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로우 사이세이
시인, 소설가. 가나자와 출생. 본명은 데루미치(照道). 무사와 하녀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으며 생후 바로 양자로 보내졌다. 고등소학교를 중퇴하고 가나자와 지방재판소에서 급사로 일하는 동안 상사로부터 단가를 배워 마침내 시인을 꿈꾸게 되었다. 퇴직하고 상경과 귀향을 되풀이했는데 『푸른 물고기를 낚는 사람』(1912)부터 초기 서정시의 꽃을 피웠다. 이후 여러 시집을 발표하여 하기와라 사쿠타로와 함께 시단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소설도 집필하여 『유년시대』, 『성에 눈뜰 무렵』으로 유소년기의 체험을 서정과 감성의 세계로 대상화했다. 이후 남녀의 적나라한 생태를 감성적으로 묘사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꿀의 정취』 등과 같은 가작을 남겼다.
오카모토 가노코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아토미 여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문예세계』, 『요미우리신문』 등에 단가, 시를 투고했다. 작은 오빠, 그리고 친구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영향을 받았다. 졸업 후에는 『명성』과 『스바루』 등에 단가를 발표했다. 1910년에 우에노 미술학교의 학생이었던 오카모토 잇페이와 결혼하나 서로의 강한 개성이 격돌했고, 가족의 불행도 있었기에 결혼생활은 파탄을 맞이했다. 그 결혼생활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부부가 종교편력을 시작했고 결국에는 대승불교에 다다르게 되었다. 1936년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모델로 한 작품으로 문단에 등장. 그 후, 「모자서정」, 「가령」, 「노기초」 등을 발표했다.
나가이 가후
1879년 도쿄도 출생. 1900년 가부키 극장 전속 작가로 들어가 야학에서 프랑스어를 배우며 에밀 졸라와 보들레르에 심취했다. 1902년 『지옥의 꽃』을 발표해 모리 오가이에게 극찬받았다. 1903년 미국을 거쳐 프랑스에 머물다가 1908년 귀국, 이듬해 출간한 『프랑스 이야기』가 풍기 문란이란 이유로 판매 금지당했다. 1910년 게이오대 문학과 교수가 되어 『미타문학』을 창간하고 편집했다. 이후 동시대 문명에 대한 혐오감을 토로하며 탐미주의 화류소설 『묵동기담』, 산책 수필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등을 남겼다. 1959년 4월 30일 여든 살에 세상을 떠났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도쿄 니혼바시 상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무기력한 타입, 어머니는 성격이 강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환경이 준이치로의 정신형성에 크게 작용했다. 도교 부립 제1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아버지가 가업에 실패해 서생을 하며 제1고등학교 영법과에 진학, 이후 도쿄 제국대학 국문과에 적을 두었으나 1911년 학비 미납으로 퇴학, 곧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제2차 『신사조』를 도쿄 제국대학 재학 중에 창간, 발표한 「문신」이 나가이 가후의 극찬을 받았다. 마조히즘의 묘사나 높은 이야기성은 자연주의 중심이었던 문단에 충격을 주었다. 관동대진재 후 간사이로 이주, 일본의 전통문화로 회귀하여 「세설」이나 「음예예찬」 등을 발표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소설가. 도쿄 출생. 출생 직후 어머니가 발광, 외가인 아쿠타가와 가의 양자가 되었다. 도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 도요시마 요시오, 기쿠치 간 등과 『신사조』를 창간했다. 1916년에 발표한 「코」로 나쓰메 소세키의 격찬을 받았으며 뒤이어 「참마죽」, 「손수건」도 호평을 얻어 신진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작품의 대부분은 단편으로 왕조 시대, 근대 초기의 기독교 문학, 에도 시대의 인물 · 사건, 메이지 시대의 문명개화기 등 여러 시대의 역사적인 문헌에서 소재를 취해, 스타일과 문체를 달리한 재기 넘치는 다양한 작풍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는데 전부 소설의 기술적인 세련미와 형식적인 완성미를 추구했다. 예술파를 대표하는 작가로 활약했으며, 후반기에는 자전적인 소재가 많아져 「점귀부」, 「현학산방」 등 우울한 경향이 강해졌다. 1927년에 ‘나의 장래에 대한 뭔지 모를 그저 희미한 불안’을 안은 채 수면제를 복용하여 자살했다. 향년 35세. 대표작으로는 「라쇼몬」, 「코」, 「참마죽」, 「지옥변」, 「톱니바퀴」 등이 있다.
에도가와 란포
미에 현 출생. 본명은 히라이 다로. 필명은 미국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에서 따온 것이다. 와세다 대학 졸업. 다채로운 직업을 경험한 후 집필한 「2전짜리 동전」이 『신청년』의 편집장인 모리시타 우손에게 인정을 받아 문단에 데뷔. 이후 「D언덕의 살인사건」, 「인간의자」 등 기이하면서도 과학적 추리에 바탕을 둔 작품을 차례로 발표, 또한 아동 소설로도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내외 탐정소설 소개, 연구 · 평론, 에도가와 란포 상 창설 등 후진 교육에도 힘썼다.
호리 다쓰오
도쿄 출신으로 관동대진재 때 어머니를 잃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사사했으며 도쿄 제국대학 국문과에 진학한 이듬해인 1926년에 동인지 『당나귀』를 창간, 좌경화되어가는 동인들 속에서 콕도, 아폴리네르 등의 번역을 축으로 하여 예술 자체의 혁신을 지향했다. 아쿠타가와의 자살에 충격을 받았으며 숙환인 늑막염에 시달리면서도 처녀 단편집을 출간했고, 심리해부가 돋보이는 작품 「성가족」으로 이 시기 예술파를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게 되었다. 이후 소설의 형식과 방법을 끊임없이 탐구했는데 특히 1938년에 약혼녀의 죽음을 계기로 태어난 「바람이 분다」는 릴케에게서 섭취한 운명 이상의 삶의 사상을 지성과 서정이 융합된 문장으로 기술하여 산문예술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전쟁 말기에는 시골로 피난했고 그곳에서 병마와 싸우며 전후의 문학 활동에 힘을 쏟았으나 1953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대표작으로는 「성가족」, 「아름다운 마을」, 「바람이 분다」, 「나오코」 등이 있다.
가지이 모토지로
소설가. 오사카 출생.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 중퇴. 제3고등학교 입학 후, 나카타니 다카오, 도노무라 시게루 등과 친분을 맺어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퇴폐적인 생활을 하다 폐결핵에 걸렸으나 작가의 길에 뜻을 둔다. 도쿄 제국대학 입학 이듬해에 나카타니, 도노무라 등과 잡지 『아오조라』를 창간하여 「레몬」, 「성이 있는 마을에서」 등 훗날 가지이의 대표작이라 평가받은 가작을 발표했으나 문단의 주목은 받지 못했다. 1926년부터 이즈의 유노시마 온천에서 요양, 그 사이에 「겨울날」, 「겨울의 파리」 등 자신과 외계에 대한 깊은 인식을 보인 작품을 집필했다. 사후 점점 좋은 평을 얻어 지금은 일본 근대문학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