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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라, 침묵이여 상세페이지

말하라, 침묵이여

W. G. 제발트를 찾아서

  • 관심 1
소장
종이책 정가
55,000원
전자책 정가
30%↓
38,500원
판매가
38,500원
출간 정보
  • 2026.06.12 전자책 출간
  • 2026.02.23 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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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EPUB
  • 약 61.9만 자
  • 34.2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91169095778
UCI
-
말하라, 침묵이여

작품 정보

W. G. 제발트 전기라는 그물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쓰기

“그가 한 모든 말을 믿었다.” 전기작가 캐럴 앤지어는 『이민자들』의 영어판이 출간된 직후인 1996년 W. G. 제발트를 처음 인터뷰했다. 친절하고 울적하고 유쾌했던 그는 인터뷰 자리에서 작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해준 말들을 전적으로 믿었던 전기작가에 의해 『주이시 쿼털리Jewish Quarterly』로 발행된 이 인터뷰는 단행본 『기억의 유령』에도 실려 우리 독자를 포함한 전 세계 제발트 독자들에게 널리 소개되었다. 첫 인터뷰 후 6년이 지나, 제발트 없는 세상에서 『말하라, 침묵이여』라는 그의 전기를 펴낸 앤지어는 뼈아픈 자백으로 이 방대한 여정을 시작한다. “취재를 하면서 내가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라고. 인터뷰 당시 제발트는 거짓을 꾸며내고 있었고, 이로 인해 “내가 내 손으로 전기라는 그물에 구멍 하나를 뚫은 꼴”이 되었노라고.

나는 평전 집필에 필요한 조사를 하는 동안 유령처럼 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괴롭힌 질문을 그때 처음으로 마주했다. 제발트는 인터뷰를 통해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 (…)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었던 걸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다. 독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주길 바랐고, 그것을 보증하기 위해 나를 이용했다는 것.(59-60)

그의 작품에 탁월함과 독창성을 부여한 바로 그 방식대로, 제발트는 현실에서도 사실과 허구를 뒤섞고 있었다. 전기 출간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앤지어는 제발트를 ‘허구주의자 fictionalizer’라고까지 말한다. “그는 늘 모든 것을 이야기로 만들었고, 그렇게 자기 자신도 이야기로 만들었어요.”(Andrew Koenig, On Sebald’s “Self-Protective Porkies”: An Interview with Carole Angier, Havard Review Online, December 8, 2021) 실제로 제발트는 많은 인터뷰어에게, 심지어 중요한 학자들에게도 거짓을 말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앤지어가 이 말끝에 덧붙인 관점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드러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드러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정직하게 드러내느냐 아니냐죠.” 한국어판으로 1008쪽에 이르는 방대하고 치밀한 전기인 『말하라, 침묵이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관점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그러니까 사실과 허구 속에서 ‘진실’을 가려내면서 신비의 연기에 감싸인 한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추적해간다.
어떤 면에서 제발트가 직조한 작품이란 세계를 한 올 한 올 풀어헤친 다음 거기서 잡히는 진실의 실마리들로 작가라는 세계를 다시 짰다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작품과 공명한다. 그렇다고 제발트를 재료로 삼아 그 미스터리한 재료 본연의 특성을 오롯이 담아내고자 한 이 책의 시도, 평전 쓰기의 전범을 보여주는 앤지어의 충실함을 독자가 두려워해야 할까? 저자는 전기라는 문학 장르의 이 태생적이고 모순적인 운명을 작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작품에 대한 통찰을 딛고 더 넓은 가능성의 세계로 내보낸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제발트의 독창성-허구의 텍스트에 사진과 문서를 배치하는 방식-은 진실을 구성하는 이 핵심 요소를 구현한다. 독보적인 현실 감각을 심어주기 무섭게, 독자들이 이야기가 허구임을 깨닫는 순간 그 현실 감각을 홱 낚아채 가는 것이다. 그러면 독자는 그 어떤 단순한 픽션이나 논픽션을 읽을 때보다 더 예리하게 진실의 난해함을 느끼게 된다.(782)

여느 진실이 그렇듯, W. G. 제발트라는 인물의 진실도 복잡하고 난해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독자들은 그래서 그 진실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앤지어는 그런 독자들을 믿으며 쓴다. “하지만 나는 독자에게 진실을 상기시킬 것이다. 그것이 전기작가의 일이니까. 그런고로 작가들은 전기작가를 원하지 않고, 제발트도 나를 원하지 않았으리라는 걸 안다. 그러나 나는 그를 향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틀렸어요. 당신은 늘 사람들이 당신 이야기를 믿길 바랐죠. 그런데 말이에요, 진실을 알면 사람들은 당신 이야기를 덜 믿는 게 아니라 더 믿을 거예요.”(13)

