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 ‘지속가능한 책읽기’로 ‘삶의 확장’을 말하다
‘우리시대의 대중지성’ 로쟈가 여는 두 번째 ‘서평’ 도서관
“이 책은 지난 두 해 동안 내가 서평을 쓰고 싶었던 책의 3분의 1가량을 소화하고 있다. 서평이 전업은 아닌지라 욕심을 다 차릴 수는 없었다. 그렇더라도 더 많은 책들로 이끄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면 더없이 다행한 일이다.”
쉼 없이 책읽기쓰기소개하기를 이어온 ‘괴물의 서평가’ 로쟈의 두 번째 서평집이 출간되었다. 책읽기의 자유와 권리를 말한 『책을 읽을 자유』가 지난 10년간(2000~2010) 읽고 쓰고 ‘저공비행’하며 그의 경이로운 독서 편력을 마음껏 펼친 것이라면, 역시나 두툼한(이번엔 500쪽밖에 안 된다) 이번 서평집은 단 2년(2010~2012)간의 독서 기록이다. 새 책에는 ‘삶처럼 계속될’ 책읽기뿐 아니라 지속적인 국민적 독서가 바꾸어 놓을 우리의 삶을, 모두가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고 말하는 사회를 꿈꾸는 로쟈의 희망이 담겨 있다. 책 제목의 ‘그래도’는 로쟈와 그의 삶이 하루에도 수 개씩 쌓이는 책 배송 상자들 사이에서 천천히 이어질 것이라는 예고이기도 하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카페에 편하게 자리 잡고, 로쟈가 그린 광활한 책 지도를 펼쳐보자. 믿음직한 인문 독서 가이드와 함께 깊고 너른 ‘책 길’을 거닐며 “불볕더위에 피난처”를 찾는 것은 어떨까.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퇴화와 멸종, 두 갈래 길이 있다면 기꺼이 멸종의 길을 택하겠다”
“독서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재미난 것도 많을 테지만 무엇이 가장 지속적인 거냐고 묻는다면 단연 책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얼굴이나 아름다운 풍경도 30분만 바라보면 심심하다. 하지만 책은 몇 시간씩이라도 얼마든지 몰입할 수 있다. 이만한 강적을 알지 못한다.”
“책읽기가 정말로 재미난가? 다른 재미난 것은 없는가?”라는 질문에 “다른 재미난 것도 많을 테지만 가장 지속적인 것이라면 단연 책. 취미도 책읽기라서 다행”이라고 답하는 곁다리 인문학자, 우리시대의 대중지성, 인터넷 서평꾼……. ‘인덕후’(인문학 오타쿠) 로쟈는 “물리지도 않고 책을 사고,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쓴다. 비록 그 일이 ‘직업’은 아니더라도 ‘인생의 일’은 되는 것처럼.”
이제까지 로쟈의 엄청난 독서량에서 쏟아져 나온 방대한 그리고 정선된 독서 리스트가 독자들을 드넓은 인문학의 바다로 손짓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정치·사회학적 독서(4서가·5서가)에 대한 한층 두터워진 관심이 돋보인다. 그리고 로쟈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독자로서 우리가 어떤 책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인지” 독자들이 확인하기를 기대한다. 지속적인 국민적 독서에 의한 우리의 삶의 변화(책의 혁명)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음도, 비평 에세이를 방불케 하는 ‘로쟈의 어법’으로 전달한다.
영화를 즐겨 보는 독자라면 제목에서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1990년 이란 대지진 이후, 감독이 이전에 찍은 영화의 주연을 맡은 아이들을 다시 찾아다니며 재난 이후에도 계속 삶을 이어나가는 이란인들의 모습을 담았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가 궁금하다면, (이 영화처럼) 삶이 계속되듯 책읽기를 지속하고 있는 로쟈에게 물어보라! 틈 없이 바쁜 세상에서 일용할 책을 찾는 탐서가들에게, 평생 간직할 책 리스트를 만들고 싶은 청춘에게, 무엇보다도 인문학 독서의 즐거움을 찾는 이들에게 로쟈는 ‘정답’을 알려줄 것이다.
