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고증, 입체적 인간상, 간결한 문체
독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김성한 역사소설의 백미
“〈7년전쟁〉은 단순한 소설 아닌 장대한 스케일의 전쟁사이자 사회사”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그린 최초의 역사소설
김성한의《7년전쟁》은 특별하다. 임진왜란을 다룬 수많은 소설 가운데 국제전 즉, 조선과 일본, 명이 뒤엉켜 치렀던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다룬 최초의 역사소설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전쟁 발발부터 명의 참전과 휴전, 화평협상, 재침과 종전에 이르는 7년의 기나긴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전쟁 당사국인 세 나라의 상황을 가능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감한 소설은《7년전쟁》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같은 특별함 때문에 김성한의《7년전쟁》은 그 가치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작품이 발표되었던 1980년대는 ‘임진년에 왜놈이 일으킨 난리’에 국제전의 성격을 부여하고, 일본과 명나라 내부 사정에까지 차분한 시선을 주는 접근법이 일반에 받아들여지기에는 너무 일렀다. 1984년 연초부터 매주 토요일 〈동아일보〉의 한 면을 가득 채우며 연재되던 이 작품은 1년 만에《7년전쟁》에서《임진왜란》으로 제목을 바꾸는 곡절을 겪었다.
〈7년전쟁〉에서 〈임진왜란〉, 그리고 다시 〈7년전쟁〉으로
작품이 처음 연재되던 때로부터 거의 30년이 흐른 2012년 임진년. 임진왜란 발발 7주갑(420년)을 맞는 올해 처음 선보인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교과서는 임진왜란의 명칭을 ‘임진전쟁’으로 표기했다(국사교과서는 ‘임진왜란’ 표기). 이 명칭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임진란의 국제전적 성격을 조명하지 않고서는 한반도에서 동아시아 삼국이 부딪쳤던 대규모 전쟁, 이후 삼국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국제전의 참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데 학계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료가 새롭게 발굴되고 나라의 위상이 달라지면 지나간 역사를 보는 시선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임진왜란’이 ‘임진전쟁’으로 바뀌는 세월 동안 역사학계에서는 새로운 사료들이 발굴되고, 간추린 왕조실록이 일반 독자들을 위한 교양서로 읽히는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30년 전에 관련 삼국의 자료를 두루 살펴보고 “가능하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운명과 민족의 운명을 생각해 보고자 했던” 대가의 작품은 오랫동안 잊혀진 채로 묻혀 있었다.
〈7년전쟁〉으로 시작하여 도중에 〈임진왜란〉이 되었던 이 작품에 본래의 이름 〈7년전쟁〉을 되돌려 주고 복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쟁, 선조, 김성일, 왜적, 이순신, 거북선 등등 몇몇 단어에서 맴도는 게 임진왜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다. 그 좁은 인식을 동아시아의 기존 패권국 명과 신흥강국 일본의 충돌이 빚어낸 거대한 비극, 그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갔던 오래 전 우리의 자화상으로 성큼 넓혀주는 것이 김성한의《7년전쟁》이다. 우리 근세사의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이었던 임진왜란의 전모와 참모습을 알려줄 작품을 이 외에 달리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60년 만에 돌아오는 임진년인 올해 이 대작을 새롭게 손보아서 다시 내놓는 것이다.
역사소설은 사료(史料)라는 큰 가지에 잎사귀와 꽃을 붙여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
김성한의 역사소설은 시대와 조금씩 어긋나곤 했다.《7년전쟁》에 앞서 나왔던《고려태조 왕건》 또한 역사소설이 민중주의 일색으로 흐르던 80년대에 궁예와 왕건, 견훤 등 왕조를 창업한 지도자들의 이야기로 제 가치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은 채 홀로 묵묵히 책을 읽고 홀로 묵묵히 글을 썼던 김성한의 문학적 태도에서 가장 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역사소설은 사실(史實)을 밝히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고증에 철저했던 김성한식 역사소설 쓰기에서 기인하는 바도 그에 못지않게 크다고 하겠다.
작가는《7년전쟁》의 연재를 마치면서 “흔히 시(時)는 음악, 소설은 그림에 비유되거니와 이미 완결된 시대상(時代相)을 그리는 역사소설은 그림 중에서도 풍경화에 속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풍경화는 무엇보다도 그 대상에 충실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가능한 한 관계 3국의 사료(史料)들을 광범하게 조사하여 시대적인 배경, 전쟁과 평화의 표면과 이면을 충실히 재현하려고 노력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사실(史實)’을 밝혀내려는 작가의 노력이 임진왜란을 둘러싼 동아시아 삼국 간의 복잡한 얽힘을 드러냈고, 전쟁은 인간이 타고난 온갖 아름다움과 추함을 한꺼번에 드러내주는 거대한 소용돌이임을 생동감있게 보여주었다.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이 허구의 이야기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간세상의 진실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김성한의 역사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역사소설은 사료(史料)라는 큰 가지에 잎사귀와 꽃을 붙여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이라고 스스로 규정했듯 작가는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어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이다.
입체적 인간상, 간결한 문체, 김성한의 복원
현실의 인간은 단선적이지 않다. 악으로 점철된 인간도, 선으로만 감싸인 인간도 없다. 세상사 또한 선악의 이분법으로 명쾌하게 재단되지 않는다. 김성한의 역사소설은 온갖 아이러니로 뒤덮인 세상을 살아가는 현실의 인간들을 입체적으로 그려 낸다. 가령 김성일만 해도 꼬장꼬장한 성질 탓에 판단을 그르치지만 전쟁이 일어나자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자의 경험으로 예전의 김성일이 아닌 것으로 그려진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온갖 인간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지금의 현실에 겹쳐놓고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거기에다 김성한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힘있는 문체는 소설 읽기의 재미를 유감없이 선사한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썼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힘있는 문체는 5권 2천5백여 쪽에 이르는 분량의 압박을 잊게 만든다.
김성한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역사소설의 대가로 기억된다. 긴 호흡의 대하 역사소설은 도서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치부되는 게 요즘의 세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장대한 서사가 사라진 이 시대에 김성한 역사소설이 갖는 강한 흡입력과 고증에 충실한 사실성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7년전쟁》의 복간이 역사소설의 대가 김성한의 작품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