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서클”은 H. P. 러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군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입니다. 첫 출간 제목은 「파라오와 갇혀서Imprisoned with the Pharaohs」였고, 「파라오와 묻혀서 Entombed with the Pharaohs」로도 출간된 이력이 있습니다. 러브크래프트가 해리 후디니를 위해 대필한 작품인데요. 당대 탈출 마술로 명성을 날리던 후디니와 러브크래프트의 조합은 언뜻 의외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얼마 동안 이 작품은 러브크래프트가 후디니라는 필명을 사용한 작품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실상 이 의외의 조합을 생각해낸 건 당시 재정적인 어려움에 빠져있던 《위어드 테일스》의 소유주, 헤네버거(Jacob Clark Henneberger)였다죠. 후디니라는 유명인을 끌어들여 홍보를 노린 것인데, 러브크래프트도 그만의 사정으로 보통의 대필보다 훨씬 높은 원고료에 마음이 간 상황이었죠. 러브크래프트는 소니아 그린과 결혼식을 하러 가다가 기차역에서 이 원고를 잊어버리고 진땀을 뺐다죠. 결국 신혼여행의 많은 시간을 다시 원고를 타이핑하는데 보냈다는 후문입니다. 대필 의뢰인인 후디니는 아랍인들에게 결박을 당한 채 피라미드에 갇힌 실제 경험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러브크래프트는 여러 자료와 정황을 살펴본 결과, 후디니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상상에 의지해 작품을 전개해 나갔다고 합니다. 탈출 마술사인 일인칭화자가 이집트를 여행하다가 겪은 일을 회상하는 형식입니다. 휴가차 이집트 여행에 오른 화자는 가이드 일행의 싸움에 휘말렸다가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합니다. 즉 납치를 당하는데요. 처음부터 화자를 납치하기 위한 모종의 계획들이 작동하고 있었던 셈이죠. 정신을 잃고 납치된 화자가 깨어난 곳은 기자의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Giza) 아래 어딘가 어둠 속입니다. 당연히 이 어둠 속엔 공포와 괴물체들이 도사리고 있는데요. 반인반수의 미라들, 이 작품에만 등장하고 나중에 크툴루 게임에 차용되는 압도적인 크기의 거대 크리처인 '미지의 사신(死神)' 그리고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이집트 특유의 아우라를 발산하는 니알라토텝까지. 후디니와의 의외의 조합이 의외의 걸작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