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예술 작품, 값비싼 보석뿐 아니라 뭇 여인들의 마음까지 훔치는 낭만적인 모험가!
그래서 파리 시민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괴도 신사 루팡’.
추리소설의 클래식 <아르센 루팡 시리즈>를 현대적인 번역까지 더해 리디북스에서 만난다!
“맙소사, 이 응접실……! 내가 납치됐었던 바로 거기예요!”
아름다운 아가씨 두 명이 일주일 간격을 두고 동일한 일당들에게 납치됐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신사 중의 신사로 칭송 받는 멜라마르 백작 저택의 응접실이 자신들이 끌려갔던 장소라고 진술한다. 그러나 멜라마르 백작은 결코 사실이 아니라며 자살까지 시도하는데……
백작의 결백을 주장하는 질베르트 멜라마르는 이게 모두 ‘멜라마르 저택의 저주’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사건의 중심에는 루팡보다 한 수위의 추리력을 과시하는 ‘앙투완’이라는 젊은 신사가 나타나는데……
아름다운 아를레뜨를 얻기 위한 루팡의 추리가 시작된다!
곧 레진의 차례였다.
“아, 긴장돼요.”
레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가장 아름다운 분께 표가 몰릴 테니까. 바로 레진 양 같은.”
데느리스의 찬사에 레진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드레스가 아닌 미모 대결이라면...... 지금 저 분이 더 아름답지 않나요? 셰르니츠 양장점의 여공인데, 직접 디자인한 옷을 입었다고 해요. 매력적인 친구죠.”
데느리스는 레진이 가리키는 무대 위의 모델을 바라보았다. 늘씬하고 굴곡 있는 그녀의 몸매가 단조로운 디자인의 드레스를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화려한 보석이나 장신구 없이도 돋보이는 세련미에 데느리스 역시 감탄하고 말았다.
“누구죠, 저분은?”
“아를레뜨 마졸이라고 해요.”
쑥스러워 하면서도 당당하게 무대 위에서 포즈를 취하는 아를레뜨를 바라보던 레진이 입을 열었다.
“제가 심사위원이라면 주저 없이 아를레뜨에게 1등을 줄 거예요.”
경쟁자로서 질투가 날 법 한데도 레진은 진심으로 아를레뜨를 칭찬했다. 화를 낸 것은 오히려 반 우뱅이었다.
“레진! 저 여자의 천 쪼가리가 당신의 은 자수 재킷이며 다이아몬드에 댈 만하겠소?”
레진은 반 우뱅을 슬쩍 돌아보았다가 다시 무대 위로 고개를 돌렸다.
“아름다움이 꼭 돈과 비례하는 건 아니에요.”
“비싼 게 곧 예쁜 거요. 그러니까 당신은 반드시 조심해야 하고.”
레진이 뾰로통하게 입을 내밀었다.
“뭘 조심해요?”
“도둑맞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그 재킷과 튜닉은 그냥 천으로 짠 게 아니니까.”
“그렇게 비싼 거라면...... 무대까지 데려다 드릴까요?”
반 우뱅의 말에 데느리스도 걱정된다는 듯 말을 보탰다. 레진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반 우뱅 씨 말씀은 새겨듣도록 할게요. 멍청하게 굴지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
반 우뱅은 긴장이 되는지 뒷목을 주무르며 고개를 돌렸다.
“뭐, 만일의 상황이 되면, 치안국의 베슈 반장이 출동할 거요.”
데느리스가 관심을 보였다.
“아, 그 바르네트 탐정 사무소와 협력했던 베슈 형사반장 말입니까?”
미제로 남을 뻔했던 몇 건의 사건들을 명쾌하게 해결한 사립탐정 짐 바르네트와 베슈 형사의 공조를 모르는 파리 시민은 없었다. 반 우뱅은 큰 일 날 소리라는 듯 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웠다.
“그 양반 앞에서 바르네트 얘기는 금물이오. 모르긴 몰라도 그 작자에게 심하게 데였던 모양이야.”
“아, 그렇군요. 어쨌거나 그 베슈 형사님이 당신의 다이아몬드를 지키는 일을 맡았단 거군요?”
“그렇소. 지금은 하필 휴가 중이라 최고 엘리트라는 전직 형사 셋을 보내준 거지.”
반 우뱅은 출입구 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험상궂은 표정으로 사방을 경계하고 있는 세 명의 경비원들이 있었다. 데느리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일개 대대를 투입해도 안 되는 일들은 안 되는 건데......”
레진은 경비원들과 함께 좌석을 떠났다. 데느리스는 그녀가 뒤통수가 따가울 거라는 생각을 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객석을 빠져나가 무대 아래에서 대기한 후 배우 용 출입구로 들어가는 그녀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녔기 때문이다. 그녀의 순서는 11번째였다. 10번째 모델이 순서를 마치고 11번째를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 동안, 극장 안은 옷깃 스치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마치 클라이맥스 직전의 오케스트라 같았다. 절정을 알리는 나팔소리처럼 사람들의 환호가 레진의 입장과 동시에 터져 나왔다.
무대 위의 레진은 깃을 활짝 펼친 한 마리의 공작새 같았다. 은실로 수놓은 어깨 위의 재킷, 그 아래 튜닉의 허리 부분은 온갖 유리세공이 박힌 띠가 둘러져 있었다.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가슴부분은 오로지 다이아몬드로만 제작되어 있었다. 다이아몬드들은 무대 위 거대한 샹들리에가 비추는 빛을 모조리 흡수해 다시 내뿜고 있었다. 마치 레진 자체가 빛 덩어리 같았다.
“하...... 이거 내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워. 레진 오브리는 여왕의 후손임에 틀림없어.”
다이아몬드 튜닉의 주인, 반 우뱅마저도 그녀의 아름다움에 취해 감탄했다. 그는 주변의 다른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레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던 데느리스 옆에서 우쭐거렸다.
“이보시오, 탐험가 양반. 내가 왜 레진에게 저 옷을 입혔는지 아시오? 내 아내가 되면 받을 수 있는 선물을 미리 경험하게 해준 거요. 그녀도 보석을 좋아하는 여자니 생각이 있다면 내 프로포즈를 받아들이겠지.”
“......”
“웬만한 뱃사람도 이만한 선물을 할 만한 능력은 없지 않겠소?”
반 우뱅은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자기 여자를 넘보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불쾌해진 데느리스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걱정마시오. 난 절대로 친구의 여자를 넘보지 않으니까. 능력이랑은 무관하게 말이지.”
“......”
이번에는 반 우뱅이 얼굴을 찌푸렸다. 불과 지난주부터 알게 된 데느리스는, 지금처럼 묘하게 신경을 긁는 말을 할 때가 있었다. 화를 내자니 신사답지 않아 보이고 웃어 넘기자니 분통이 나게끔 만드는 것이다. 우뱅은 이번엔 참지 않기로 했다. 그는 데느리스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내가 왜 당신의 친구요?”
“조용히 해보시오.”
데느리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에게 지분거리는 우뱅의 팔뚝을 잡았다.
“뭐요?!”
무시 당했다고 생각한 반 우뱅이 더욱 언성을 높이려는 찰나 데느리스가 고개를 홱 돌렸다.
“조용히 좀 하라고!”
그의 진지한 표정에 우뱅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오?”
“무대 뒤 좀 보세요.”
“무대 뒤?”
“당신의 그 잘난 다이아몬드가 위험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