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서클”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군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입니다.
「인스머스의 그림자」는 크툴루 신화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러브크래프트의 애독자는 물론 일반 독자들도 가장 많이 읽고 좋아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데이곤」 등의 단편들에서 보여준 여러 요소들을 집결하는 동시에 크툴루 신화를 더 확장해가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작품입니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문학을 코스미시즘(Cosmicism)이라는 말로 특징 짓기도 했는데요.이 코스미시즘의 중심 요소는 첫째로 상상의 창조물(신 혹은 종족), 둘째로 『네크로노미콘』과 같은 금기의 책이나 지식, 그리고 셋째가 뉴잉글랜드의 허구적 공간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러브크래프트의 대표작은 이런 요소들을 훌륭하게 조화시킨 작품들입니다. 「인스머스의 그림자」는 특히 ‘인스머스’라는 가상의 뉴잉글랜드 지역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러브크래프트가 스티븐 킹(Stephen King)을 비롯한 후대 작가에게 끼친 영향중에는 뉴잉글랜드의 묘사를 통해서 공포를 전하는 부분도 큽니다.
<책 속에서> 1927년부터 이듬해 겨울 동안, 미연방정부의 관리들은 매사추세츠의 인스머스*라는 옛 항구에 대해 기이하고도 은밀한 수사를 진행한 바 있다. 그 소식이 여론에 알려진 것은 1928년 2월, 그러니까 계획적인 방화와 폭발 사건에 이어 경찰의 대대적인 불심 검문과 연행이 속출하던 때였다. 일련의 방화와 폭파는 점잖은 사전 경고 뒤에 이루어졌는데, 버려진 항구를 따라 다 허물어지고 케케묵은 폐가처럼 보이는 집들이 그 대상이었다. 호기심이 없는 사람들은 기습적인 밀주 단속 과정에서 생기곤 하는 충돌쯤으로 받아들였다.
*인스머스(Innsmouth): 잘 알려진 러브크래프트의 가상공간 중 하나로, 단편 「셀레파이스Celephais」(1920)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예리한 신문기자들에게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었고, 이례적으로 많은 경찰 병력이 투입되었으며, 연행된 사람들의 소식이 오리무중이라는 점이 의문이었다. 재판도 명확한 판결도 없었다. 게다가 연행된 사람들이 교도소에 수감된 모습을 본 사람도 없었다. 병동과 정치범 수용소에 있다는 말이 나오는가하면, 나중에는 여러 곳의 육해군 형무소에 이감됐다는 모호한 풍문이 나돌았지만, 명확하게 드러난 사실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인스머스는 지금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상태고, 더디게나마 재건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인권 단체의 항의와 비공개 토론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 대표자들이 수용소와 군 형무소를 방문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은 방문 이후에 갑자기 소극적인 태도와 침묵으로 일관했다.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결연했던 언론들마저 결국에는 대부분 정부에 협조하는 국면으로 변했다. 줄곧 정부 정책을 비판해온 타블로이드판 신문 한 곳에서 해저 깊숙이 들어간 해군 잠수함이 ‘악마의 모래톱’ 너머 심해에 어뢰를 발사했다는 보도만 있었다. 선원들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나온 그 기사는 사실 낭설에 가까웠다. 그 낮고 검은 모래톱은 인스머스 항에서 2.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