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예술 작품, 값비싼 보석뿐 아니라 뭇 여인들의 마음까지 훔치는 낭만적인 모험가!
그래서 파리 시민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괴도 신사 루팡’.
추리소설의 클래식 <아르센 루팡 시리즈>를 현대적인 번역까지 더해 리디북스에서 만난다!
갈수록 커지는 스케일... 범죄현장마다 나타나는 암호 813...
프랑스를 넘어 온 유럽을 들끓게 만든 이 사건은 과연 어떻게 끝날 것인가?
그리고 루팡은 이 치열한 전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조용! 그 호칭은 사용하지 마시오.”
찾아온 자는 다름 아닌 독일 황제였다.
“그럼 제가 뭐라고 부르면 좋겠습니까, 발데마르 백작님?”
루팡은 황제의 뒤에서 잠자코 서있던 남자에게도 정중히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발데마르 백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루팡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지러이 흩어져있던 파편들이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자신의 짐작이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하긴, 813의 비밀이라는 단어 하나로 여기까지 온 독일 황제를 호위하는 인물, 그것은 발데마르 백작일 수밖에 없었다.
“호칭이야 아무래도 좋소. 기밀문서의 목록…… 그것들……”
황제는 좀처럼 말을 마치기가 어려운지 뜸을 들였다.
“예.”
“넘기시오.”
“……”
“어떤 사본도 만들지 마시오. 목록 문서, 편지 꾸러미, 모두 다 넘기시오.”
“……”
황제는 부탁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명령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따를 수밖에 없는 힘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바로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권위였다. 그러나 루팡은 순순히 가진 패를 내놓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황제에게 제안을 할 셈이었다.
“물론 다 넘겨드리겠습니다.”
“어디에 있소?”
“이미 지키고 계시지 않습니까?”
루팡이 반문했다.
“당신도 벨덴츠 성에 문서가 있다고 믿는 거요? 거긴 이미 나흘을 꼬박 뒤졌소. 그런데……”
“홈즈가 찾아내지 못했군요. 그래서 이렇게 내게도 기회가 온 거고.”
루팡이 자못 흥미롭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최고의 명탐정인데…… 이상한 일이오. 글쎄, 당신의 추측은 어떨지.”
황제의 질문에 루팡은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어깨를 펴보였다. 자신 있다는 태도였다.
“추측? 그럴 리가요. 확신입니다.”
황제는 초조한 듯 제자리를 서성거렸다. 뭔가 고민하는 눈치였다.
“얼마면 되겠소?”
“네?”
“문서를 넘겨주는 대가 말이오. 천하의 괴도 루팡이 그냥은 주지 않을 거 아닙니까?”
루팡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5만? 10만?”
“……”
루팡이 대답하지 않자 황제가 빠르게 다시 말했다.
“20만?”
“엄청난 금액이군요. 하지만 글쎄요. 아시다시피 가격을 매길 수가 없을 만큼 중요한 편지들이라…… 한 나라의 군주라면, 옆 나라 영국의 국왕께만 여쭈어도 한 100만 프랑 이상은 주시지 않을까요?”
“……”
황제는 대답이 없었다. 루팡의 의도가 뭔지 곱씹어보는 듯했다.
“하지만 영국 국왕께보다야 지금 말씀하시는, 그러니까 선생님께 훨씬 중요한 게 아니겠습니까?”
“……”
루팡은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말하면서 황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볍게 숙여보였다.
“그러면 300만 프랑 정도의 가치는 있지 않을까요?”
“…… 그렇소.”
황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한 것은 루팡이었다. 아무리 한 나라의 군주라고는 하나, 그런 엄청난 금액의 조건을 바로 수긍하다니. 과연 왕족의 자산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선생님. 제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수백만 프랑보다 훨씬 가치 있고, 소중한 것, 그것을 얻고자 합니다.”
황제는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이마를 찌푸렸다.
“그게 뭐요?”
“자유.”
“여기서 나가게 해달라는 거요?”
“그렇습니다.”
황제는 루팡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권한 밖이오. 당신네 나라 사법부에 고하시오.”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발랑글레 총리에게 한 마디만 해주시면 됩니다.”
“한 마디?”
“감옥 문을 열어달라는 한 마디.”
황제가 날카롭게 웃었다.
“당신네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면 총리 또한 맘대로 죄수를 석방할 수는 없을 거요.”
루팡도 피식 웃어보였다.
“석방? 그런 절차는 저도 싫습니다. 재미 없잖습니까?”
황제는 그제야 루팡의 요구가 무엇이지 깨달았다.
“…… 탈옥을 도와 달라?”
“한 마디면 됩니다. 교도소 문을 살짝 열어놔 달라고.”
“당신네 총리가 그 말의 의미를 못 알아먹는 천치는 아닐 텐데.”
“그거야……”
루팡이 빙긋 웃었다.
“우리 총리와 잘 협상하실 만한 뭔가가, 선생님께는 있지 않겠습니까?”
“…… 기밀문서와 프랑스의 국익을 놓고 거래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