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1월, 영국의 존 레인 출판사에서 한 권의 소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두 번째 장편소설 『비밀의 적』이었다. 데뷔작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1920)으로 에르큘 푸아로라는 불세출의 탐정을 탄생시킨 크리스티는 출판사의 기대와는 달리 전혀 다른 방향으로 두 번째 작품을 구상했다. 존 레인은 푸아로가 등장하는 또 다른 본격 추리소설을 원했지만, 크리스티는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와 장르로 독자들 앞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이 작품의 영감은 의외로 일상적인 순간에서 찾아왔다. 크리스티는 어느 카페에서 두 여성이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는데, 그들이 언급한 '제인 피시(Jane Fish)'라는 이름이 무척 재미있게 들렸다고 한다. 이 작은 우연이 소설 속 핵심 인물 '제인 핀(Jane Finn)'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작품의 제목 역시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 처음에는 '즐거운 모험(The Joyful Venture)'이었다가 '젊은 모험가들(The Young Adventurers)'을 거쳐 최종적으로 『비밀의 적(The Secret Adversary)』으로 확정되었다.
출간 이전에 이 소설은 1921년 8월 12일부터 12월 2일까지 《타임스 위클리》에 17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크리스티는 이 연재권으로 50파운드(현재 가치로 약 1,545파운드)를 받았다. 영국판은 7실링 6펜스에, 미국판은 1달러 75센트에 판매되었으며, 전작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보다 더 좋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책의 헌사다. 크리스티는 평생에 걸쳐 단 두 번만 독자들에게 직접 헌사를 바쳤는데,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이 작품이다. "단조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모험의 기쁨과 위험을 경험하기를 바라며"라는 헌사는 1차 세계대전 직후 피폐해진 사회에서 새로운 희망과 활력을 갈망하던 독자들의 마음을 정확히 겨냥한 것이었다.
소설의 프롤로그는 1915년 5월, 대서양 한복판에서 시작된다. 독일 유보트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하는 루시타니아호 갑판 위에서 한 남자가 젊은 미국인 여성에게 다급히 부탁한다. 극비 외교 문서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이 문서는 전쟁의 향방을 바꿀 수도 있는 비밀 조약의 초안으로, 영국 정보기관의 특사 댄버스가 운반하던 것이었다. 젊은 여성의 이름은 제인 핀이었고, 그녀는 문서를 받아들고 배가 가라앉기 직전 구명보트로 탈출했다.
시간은 1919년 런던으로 흐른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영국 사회는 혼란 속에 있었다. 제대한 군인 토미 베레스포드와 전쟁 중 간호사로 복무했던 터펜스 콜리(본명 프루던스 콜리)가 우연히 재회한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였다. 둘 다 일자리도 없고 돈도 없는 처지였지만, 젊음의 패기만은 넘쳐났다. 터펜스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젊은 모험가 주식회사(The Young Adventurers, Ltd.)'를 설립하기로 한다. 어떤 일이든 맡겠으며, 어디든 가겠다는 것이 그들의 모토였다.
두 사람의 첫 번째 의뢰인은 휘팅턴이라는 수상한 남자였다. 그는 터펜스에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후한 보수를 제안했다. 터펜스가 농담 삼아 자신의 이름을 '제인 핀'이라고 밝히자, 휘팅턴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는 당장 입막음용으로 50파운드를 건네며 다음 날 다시 오라고 했지만, 터펜스가 약속대로 찾아갔을 때 사무실은 이미 텅 빈 뒤였다.
토미와 터펜스는 신문에 '제인 핀'에 관한 정보를 구한다는 광고를 냈고, 두 통의 답장을 받았다. 하나는 영국 정보기관의 수장 카터 씨로부터, 다른 하나는 미국인 백만장자 줄리어스 허쉬머로부터였다. 카터 씨는 토미가 전쟁 중 정보 업무를 수행할 때 만났던 인물이었다. 그는 제인 핀이 루시타니아호 침몰 당시 영국 정보원으로부터 비밀 조약문을 넘겨받았으며, 만약 그 문서의 내용이 공개된다면 영국 정부가 무너지고 총파업이 일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줄리어스는 제인 핀의 사촌으로, 실종된 그녀를 찾기 위해 미국에서 건너온 것이었다.
토미와 터펜스는 카터 씨의 의뢰를 받아 제인 핀을 찾는 임무에 착수한다. 그들은 곧 이 사건의 배후에 '미스터 브라운'이라는 정체불명의 악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스터 브라운은 볼셰비키 무정부주의자들과 연결된 범죄 조직의 수괴로, 그 역시 제인 핀과 그녀가 가진 문서를 손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토미와 터펜스는 수많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터펜스는 수상한 요양원에 하녀로 위장 침투했다가 정체가 발각되어 감금당하고, 토미는 적들의 소굴에 잠입했다가 포로로 잡힌다. 그들은 영국 정보기관의 도움과 줄리어스의 재력, 그리고 명망 있는 변호사 제임스 필 에저튼 경의 조언에 힘입어 점차 진실에 다가간다.
마침내 제인 핀이 발견되지만, 그녀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었다. 루시타니아호 침몰의 충격으로 그날 이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미스터 브라운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급선무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가장 의외의 인물이 미스터 브라운으로 밝혀진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신뢰와 존경을 한 몸에 받던 그 인물이었다. 진실이 드러나자 그는 자살을 선택하고, 비밀 조약문의 내용은 공개되어 더 이상 협박의 도구로 쓰일 수 없게 되었다.
사건이 마무리된 후, 토미의 부유한 삼촌이 그를 상속인으로 지명한다. 그리고 사건 수사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깨달은 토미와 터펜스는 약혼을 발표한다. 줄리어스 역시 기억을 되찾은 제인과 결혼하게 되면서,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