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자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의 2024년 전자책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렐루 앤드 이르망/라 윈/아테네오 그란드 스플렌디드
아름다운 서점: 공간을 감각하다 텍스트를 읽다
서점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 감각으로 탐험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문학을 우리가 ‘느끼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감각을 통하는가. 글을 읽는 눈, 글을 쓰고 책장을 넘기거나 책을 잡은 손, 대뇌의 시냅스, 서점과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 책을 살 돈, 종이와 마분지와 천, 책이 꽂힌 책장, 트럭을 몰고, 상자를 싣고, 책을 정리하고, 알고 싶어하고, 눈길을 주고 훑는 많은 손과 눈…… 스페인어로 시를 뜻하는 ‘poesia’라는 단어는 ‘만들다’라는 뜻의 어원 ‘poiein’에서 파생했으며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문학’을 의미했다.
포르투의 렐루 앤드 이르망 서점은 신고딕과 아르데코양식이 섞인 건물이다. 영화 <해리 포터>의 무대로 유명하다. 서점 한구석에는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평가한 작가 엔리케 빌라 마타스의 헌정 글이 걸려 있다. 한편, 파리의 서점 수백 곳 가운데 저자는 콩파니, 레큄 데 파주, 라 윈 세 곳을 최고의 서점으로 꼽았다. 라 윈 서점 비상구에는 바닥에 앉은 뒤라스의 모습이 그라피티로 그려져 있었고, 그림 왼쪽에는 그녀가 말한 유명한 구절이 쓰여 있었다. “한 단어를 한 구절의 아름다운 연인으로 만들라.”
아테네오 그란드 스플렌디드는 본래 1919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산타페 거리에 설립된 영화관이자 극장이었던 것을 2000년에 내부 리모델링한 서점으로, 유화가 그려진 돔 지붕, 발코니, 칸막이 관람석, 난간, 암적색 커튼이 쳐지는 무대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경이로운 조명 전구들이 빛나는 원형의 세 개 층은, 기념비적인 건물 안에서 한창 공연중인 스펙터클을 즐기는 느낌을 전달한다. 방해받지 않는 이 스펙터클에서 주역은 고객도 서적상도 아닌, 그들을 에워싼 공간 자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팔레르모 구역 끄트머리에 있는 에테르나 카덴시아도 빼놓지 말 것. 나무 바닥, 위엄 있는 테이블과 안락의자, 벽을 완벽하게 덮은 서가에 배치된 훌륭한 장서, 각종 문학 행사가 열리는 멋진 카페, 영화 속 서점으로 데려가는 램프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더 북웜/콜론 서점
불편한 서점: 혁명, 사랑, 예술, 자유! 서가를 잇는 무한한 연결과 환대
독재 정권은 책을 불태우고 권력은 말하는 입에 재갈을 물렸지만 생각은 어떤 사슬로도 가둘 수 없어 책갈피를 유유히 넘나들었다. 그들에게 서점은 확실히 불편하고 불온한 전위적인 장소였다.
“작가는 자신이 쓴 것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민주사회에서 검열은 적법한가? 책과 발행인, 책과 인쇄업자, 유통업자, 서적상의 법적 관계는?” 주목할 만한 선례가 있다. 1747년에 디드로는 『맹인에 관한 서한』을 못마땅하게 여긴 교구 목사의 고발로 뱅센 감옥에 갇혔다가, 백과사전 프로젝트가 중단되면 주요 피해자가 국가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서점협회’(!)의 항의로 풀려났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조이스 등 세계의 문인이 찾은 살롱으로, 파리를 찾는 이라면 누구나 꼭 방문해보고 싶어하는 가장 유명한 독립서점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조지 휘트먼은 미국의 기준으로 볼 때 항상 불편한 인물이었다. 그는 파리에서 미군을 상대로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같은 금서를 팔았다. 영업 첫날부터 서점에 침대, 음식을 데울 휴대용 스토브, 책을 사지 못하는 이들이 빌려서 볼 수 있는 도서관을 마련했다. 서점과 숙소의 결합은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그 때문에 휘트먼은 모르는 사람들과 내내 함께 살면서 사생활을 희생했다. 지난 60년 동안 그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약 10만 명에 달한다. 문턱 중 하나에 이곳을 지배하는 모토가 적혀 있다. ‘모르는 이들에게 친절하라. 변장한 천사들일지도 모르니.’
