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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사 연구 2 상세페이지

만선사 연구 2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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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정가
45,000원
전자책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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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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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00원
출간 정보
  • 2026.05.20 전자책 출간
  • 2026.03.27 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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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37.9만 자
  • 38.3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91169095693
UCI
-
만선사 연구 2

작품 정보

*이 콘텐츠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20세기 초 일본의 한국사 연구를 이끌면서
치밀한 실증과 과감한 해석으로 큰 영향을 준
이케우치 히로시의 대표작 『만선사 연구』 완역!

근대적 방법론에 입각한 한국사 연구의 시작
통설로 자리잡은 견해들이 만들어지고 논쟁·수정·정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케우치 히로시池內 宏(1878~1952)는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동양사학자로, 특히 만선사滿鮮史(만주와 조선의 역사) 연구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일본 동양사학계 내에서는 방대한 사료 섭렵과 치밀한 고증 능력으로 ‘거두’로 인정받지만, 한국 사학계에서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등 일제의 식민 지배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한 식민사학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고구려의 발상지와 수도 이전, 광개토대왕비 연구 등에 대해 집중했으며 유리왕이 옮긴 국내성을 집안集安으로 비정하는 기초를 닦았다. 이는 오늘날 고고학적 성과와도 상당 부분 일치한다. 집안의 통구 일대 고분들을 조사하여 광개토대왕릉비와 장군총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했다. 낙랑군을 평양 일대로 보는 등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 내로 비정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한국사의 시작을 외세의 지배로부터 설정하려는 식민사학적 구도를 강화했다는 국내 학계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번 『만선사 연구』 전3권의 완역은 이케우치 히로시의 연구의 대부분을 망라한다. 번역은 해외 한국학의 연구 성과를 꾸준히 번역 소개해온 김범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가 맡았다. 이번 번역에서 역자는 池內宏, 『滿鮮史硏究』上世 2책과 中世 3책(吉川弘文館, 1933~1963)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으며 「숙신고肅愼考」 「물길고勿吉考」 등 한국사와 직접 관련이 적다고 판단되는 논문들은 번역에서 제외했다. 원서의 체제와 도판, 구두점 등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살렸으며 학자들이 연구의 기본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케우치 히로시는 사실 쓰다 소키치 등과 함께 그동안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빼놓지 않고 거론되어온 학자다. 이번 번역으로 이케우치 히로시의 연구 성과를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물론 고려시대까지의 한국 고대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도 지금 통설로 자리잡은 학설들이 최초에 어떤 모습으로 제기되어 완성되어나갔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1권의 주요 주장

이 책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주요 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
1권 5편에서는 진번군眞番郡의 남재설을 주장했다. 저자는 일본의 주류적 학자들(북재설의 대표자인 시라토리 구라키치 등)들의 견해를 날카롭고 치밀하게 비판한다. 4편에서는 고구려가 기원전부터 뚜렷한 세력이었음을 인정한다. 주몽의 건국 전설에 역사적 사실이 반영돼 있음을 긍정하는 동시에 그 구조가 부여의 동명 전설과 일치하는 것은 민족의 본류와 지류 관계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생각했다. 전한前漢 소제 원봉 4~5년 어떤 사정에 따라 송화강 유역에서 남하한 부여족의 한 세력이 요동군과 한반도 4군의 통치 밖에 있던 동가강 유역을 차지하고 그곳에 고구려를 건국한 것으로 보인다.(4편)
고구려의 건국을 뜻하는 그 이족夷族이 동가강 유역을 차지한 시기는 제2현도군의 성을 쌓은 것이 소제 원봉 6년(기원전 75) 정월이었다는 것에서 미뤄 그 전해, 곧 원봉 5년(기원전 76)이었음이 거의 분명하다고 보았다. 이런 견해는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연도(기원전 37)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주몽이라는 구체적 인물과 그 전설적 행적, 그리고 태조왕까지의 고구려 역사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요컨대 4군 설치 뒤 30년이 지나면서 한이 이미 7년 전 폐지한 진번군 외의 세 군을 병합하는 동시에 옥저성의 현도군 이름을 이어받은 제2현도군을 요동군 동쪽 변방에 신설한 것은 고구려가 동만주에서 건국하면서 일어난 정세 변화에 곧바로 대응한 조처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케우치 히로시의 견해다. 그러므로 제1현도군의 폐지와 함께 이뤄진 제2현도군의 신설과 고구려의 건국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9편에서는 고국원왕 남무의 실재 여부에 대한 비판이 이뤄진다. 이 견해는 그뒤 좀더 정밀하게 보강돼 현재 일본 학계의 주류적 견해가 된다(다케다 유키오 등). 이것을 부정하려면 정확한 근거를 갖고 논리적으로 비판해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역자의 견해다.