“책장을 넘기며 이루는 ‘세상을 바꿀’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매주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책의 홍수 시대’라고도 하고 ‘책의 바다’라고도 한다. 그렇다고 좌절할 건 아니고, 이런 ‘좋은 안내서’를 길잡이 삼아 자기만의 독서 여정을 꾸리는 것이 독서인의 보람이고 호사다. 우리는 어쩌면 제법 멀리 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
로쟈의 두 번째 도서관은 86개의 서평을 ‘독서·인문학·삶·정의·정치’의 주제로 묶은 5개의 서가로 만들고 16개의 다양한 책꽂이에 꽂았다. 지면에 발표한 뒤에 덧붙인 곁말(P.S.)과 책꽂이 사이사이 16문 16답에서 조용하고 진중한 이미지인 로쟈의 한 겹 내려놓은 편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책 말미에 덧붙인 금정연(활자유랑자)의 쫄깃쫄깃하고 신랄한(?) 밀착 인터뷰 「로쟈와 나」에서는 로쟈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로쟈의 실체를 훔쳐보는 즐거움도 있다. 이 글에서 우리는 쇠락해가는 책 문화를 지탱하는 외로운 책 읽는 자의 초상을 발견하게 되리라.
‘1서가 그래도 독서’에서는 책읽기의 방법, 몰입하는 독서의 즐거움, 책의 미래, 로쟈가 상상하는 책 세상, 독서력을 갖춘 사회 그리고 요즘의 고전 읽기 열풍 등등 총체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독서의 자리를 말한다. 책이 사라진 뒤의 책벌레들의 거취 문제는? 독서력을 갖춘 사회가 얼마나 절실한지! 로쟈는 “새로운 지적 공동체의 출현을 낳은” 책의 혁명이 오늘도,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힘주어 말한다.
‘2서가 그래도 인문학’에서 로쟈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인문학, 우리의 고민을 덜어주고 상처를 치유해줄 인문학”을 말한다. 이를 ‘중간인문학’이나 ‘적정인문학’으로 부르며 “좀 더 상생적인 구도”로 소통하기를 권하고 있다. 인문학의 소통 방법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진단하고, “더 다양하고 더 풍성한 인문학의 미래”를 위해 책 속 인문학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이에 철학자 강신주를 한 책꽂이에 꽂고 그의 ‘말 건네기’를 꼼꼼하게 따져보기도 한다.
‘3서가 그래도 삶’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렌즈, 바라보고 인식하는 거울이 될” 책들을 소개한다. ‘인생의 의미’를 예술, 철학, 과학 할 것 없이 넘나들며 살펴본다. ‘삶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품고 뭔가 정면승부를 해보고 싶었던 독자’라면 로쟈의 생각여행에 동행하면서 예기치 않은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4서가 그래도 정의’에서 로쟈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필두로 하여 정의를 바라보는 관점, 희망, 자유, 폭력, 분노 등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키워드를 읽는다. 그리고 ‘5서가 그래도 정치’에서는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분석하고 진단한 많은 책 중 핵심을 찌른 책들을 소개한다. <나는 꼼수다>의 소통 방식, 검찰 개혁, 구조적 폭력, 증여 문제, 사생활 문제 등을 “대한민국은 특별한 나라인가?” 하고 질문을 던지며 풀어나간다. 특히 4서가와 5서가는 책 감별사 로쟈의 최근 독서 지향과 의제가 좀더 뜨거운 ‘사회학적 독서’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로쟈의 뒤를 밟다 「로쟈와 나」 발문에서(금정연 활자유랑자)
“사람들은 종종 (진정한) 앎과 아는 척을 구분하는데, 아는 척도 중요해요. 어떤 책에 대해, 서평이라도 읽었다면 일단 대화가 가능하잖아요? 독서 경험에 대한 공유가 가능해지는 거죠. 세상엔 책이 너무 많고, 그건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에요. 저(로쟈)만 해도 가지고 있는 책이 만 권이 넘는데, 한 개인이 읽을 수는 없는 거죠. 어쩔 수 없이 한 분야의 전문가는 다른 분야의 문외한이 될 수밖에 없어요. 서평이 그 불균형을 좁혀줄 수 있는 중간 지대 역할을 하는 거죠.”
