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의 사형 협박을 당하며 쓴 작품
이상우는 채국산인이라는 필명으로 1963~1965년까지 <대구일보>에 <신설 임꺽정>을 연재했다. 조선시대 양주를 무대로 활약한 의적 임꺽정 이야기를 모티브로 시국을 풍자한 소설이다. 그의 나이 25세, 피 끓는 청춘이었다. 당시 신문 독자의 인기를 모았고 연재 기간 숱한 화제를 남겼다. <신설 손오공>(1961~1962), <신설 홍루몽>(1966)이라는 작품과 함께 3대 신설 시리즈이다.
그는 <신설 손오공>에서부터 5.16을 비판하는 시국 풍자를 담아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정치권 인사들의 관심도 함께 끌어 괘씸죄 값을 톡톡히 치른다. ‘특별범죄에 관한 임시조치법’, 즉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들먹이며 계엄군법회의에 회부, 구속되는 사태에 이른다. 이후 <신설 임꺽정>을 연재할 때는 그래서 사형 협박까지 받는다.
“백정들이 세력을 모아 중앙 정부를 뒤엎을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뭣이? 중앙 정부를?”
“천하장사 임꺽정이 쿠데타 주동인물인 모양입니다. 사월 초파일을 기해 범백정(凡百丁) 세력을 규합하고...”
이처럼 <신설 임꺽정>에는 특별법이나 당시 5.16 쿠데타를 풍자한 내용이 도처에 깔려 있다.
시대의 굴곡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언론인이자 청년 작가의 역사적 상징성이 담긴 작품을 63년 만에 다시 만난다. 불과 1년 반 전 무도한 내란 사태를 경험하고 아직도 그 잔재가 청산되지 않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 작품의 출간 의미는 특별하다.
문학평론가 한명환은 “신문기자다운 활달함과 감각으로 5.16 군정기 사회상을 면밀히 반영하여 즐겁고 재미있는 임꺽정 담론을 통해 전후기 탈식민적 상황을 재현하였다. 작가는 양주와 개성, 청석골 사건을 교차 편집함으로써 독자들의 재미를 북돋운다. 공간 이동뿐 아니라 시간 이동도 잦아 수시로 5.16 군정기 신문지상의 뉴스들이 논의되고 제공된다.”고 평한다.
이 작품은 연재 당시 대학교수와 문학평론가들의 비평도 이어졌지만 코펜하겐대학의 바버라 월(Barbara Wall) 교수가 ‘한국 신문연재소설과 정치풍자’라는 논제의 논문을 발표해 국제적인 연구과제가 되기도 했다.
날카로운 해학과 배꼽 잡을 구절이 많아 무조건 즐겁다.
이상우는 가히 해학과 풍자의 대가다. 임꺽정이 활약하던 조선 시대와 작품이 창작되던 1960년대 당시의 시대를 전방위적으로, 무지막지하게 퓨전한다.
이번 출간을 진행하며 작가는 예외적으로 당시 시대를 이해할 수 있도록 261개의 주석을 달았다. 이 주석들이 모두 상상을 뛰어넘는 퓨전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장인물만 봐도 대한민국 대표 과부라는 의미의 “과부 코리아”가 있는가 하면, 여성 호걸이자 절세미녀 관군 대장 이가매는 “미쓰리”로 불린다. 마릴린 먼로, 브리지트 바르도, 제인 맨스필드, 소피아 로렌,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 20대 작가 채국산인의 혈기를 끓게 만들었음을 추측케 하는 여배우들이 등장하고, 김희갑, 맘보바지, 청량리 정신병원, 사카린, 파라치온, 제네바 협약, 이강석 사건, 그레셤의 법칙 같은 온갖 사회적 인물과 사물과 사건이 연루된다.
박정희가 5.16 쿠데타 당시 선글라스 쓰고 나타난 것에 대한 풍자다.
“선글라스라도 썼으면 더 멋있을 거야.”
어느 졸개가 이렇게 말했다.
“에끼 이 사람아. 함부로 선글라스 들먹이지 마. 혼난다.”
이승만 정부 시절 유엔대사가 대구를 방문했을 때 학생을 동원해 환영행사를 했는데 매일신문이 사설로 이를 나무랐다가 신문사가 관제 폭력패한테 박살난 필화사건을 풍자한다.
“마치 어느 정권 때 ‘관제 민의’처럼……. 그러나 사또는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처칠 경처럼 그는 V자를 만들어 이들에게 답례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대표 과부 과부 코리아는 육체파다.
“예 속칭 과부 코리아로 통한답니다. 얼굴은 리즈 테일러 같고 가슴은 제인 맨스필드 같고 허리는 소피아 로렌 같고 엉덩이는 마릴린 몬로 같고 곱고 예쁜 손발은 산드라 디 같고 살결은 로로 부리지다 같고—”
임꺽정의 또 다른 여인 난정도 있다.
“얼굴의 아름다움을 다투자면 누구에게도 질 생각이 없는 난정이다.
그러나 바스트를 재고, 히프를 포함한 팔등신 시합에는 통 자신이 없는 것도 난정이다.
개성 있을 때 홀몬(hormone)제니 하는 약을 모두 써 보았지만 가슴은 중하(中下) 정도로 볼륨이 약하다.”
그 외 문장문장마다 재치가 번득인다.
“당신은 나의 포로야.”
“흥! 포로? 포로면 포로 취급을 하시지 이게 뭐예요? 제네바 협정대로 하세요.”
“난 무식해서 제네바 협정 같은 건 몰라.”
“임 장군, 그건 부당합니다. 아니 지금 계엄령 시대도 아니고…… 여자라고 해서 기껏 해놓은 일을 무효로 한다는 것은 세계 인권 선언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소첩에게 그 여인을 주십시오. 하인으로 쓰겠습니다.”
꽉서는 바지춤에서 길쭉하게 생긴 오지병을 꺼냈다.
“어? 술이냐?”
“왜 아니어? 이게 이래봬두 카나디안 위스키야.”
이러한 자유로운 상상력의 끝판이 이 소설이다. 그래서 무조건 재미있다.
이 소설이 63년 전 작품이라고?
만약 현재의 퓨전 역사물, 상상력이 끝 간 데 없는 한국 웹소설의 원조를 따진다면 이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