2권의 주요 주장

1편에서 진흥왕 황초령 순수비가 옮겨졌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정밀하고 방대한 고증이 펼쳐진다. 가령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윤관이 요의 세력이 미친 함흥평야의 여진을 정복해 영주 등 9성을 쌓으면서 그 점유를 역사적 이유가 있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 그동안 철령 부근에 있던 진흥왕의 무자 순수비를 일부러 점령지 북쪽 경계의 요충지인 황초령으로 옮겨 세웠다고 생각한다.”(98쪽)
그 뒤 마운령비가 발견됨으로써 이 이치설移置說은 부정됐지만 『삼국사기』를 바탕으로 진흥왕 무렵 신라의 북쪽 경계를 고증한 시도는 의미 있게 평가된다.
이케우치는 정복지역 내에 있던 고구려의 고비古碑가 바로 윤관 자신이 옮긴 진흥왕순수비였지만, 당시에 이미 상당히 마모된 비면을 정밀 조사하지 않고 고구려비로 속단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파악했다. 사료 비판을 통한 사실 구명이라는 실증사학의 진수를 보는 것 같은 치밀한 고증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문헌 중심의 관점에서 예정된 결론은 신라의 동북경은 안변 이북일 수 없는데, 그것과 내용이 다른 황초령비를 부정하기 위해 번쇄한 실증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김영하, 「일제 시기의 진흥왕 순수비론」, 『한국고대사연구』 52, 2008, 451쪽)
2·3편에서는 삼국통일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 지루할 정도로 자세하게 서술했다. 그 과정에서 사료의 비교·검토·수정 등이 정밀하게 이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6편 「신라인의 무사적 정신」에서는 신라인의 무사적 정신이 삼국통일의 원동력이었다고 높게 평가했다.


3권의 주요 주장

10편에서는 고려시대사뿐 아니라 한국사 전체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인 윤관의 9성 개척의 지리적 범위를 정면으로 다룬다. 이 글은 쓰다 소키치의 「윤관 정략 지역고」(『만선역사지리연구』)와 함께 함흥설을 대표한다. 현재 한국사학계에는 정설이 없는 상황이다. 기원전이나 삼국시대도 아니고 1100년대의 사건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은 작지 않은 문제로 볼 수 있다.
함흥설을 비판하려면 이 두 논문을 철저히 분석해 반론을 제기해야 할 것이다. 사료에 나오는 거리를 중시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아래는 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윤관이 새로 쌓은 6성의 이름을 아뢴 것은 함주 대도독부사와 4주 1진의 방어사가 임명된 2월 13일 이전이며, 유형약을 보내 승리를 알린 무렵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6성의 건설은 늦어도 예종 3년(1108) 정월 말, 곧 정벌군이 출발한 날부터 한 달 반 안에 이뤄진 것으로 여겨진다.”(400쪽)
21편에서는 철령 문제의 핵심을 지적했다. 철령 이북을 반환하라는 명의 요구에 대해 고려는 처음에 함경도의 철령으로 오해했지만 그것이 아님을 명확히 지적했다.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인데도 현재 한국 학계에서는 아직도 정설이 없는 상태다.
관련하여 본문에서 이케우치 히로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러나 명이 말한 철령은 결코 함경도 남쪽의 고갯길을 가리킨 것이 아니다.”(848쪽) “명이 철령이라고 부른 곳은 반드시 강계(만포) 맞은편 황성黃城(皇城) 부근이 돼야 한다. 『명실록』(권189)의 다음 기사도 그것을 증명한다.(849쪽) “요동도사가 지휘 두 사람을 보내 군사 1000여 명을 이끌고 강계에 와서 철령위를 설치하려고 한다”는 두 번째 보고가 도착하면서 그 철령위는 고려인이 잘 알던 황성黃城(皇城)이라는 것은 이미 판명됐다고 생각된다.(873쪽)


“대부분의 일처럼 학문도 교류와 소통, 비판과 조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비판하려면(또는 인정하려면) 전체를 더 충실하고 더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런 생각에서 이 번역을 시도해봤다.” _ 옮긴이의 글

일본 학계의 인물평

“이케우치 교수는 한국·‘만주’의 고대사를 강의했다. 개설은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개별 연구만 했다. 또 연구의 초보적인 것은 강의하지 않았으며, 학생들이 이해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 강의했다. 강의 초고는 깔끔한 문장체의 원고로 돼 있어서 그대로 논문으로 발표할 수 있는 것이었다. (…) 그의 연구에는 독특한 명석함이 있었다. 그것은 사료 비판에 기초를 둔 역사의 재구성이다. 그는 사료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사료의 착오를 항상 적출摘出해 사료 배후에 있는 사실을 추구했다. 또 사료에 남아 있지 않은 사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풍부한 사료가 있을 때보다 사료가 적은 분야를 논리적으로 유추하는 데 그의 장기가 발휘되었다고 생각한다.”
_하타다 다카시旗田巍(1908~1994), 전 도쿄도립대학 교수

“그 뒤까지 미즈타니 데이지로水谷悌二郎 씨의 마음에 남아 있던 사람은 한국사의 이케우치 교수였던 것 같다. 이케우치 교수의 독특한 사료 비판과 무단적武斷的으로도 보이는 날카로운 추론은 그때는 순순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강의를 들을 때마다 열심히 필기했고, 그 노트를 평생 소중히 간직해 지금도 남아 있다. 특히 광개토왕비를 깊이 연구하게 되면서 자주 이케우치 노트를 다시 읽거나 그의 관련 논문을 다시 읽었으며 강연회 등에 참석하기도 했다. 일기장에 신문의 부고 기사를 붙인 것은 1952년에
별세한 이케우치 선생의 경우뿐이며, 같은 사례는 달리 없다.”
_ 다케다 유키오武田幸男(1934~2021), 전 도쿄대학 교수

“이케우치 교수는 자료를 읽으면서 ‘이곳은 뜻이 통하지 않는다’거나 ‘이 글자는 사용법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연필로 적어놓았다.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히 읽어 구두점도 세밀히 구분해 찍었다. 그런 성실함을 우리는 좀처럼 해낼 수 없을 것 같다. 4000장의 원고라면 그렇게 꼼꼼히 읽을 경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반년 정도는 분명히 걸릴 것이다.”
_ 미카미 쓰기오三上次男(1907~1987), 전 도쿄대학 교수

작가

이케우치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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