등장인물과 실존 인물들
-도둑질과 창작 사이에서

2014년 말, 『이민자들』의 화자가 걸어간 길을 따라 캐럴 앤지어는 영국 노리치에 위치한 ‘헨리 셀윈 박사’(단편 「헨리 셀윈 박사」의 주인공)의 저택을 찾는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박사(로 그려진 실제 모델)의 며느리 크리스틴이었다. “전부 제발트가 묘사한 그대로네요!” 저택을 둘러보며 튀어나온 감탄이 무색하게도, 대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제발트는 늘 이상하고 별난 사람에게 관심을 보였죠.” 내가 말했다. “그는 그런 사람들이 삶에 환상적인 요소를 더해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풍잣거리로 삼기에 좋은 대상이었죠.” 크리스틴이 이번에는 무척 신랄한 어조로 말했다. “아일린이 머리를 미친 사람처럼 자르고 혼자 중얼거렸다고 하면서……”(50)

크리스틴의 날선 반응은 약과였는지도 모른다. 박사의 딸인 에스더는 말한다. “그리고 제발트가 우리 아버지를 유대인으로 등장시킨 건 상관없어요. 제가 걸리는 건 그 사람이 아버지의 자살을 써먹었다는 거죠.” 외손녀 테사는 『이민자들』을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을 생생히 기억한다. 등장인물 하나하나 누구를 모델로 삼았는지 식별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작품을 위해 뜯겨나간 그들의 일부일 따름이었다. 인물들은 어느 정도 그 사람이면서, 또한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 점이 작품 밖에 자기 삶이 있는 사람들을 분노케 했다. “‘할아버지는 고약한 노인네로, 할머니는 나쁜 년으로 그려져 있었죠.’ 테사는 말했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정원은 버려진 황무지가, 그들의 저택은 착취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테사에게 할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친절하고 관대한 분이었건만, 제발트는 그런 할아버지 집에 머무는 동안 대체 무얼 한 걸까? 곳곳을 기웃대며 입도 벙긋 않고 메모나 하면서.”(57)

‘전기와 자서전이 합쳐진 종류의 소설’을 썼던 제발트는 여러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의 정체성과 성격, 특성을 부분적으로 끌어와 작품에 맞게 가공했다. 그들은 얼마간 너무도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마치 실제 세계에서 소설 속으로 걸어 들어온 사람처럼 느껴지는 한편, 때로는-특히 결정적인 순간에-우연과 환상이 만들어낸 양식화의 극치를 보여주듯 서사를 절묘하게 완성시키며 그 허구성을 의심케 했다. 너무도 진짜 같으면서도 진짜일 리 없는 사람들. 그 간극이 다수의 실존 인물을 당혹케 하고 분노케 했다. 그들에게 삶 자체인 ‘이야기’를 품은, 그러나 결코 그들은 아닌 소설 속 인물들. ‘빼앗긴’ 사람들에게 그들은 ‘도둑질’의 결과일 따름이었다.

「막스 페르버」의 독일어 원제는 「막스 아우라흐Max Aurach」다. 제목이 암시하는바, 『이민자들』을 마무리하는 이 소설은 실존 인물인 예술가 프랑크 아우어바흐의 삶을 참조했다. 작품이 발표되었을 당시 아우어바흐는 제발트에게 참조된 여느 실존 인물과 달리 여전히 생존해 있었다. 작가는 이에 아랑곳없이 작품 곳곳에 아우어바흐라는 실존 인물을 가리키는 단서를 심어놓았다-아우라흐라는 이름을 썼음은 물론 실제 아우어바흐의 그림까지 실어두는 식으로. 그것이 화근이었다. “『이민자들』은 1992년 독일에서 출간되었다. 독일과 접점이 없었던 아우어바흐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러다 4년 뒤 영역본이 이미 인쇄에 넘어간 후, 영국 출판사 하빌에서 아우어바흐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의 그림 「캐서린 램퍼트 6세의 수장」을 본문에 수록하는 것을 허가했었는지 확인하려던 목적이었는데, 황당하게도 그런 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521) 아우어바흐는 출판사에 서한을 보내는 한편 소송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책은 「막스 아우라흐」가 아닌 「막스 페르버」로 출간되었으며, 본문에서 아우어바흐의 존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은 삭제되었고, 그의 검은 눈을 찍은 사진과 함께 그림도 빠졌다.

“나르시시스트의 작업을 그럴싸하게 보이게 만들려는 생각으로 오해에 입각한 타인의 전기를 쓰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저는 제발트 씨와 사적으로 연락한 적이 한 번도 없거니와, 이 사안 전체가 따분한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합니다.”(523) 원작이 출간되고, 심지어 개정된 번역본이 전 세계에 유통되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났고 W. G. 제발트는 여전히 가장 높이 평가되는 20세기 독일 작가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세월이 지나 프랑크 아우어바흐와 주고받은 서신을 공유하며 앤지어는 이 책과 제발트의 작업을 관통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타인의 삶을, 심지어 타인의 작업을 문학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 정당하다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실제로 사용했을 때 여기에는 어떤 책임이 따르는가?”(514) 그렇게 쓰인 작품은 침해인가, 예술인가?