이런 너무 모범적인 대답이 아닌가. 조금 심통이 난 나는, 그의 전공인 러시아 문학을 비꼬아 묻기로 한다. 그렇다면 인간에겐 얼마나 많은 책이 필요한가? 물론 톨스토이다. “그건 언젠가 쓰기도 했는데 …… 톨스토이가 말하는 건 욕심과 만용의 문제예요. 아무리 욕심을 부려봤자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 건 결국 한 평 무덤뿐이라는 것. 하지만 체호프는 반박해요. ‘그건 죽은 사람의 경우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지구 전체로도 모자라다는 거죠. 제 입장을 말하자면 세상에 있는 모든 책, 그에 더해 아직 나오지 않은, 나올 책들까지도 필요해요. 물론 이건 중독자의 입장이고, 일반적으로는 적정량이 필요하죠. 사회적인 독서가 가능한 적정량이.”(본문 중에서)
전략을 수정하기로 했다. 오랜 (서재) 이웃으로서 내가 그에게 느껴왔던 불만을, ‘곱지 않은’ 시선을 그대로 직접적으로 물어볼 것.
이를테면 이런 질문. 그렇다면 지금까지 강조한 것처럼 로쟈의 서평에는 단순히 사회적인 의미만 있는 것인가? 그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서평을 계속 쓰는 것에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어요. 과잉성, 생명을 초과하는 과잉성이라는 게 있죠. 주체의 욕망을 넘어서서 계속 춤을 추는 어떤 자동인형 같은 느낌이랄까. 내 안에서 넘쳐나는, 충동으로서의 독서. 그건 의지를 넘어서는 일이에요.” 『책을 읽을 자유』의 발문에서 신형철이 언급한 그대로다.(본문 중에서)
그는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라는 표현을 좋아한다고 했다. 뭔가를 시작하면 오래 한다는 그는, 구두를 사도 떨어질 때까지 신고, 시계나 안경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 그것이 자신의 적성이라고 무덤덤하게 말하는 그는 일주일에 평균 20시간의 강의를 하고, 3편의 서평을 쓴다. 그리고 종종 의심 많은 인터뷰어를 데리고 멀리 지방 강연을 가기도 한다. 잠깐만, 이게 ‘천천히’라고? 나는 다시금 새롭게 솟아나는 의구심으로 무장한 채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는 어느새 어둠 속에서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그도 피곤할 것이다. 어쩐지 조금 안심한 나는, 내 옆에 잠든 그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본다. 경이도 기계도 그렇다고 무슨 ‘지식의 보고’ 같은 것도 아닌 한 사람의 인간을, 그의 잠든 ‘자세’를.(본문 중에서)
로쟈는 “읽고 쓰고 읽고 쓰고 읽고 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배우지도 않은 ‘서평질’에 왜 이리 발목이 붙들린 것인지. …… 어쩔 도리가 없다. 편하게 생각하는 수밖에. 운명이라고 말이다. 삶이 계속되는 한 책읽기도 계속될 터이고 나는 몇 번 더 이런 ‘운명애’를 과시하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의 책날개에도 쓰여 있듯,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가 현암사에서 올여름에 출간될 예정이다. 19~20세기 러시아 문학의 탄생, 절정, 황혼의 여정을 로쟈와 함께 읽는다. 노문학자로서의 그의 면모를 더욱 생생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삶이 계속되는 것처럼 로쟈의 책읽기, 책 쓰기는 ‘그래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