중국조차 예외가 아니다. 청록색 화려한 외관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가게 목록에 속하는 명성을 지닌 베이징의 서점 더 북웜은 설치미술가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을 비롯해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반체제 도서나 금서로 분류되던 책을 고객 앞에 선보이고 있다.
고어 비달 같은 북아메리카의 작가들이나 폴 모랑 같은 유럽 지식인들, 아민 말루프 같은 아랍의 지식인들이 탕헤르를 방문할 때마다 어김없이 여행의 종착지로 삼는 콜론 서점도 있다. 콜론 서점은 반프랑코주의 저항의 참호가 되어 출판을 고취하고 망명자들을 불러모았다.
도그 이어드 북스/고담 북마트/시티 라이츠/더 팩토리
예술적인 서점: 창작의 산실이 된 서점, 흥미로운 서점
서점은 예술가를 끌어모으고 이들은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거대한 흐름과 새로운 창작을 수없이 탄생시킨다.
샌프란시스코의 도그 이어드 북스는 예술과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단연 흥미로운 서점이다. ‘도그 이어(Dog Ear)’란 접은 책 모퉁이를 가리키는 말인데, 모양이 마치 개의 접힌 귀 같아서 그렇게 부른다. 이 서점에 진열된 책에는 책마다 손글씨로 쓴 코멘트가 달려 있다. 도그 이어드 북스는 1992년부터 미션 디스트릭트 주민들과 진정한 공감의 기류를 형성해왔다. 잡지와 책, 음반, 그래픽 작품 외에도 서점이 독자 고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애정과 존중의 유대를 잘 보여주는 것을 구석의 진열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30년대 뉴욕에서는 고담 북마트가 공고히 자리잡아, 실험적인 작가들의 작품 소개를 전문화하고 각종 문학 강연과 축제를 조직해, 유럽에서 망명한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1950년대에 샌프란시스코의 시티 라이츠 서점은 당대를 가장 잘 드러낸 일련의 책들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도서를 소개하고 낭송회를 열었다. 시티 라이츠 서점 벽면에는 벽면에는 이 서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문학적 만남의 공간’ ‘환영합니다. 자리에 앉아 읽으세요’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1960년대 맨해튼의 더 팩토리는 앤디 워홀이 이끄는 영화 스튜디오, 미술 작업실, 마약 축제의 본거지로 유명했으며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는 나이트클럽 스튜디오가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서점의 미래
서점은 마트와 도서관 사이, 그 어딘가에 있기에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우아하고 유연하게 늘 책을 살아 있는 형태로 세상에 유통시킨다. 저자는 서점을 편애한다. 과장을 조금 보태 말하면 그에게 도서관은 책의 무덤이다. 지나치게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기에 도서관에 꽂힌 책들은 독자의 시선과 당대의 첨예한 화두에 참여할 동력을 잃는다. 그러나 서점은 다르다.
서점에서 책은 선택받아야 하고 바로 독자들 앞에 놓여 있으며 무엇보다 서점은 도시 한가운데에, 사람들이 오가는 바로 그 공간 속에 살아 숨쉼으로써 예술가와 독자를 모은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문화를 만들어내고 그 문화를 자양분 삼아 또다시 새로운 예술가가 탄생한다. 시대에 발맞추어 적응하고 심지어 시대를 이끄는 서점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의 유명 서점 보더스는 문을 닫았지만 카리온에 따르면 “보더스는 다른 서점 체인들에 침범당한 게 아니라, 지적 야망을 지닌 새 서점들에 의해 지역적으로 점령되었다”.
세계의 서점은 지금도 각자의 방식으로 진화를 거듭해가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서점도 있고, 양질의 웹페이지를 운영하는 서점, 주문형 인쇄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인쇄 센터 근처에 자리한 서점들도 있다. 커피와 직접 만든 케이크를 내놓거나, 시음 강좌를 여는 훌륭한 와인 가게처럼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는 작은 서점들도 있다. 청소업체에 맡기지 않고 서점 운영자가 직접 일일이 책의 먼지를 터는 서점들도 있는데 이는 희귀본, 소수 판본, 수공예본, 유행이 지난 서적 한 권 한 권의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대형 서점 체인에서는 자리를 갖지 못하는 책들을, 독립 서점의 주인들은 신간 매대나 진열대에 제대로 배치해, 눈에 띄도록 만들 줄 안다. 다음엔 어느 서점으로 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