제발트는 몇 번의 인터뷰에서 책을 쓰기 위해 사람들과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두고 “모종의 피해를 야기하게 되지는 않을지 확신할 수 없다”라고 말했는가 하면,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편, 소설 창작을 가르치면서는 학생들에게 “작품을 위해서는 도둑질도 서슴지 말라”라는 조언을 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프라이부르크 시절 제발트와 절친한 친구였던 알브레히트 라셰는 말한다. “막스(제발트)의 작품에 대한 반응은 극단적입니다. (…) 어떤 사람들은 막스를 우리 시대의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보고,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훔치고 그들의 고통을 감상적으로 묘사하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죠. 그렇게 극단적인 반응이 나온다는 건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고,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미래는 과거에 있다”
형언할 수 없는 하나됨을 위해 쓰기

제발트의 누나 게르트루트가 말했듯, “글은 써야 할 때 쓰게 된다”. 그리고 절친 알베르트의 말대로, “막스는 써야만 했다”. 하지만 무엇을, 왜 써야만 했을까? 제발트의 창작을 통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이 질문을 경유해 답변될 수 있을지 모른다.
저명한 제발트 연구자 중 한 명인 독문학자 우베 쉬테는 “제발트를 연구한 위대한 학자 중 한 명인 우베 쉬테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애도가 그의 삶과 작품에 담긴 진짜 슬픔이었으며, 제3제국 희생자에 대한 애도는 정신적 위장이었다”(208)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에 단순히 동의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유대인인 자기 정체성의 한계를 넘어 그보다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제발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본다. “제발트의 독자들은 그의 작품이 유대인과 독일인이 경험한 홀로코스트의 비극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보는 관점이 타당하지 않다는 쪽으로 차츰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어둠을 바라보는 제발트의 비전은 그것보다 훨씬 더 아득한 곳을 향해, 인간사 전체와 자연 그 자체를 향해 뻗어 있다고 말이다.”(9)

제발트는 쓸 수 없는 것을 써야만 했다. 그의 공감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대상인 인간을 포함한 다른 생명과 자연, 그것의 과거와 미래를 향한 비전은 우리의 경험과 지성만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도, 접속될 수도 없는 무한한 시간 안에,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위대한 사랑 안에 있다. 그 실제를 아득히 체감할 때의 전율, 그것은 말로서 형언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다만 작품에 내재된 독특한 형식을 통해 대상에게 전해졌다. 하여 제발트는 작품 안에 여러 우연을, 연결 고리를, 셀 수 없는 참고자료를, 타인의 삶을, 기록과 기억을, 역사적 사건과 환상을, 기억과 망각을 뒤섞은 독창적인 형식을 탄생시켰고, 그 형식으로 하나됨이라는 근원적이고 심오한 주제에 다가가고자 했다. 『말하라, 침묵이여』라는 이 책의 제목은 그런 면에서 제발트의 전달 방식을 탁월하게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에 있는 동안 서로 다른 자아와 장소와 시간, 남자와 여자, 가해자와 피해자로 분리되어 있으며, 서로의 존재를 파악하고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진 일을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제발트의 궁극적인 원칙은 우리가 일인칭 경험을 통해 진실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늘 셀윈 박사와 페르버와 아우스터리츠, 노사크와 클루게 등 어떤 경험에서 생존한 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 한다. 혹은 이것이 더는 가능하지 않다면 루시 란다우, 피니 이모, 베라처럼 그들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 한다. 막스에게 이는 신조이자, 존중의 표식이었다.(781-782)

앤지어는 “모든 것이 하나되는 일이 제발트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소설가가 될 수 없었다. 이것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 W. G. 제발트는 스스로 늘 자기는 소설가가 아니라고 했을 만큼 수많은 삶을, 문헌을, 현상을 참조해 글을 썼다. 저자는 이런 면에서 그를 역사가, 전기작가, 자서전 작가라고 말한다. 한편 좀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제발트는 “뼛속까지 공상가이고 신비주의자”였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목표는 시간, 장소, 자아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비주의자와 성인이 보는 시야에서처럼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제발트의 작품에 존재하는 모든 신호가 가리키는 그러한 또 다른 근원적 현실의 본질을 안다(혹은 적어도 추측할 수 있다). 하나됨oneness, 그러니까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비전. (…) 그러므로 예술은 공간과 시간, 산 자와 죽은 자가 나뉘기 이전의 하나됨을 어렴풋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사본이며, 이것이야말로 W. G. 제발트가 품은 궁극의 비전이었다.(778, 796)

제발트는 모든 것을 글로 적었다. 경험한 것, 본 것, 들은 것, 읽은 것……. 그는 결국 작가였다고, 이 책에 말미에 가서 저자는 선언한다. 이 선언은 위대함과 비범함으로 포장된 서사가 아니라, 작가에게는 모욕이나 다름없는 평범과 비판을 통과해온 뒤에 적힌 것이라 더 진실되게 들린다. “가슴이 미어질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는 글”이라는 뒤늦은 애정 표현도 마찬가지다. ‘W. G. 제발트를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긴 여정의 끝에 다다른 독자는, “삶 자체가 안겨주는 일이 거의 없는 아름다움과 강렬함의 풍경”을 다시 한번 응시해볼 동기를 얻는다. 거기에는 앞서 제발트가 작품만으로 제시한 진실과는 다른 차원의 진실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작가

캐럴 앤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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