한가? 이 세계에서 모든 것은 한 번 쓰고 버려진다. 그것은 껌, 컵라면, 통조림, 봉지 커피, 티백 보리차, 드링크, 탄산음료, 물티슈, 내프킨, 종이컵, 나무젓가락, 볼펜, 선물용의 한 송이 장미, 그리고 KTX 여승무원 등으로 구성된 일회용 세계이며 계약직 세계이다.

사는 것이
먹고 사는 것이
힘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구차하고 비굴하고
가슴이 미어질 줄은 몰랐다

KTX 여승무원이 되고서야 나는
이 세상이
한번 쓰고 버려지는 것들의
눈물이라는 걸 알았다
흐르고 넘쳐
자꾸 자꾸 밀려오는
파도란 걸 알았다

―「계약직」 일부

삶은 ‘한번 쓰고 버려지는 것들의/ 눈물’이며, 세상은 이들이 이룬 ‘파도’이다. 새벽 다섯 시 첫차로 시작하여 새벽 한 시 막차로 마감하는 하루를 그린 ?지하철 1호선?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피곤한 얼굴들/ 그 어깨 위에 내리는/ 슬픔’과 ‘흔들리며 달려가는/ 목마름’의 이미지를 통해 ‘눈물의 파도’라는 시상(詩想)을 반복한다. 세계는 일회용으로 소용돌이치는 변화의 스킬라(카리브디스와 더불어, 오디세우스의 항로를 방해한 바다 괴물)이다. 그렇다면 다시 돋보기를 벗고 세상에 눈감으면서 돌 같은 자아, 저 카리브디스의 절벽에 몸을 의지할 것인가? ‘나’는 이 두 갈래 길에서 마침표를 찍지 않은 채 자신을 열어둔다.

언제부터인지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마침표를 찍어 놓고
지웠다 찍었다
새운 밤도 많았지만
언제부터인지
시가 갇혀버릴 것 같아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없을 것 같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마침표」 전문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머뭇거림은 노래가 열림을 필요로 하며 열림의 울림이라는 각성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슬픔 속에서 완고한 자아가 녹아내리는 것을 직시하면서 내적 분열을 해방의 계기로, 더 큰 완전성을 향한 기쁨의 도약으로 만들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 앞에 직면한다. 어떻게 완고한 볼세비즘과 일회용 세계 사이의 히말라야보다도 더 큰 간극을 넘어설 것인가? ‘나’의 새로운 시작은 자전거를 배우는 것이다.

나이 오십에
자전거를 배웠다
……(중략)……
구르는 바퀴가
멈추면 쓰러진다는 게
슬픈 나이에
쓰러지는 게 두려운 나이에
자전거를 배웠다

―「자전거」 일부

그리고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한 오십에 ‘나’는 다른 하나를 끝낸다. 그것은 ‘해마다 읽어오던/ 공산당선언을/ 읽지 않’는 것이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아내와 맥주를 마셨다
나이 한 살 먹는 거
별거 아니지만
오십은 섭섭했다

아침에 일어나서야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해마다 읽어오던
공산당선언을
읽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사십구 년의 꿈이
아프게 밀려왔다

―「오십」 전문

‘해마다 읽어오던’ 『공산당선언』이야말로 저 완고한 자아들, 즉 ‘나조차 흔들 수 없는 돌’, ‘볼세비키의 친구’, ‘세상에 눈감은 나’, ‘킬리만자로의 표범’, ‘마침표’를 지켜주는 아우라였다. 그간 제야의 시간들은 새로운 시작의 시간으로 열려온 것이 아니라 ‘해마다 읽어오던’ 『공산당선언』으로 반복해서 마침표 찍히고 닫혀왔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지금 세계에 대한 수동(자기개방)의 정서인 슬픔 속에서 ‘내 젊은 벗들처럼 산을 오르고 싶’은 욕망이, 마침표에 대한 머뭇거림이, ‘상처받기 싫어서 사랑하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거리두기가, ‘『공산당선언』을 읽는 대신 아내와 맥주를 마시는 사십구 년 꿈으로부터의 일탈’이 새로이 탄생한다. 이것이 ‘나’가 실행하는 ‘전향’(?망실공비를 위하여2?)이다. 이것은 세상을 살펴보기 위한 돋보기를 필요로 하며, 스킬라의 소용돌이와 카리브디스의 절벽 사이를 유영하듯 내달리는 자전거 타기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배움의 길이다. 혹시 이것이 꿈의 만회가 아니라 꿈의 포기를 향한 길로 귀착되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공산당선언』을 고정의 철학, 닻의 기술로 이해한다면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공산당선언』을 ‘모든 단단한 것은 녹아내린다’에 투철한 유영의 철학, 항해의 기술로 이해한다면 꿈은 포기되는 것이 아니라 혁신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산당선언』의 코뮤니즘을 도달해야 할 목표나 이상으로서가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타파하고 새로운 삶을 직조하는 끊임없는 운동으로 이해한다면, 일회용 세계는 우리가 외면해야 할 세계가 아니라 바로 그 속에서, 그것에 대항하면서 다른 세계를 건설해 내야 할 현장 그 자체일 것이다. 이럴 때 전향은 더 작은 완전성을 향한 이행으로서의 슬픔에서 더 큰 완전성으로의 이행인 기쁨으로의 전향일 것이며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해마다 읽는’ 반복의 『공산당선언』에서 매일매순간 다시 읽으면서 몸으로 다시 쓰는 차이의 『공산당선언』으로의 전향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아픈 사십구 년의 꿈을 실재 속에서 만회하는 길일 것이다. 이런 눈으로 『첫사랑』을 읽는다면 그것은 ‘눈물 속에 타오르는 붉은 태양을 노래하기’ 위한 전향, 다시 산을 오르기 위한 전향, 슬픔에서 기쁨으로의 전향, 요컨대 사랑을 위한 전향의 노래를 아프게 부르기 시작한 시집이라고 우리가 말해도 좋지 않을까? 다시 말해 그의 시를, 우리 사회의 노동계급 내부에서 일기 시작한 새로운 기운을, 즉 20여년에 걸친 거듭되는 패배와 아픔과 슬픔을 딛고 신자유주의에 대항할 유연한 몸을 만들기 위해 자기쇄신을 이루려는 노력을 알리는 하나의 시적 신호로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그것이 어떤 확실성도 보장해 주지 않는 미지의 길일지라도.

작가

김명환
국적
대한민국
출생
1959년
데뷔
1984년 실천문학사 '시여 무기여'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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