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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걷기의 인문학>은 원제가 <Wanderlust : A History of Walking>이다. 저자 리베카 솔닛은 "맨스플레인"이란 단어를 널리 알린 책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로 유명하지만 원래 역사를 전공했다. 예전에는 역사적 의미를 얻을 수 있는 개념들이 한정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걷기'가 역사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놀라웠다. 책을 읽어보니 엄밀한 고증과 논리에 따른 정통 역사책은 아니었다. 저자 개인이 걷는 행위를 하며 느낀 점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한 에세이에 가까웠다. 그래서 번역판은 제목을 <걷기의 인문학>이라고 정했지 싶다. 책 제목을 접하자마자 올해 가장 인상 깊었던 걷기가 떠올랐다. 4. 27 남북 정상회담 도중에 일어난 '도보다리 산책'이었다. 하나의 민족이지만 세상 누구보다 더 적대시하던 두 국가의 정상이 단 둘이서 나란히 걸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뭉클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뒷모습을 보니 핵무기를 비롯한 군사적 긴장이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벤치에 마주보고 앉아 새소리를 배경으로 대화하던 광경과 더불어 평화와 공존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이 '걷기'는 단순히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수단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벅찬 감동을 주는 의미 있는 행위였다. 솔닛은 이처럼 보행을 단순히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모종의 의식적 문화 행위로 보는 기원에 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루소는 유토피아에 가까운 인간의 자연 상태를 그렸다. 학문과 예술은 인간을 구원하지 않았고 타락시켰다 주장했다.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것, 선한 것, 소박한 것이 같은 뜻이었다. 이런 사상을 따르면 "홀로 시골길을 걷는 보행은 소박한 인간을 상징하는 동시에 사회를 떠나 자연에 거하는 방법을 대표한다. " 루소 이후 걷기는 단순한 이동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태도나 사색을 동반하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제자들이 일군 '소요학파'나 칸트가 걸었던 쾨니히스부르크의 산책길, 헤겔이 다니던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이 왜 유명할까? 걷기가 사유와 결합했기 때문이다. 요즘 산책과 명상과 사색은 거의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2부 정원에서 자연으로'였다. 걷기가 취미가 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과 요인을 상세히 밝혔다. 여기에는 근대 정신, 국가의 영토 통제, 자연에 대한 관점의 변화, 치안의 확보, 정치사회적 변동, 시민의 투쟁이 얽혀 있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와 그의 여동생 남매가 도보여행을 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들 남매는 "두 다리를 철학의 도구로 삼은 최초의 인물 중 하나"였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 속을 걷는 일에 상당한 기쁨을 느끼며 동시에 의미를 부여한다. 솔닛에 따르면 이런 마음은 그 역사가 오래지 않았단다. 옛날 특권층은 정원이나 인공적인 산책로만 걸었다. 자연 속을 걷는 일이 좋다는 생각은 "자연 그 자체를 문화의 일부로 만든 역사"를 갖고 있다. 워즈워스 이전 보행은 너무나 하찮은 행동에 속했다. "보행의 역사는 보행 장소의 역사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처럼 걷는 행위에는 걷는 공간이 필수적이다. 자연 역시 근대 이전에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영국 부유층은 중세가 끝나 영주의 요새가 저택이 되면서 정원 가꾸기에 많은 자원을 쏟았다. 18세기에 접어들어 담장이 없어지면서 정원 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은 시원한 전망을 얻을 수 있었다. 양식화된 정원은 점점 자연주의적 조경으로 변했다. 영국 내 치안이 안정되면서 귀족계급의 정원은 바깥세상과 경계를 조금씩 허물었다. 비로소 여행의 목적이 목적지로의 도착이 아니라 여행길의 경험 그 자체가 되는 때가 왔다. 자연 전체가 목적지인 셈이다. 바로 이 시기에 워즈워스 남매는 길을 떠났다. 걷기는 이제 자연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며 취향이 되었다. 저자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예로 든다. 어디를 보나 걷는 이야기가 나오며, 결정적 만남이 성사되거나 결정적 대화가 오가는 순간은 두 등장인물이 함께 걸을 때란다. 그런데 이런 보행은 당연히 공간을 필요로 한다. 걸으면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은 많아졌는데 공용로는 점점 줄어들었다. 인클로저와 사냥의 유행으로 상류층은 공용지와 공용로에 울타리를 치고 사람들의 통행을 막았다. 걸을 땅을 확보하는 일은 계급투쟁이 되었다. "실제로 보행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자주 언급하는 독립, 고독, 자유는 조직과 통솔이 없는데서 온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즐거움을 얻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시간, 자유롭게 걸을 장소, 질병이나 사회적 속박에서 자유로운 육체가 그것이다. 이 기본적 자유는 무수한 투쟁의 목적이 되어왔다." 저자가 책 맨 앞에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글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 집회가 간접적으로 언급된다. 집회와 시위도 사실 걸으면서 하는 행동이다. 여기서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 자기 몸의 힘을 느끼는 경험, 집 밖에서 집처럼 편하게 느끼는 경험, 스스로를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고 느끼는 경험, 낯선 사람들과 공종하는 경험"을 느낀다. "시위자들은 일순간 공적 공간에서 공적 존재가 되고 구경꾼이었던 존재가 세력을 가진 존재가 된다." 걷기는 개인적 경험에 머물지 않는다. 공공성을 띠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행위로 많은 이들의 발걸음은 말 그대로 세상을 뒤흔드는 힘을 가진다. 나는 사실 걷는 일을 주로 이동의 수단으로 여긴다. 자연을 느끼고 관찰하는 취미도 없다. 산책하며 사색했던 경험도 거의 없다. 그런데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와 4.27 도보다리 회담을 보며 막연하게나마 걷는 행위가 단순한 육체의 움직임은 아니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며 어렴풋하던 생각이 무엇인지 알았다. 사실 인류가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은 걷기다. 두 발로 걸으면서 자유로워진 손이 대뇌의 발달을 촉진시킨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다. 이 책을 읽었다고 산책하며 사색하는 습관이 새로 생기지는 않을 터이다. 그렇지만 걷는 행위가 가지는 여러 의미가 어떻게 생겨나고 작용하는지 아는 일은 무척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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