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울고, 한바탕 웃었다.
돌아보니, 그 모든 날이 순풍이었다.”
40만 유튜브 〈순풍 선우용여〉, 유쾌함이라는 품위로
삶을 건너온 선우용여의 자기돌봄 에세이!
◎ 도서 소개
“너 오늘도 참 예쁘다.”
‘이겨내기’보다 ‘돌보기’로 하루를 열다!
연기 60년, 인생 80년
배우 선우용여가 전하는 다정한 회복의 기술
연기 60년의 배우, 여든의 생활인 선우용여가 첫 에세이 《몰라 몰라, 그냥 살아》를 통해 삶을 새로 배우는 과정을 단정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뇌경색을 겪은 뒤 그녀가 선택한 것은 ‘이겨내기’의 서사가 아니라 ‘돌보기’의 기술이었다.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용여야, 너 오늘도 예쁘다”라고 속삭이며 하루를 여는 작은 의식, 기분이 흐리면 조용히 산사를 찾거나 호텔의 조식으로 리듬을 되돌리는 생활의 설계, 마음이 따라오지 않을 때는 억지로 밀어붙이기보다 잠시 속도를 늦추는 유연함까지, 그 일상의 미세한 선택들이 합쳐져 하나의 철학이 된다. 노년을 마감선이 아니라 재조율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이 이 책이 제안하는 ‘나를 돌보는 법’이다.
에세이 시장에서 이 책의 강점은 두 가지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하나는 ‘경험의 신뢰도’다. 대중이 기억하는 ‘순풍의 용여 선생님’이자 지금도 스스로의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현역의 시간, 바로 그 축적이 문장을 떠받친다. 다른 하나는 ‘실천 가능성’이다. 이 책은 조언을 늘어놓기보다 하루의 루틴과 손에 잡히는 장면들로 독자를 설득한다. 백담사를 향한 갑작스러운 나들이, 우동 한 그릇을 위해 비행기를 타는 소소한 여행, 몸이 굳어갈수록 더 자주 몸을 일으켜 움직이려는 결심 같은 것들. 그 결과 독자들에겐 ‘잘 살아야 한다’는 막연한 압박 대신 ‘오늘 하루를 잘 돌보는 구체적 방법’을 자연스럽게 안내한다.
“몸은 늙어도, 마음의 근육은 자라더라.”
조급함 대신 온기로 삶을 채워가는 선우용여의 인생 감각
그녀는 무대를 떠난 뒤에야 비로소 인생의 2막을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 무대를 삶으로 확장해온 사람이다. 연기는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믿음으로, 이민 시절 식당에서 관찰한 얼굴들, 세대를 건너 만난 관객과 구독자들, 병실과 촬영장 사이에서 배운 속도의 감각을 책 속에 담담히 담아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유명한 배우의 회고’가 아니라, 연기 밖에서 완성된 생활 감성이다. 말투는 호기롭지 않고, 문장은 과장되지 않으며, 대신 다정하고 현실적이다. “조금 느려져도 괜찮아요. 그게 내 나이의 속도예요.” 이 한 문장이 책의 정조를 대변한다.
이 책이 전하는 위로와 통찰은 명확하다. 첫째, 자기돌봄의 언어를 갖게 된다. ‘예쁘다’는 말이 미용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라는 사실, 스스로에게 건네는 한마디가 하루의 기세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둘째, 일상의 설계법을 익힌다. 아침 조식으로 리듬을 맞추고, 작은 이동과 산책으로 몸을 깨우고, 마음이 흐릴 때는 장소를 바꿔 공기를 환기하는 식의 루틴들이 삶의 재활이자 에너지원이 된다. 셋째, 속도의 교정을 시도하게 된다. 이 책은 ‘버티기’의 미덕 대신 ‘흘려보내기’의 기술을 가르치며, 나이에 맞는 속도를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장기적인 회복의 조건임을 보여준다.
“늙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중이에요.”
감사와 여유로 삶을 다시 익히는 마음의 철학!
선우용여의 글은 마치 오래 쓴 연습장의 마지막 페이지 같다. 지나치게 단단하지도, 그렇다고 느슨하지도 않은 균형 속에서, 오래된 단어들이 새 힘을 얻는다. ‘감사’, ‘여유’, ‘예쁨’ 같은 단어들이 예스러움을 벗고 생활 기술로 다시 태어난다. 나를 돌보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이라는 사실, 이 책의 메시지는 결국 한 문장으로 응축된다.
이 책은 노년 독자에게는 자존의 온도를, 중년 독자에게는 속도의 조절법을, 젊은 독자에게는 살아 있음의 감각을 선물한다. 에세이가 감성의 과잉이나 조언의 빈곤으로 미끄러질 때가 많은 이 장르에서, 이 책은 신뢰 가능한 경험·실천 가능한 방법·유연한 문장의 삼박자로 제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오늘의 우리에게 되묻는다. 정말 ‘잘 살아야지’만으로 충분한가? 이제는 ‘잘 돌봐야지’라고, 스스로에게 다정히 답하게 한다. 삶의 기준을 바꾸는 그 다정한 전환 속에서 독자들은 진짜 성숙의 의미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 책 속으로
그러고 딱 1년 만에 뇌경색이 온 것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내 나이를 알았다. 당시 나이가 69세, 내 몸뚱아리도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 요즘에는 하루를 마무리할 때마다 빼먹지 않고 내 몸을 쓰다듬고 만져본다. “용여야, 오늘도 고생했다~ 수고했다~” 말해주며 토닥인다. 오늘도 건강하게 무사히 보내준 내 몸에 고마워하며 하루를 차분하게 마무리하는 나만의 의식인 셈이다. 남들과는 백날을 수도 없이 대화하면서, 내 몸에 귀를 기울이고 말을 걸어주는 것에는 여태껏 왜 이렇게 소홀했던지 모르겠다.
_〈뇌경색 정신이 번쩍들었다〉
조식 뷔페가 5, 6만 원씩 하니 절대 적은 돈은 아니었다. 너무 과하다, 사치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혼자 살면서 마트에서 많은 식재료를 사고 버리는 것도 적잖이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냉장고에는 남은 식재료가 하릴없이 쌓이고, 영양을 골고루 챙기기도 어려웠다. 지금까지 나도 여느 엄마들처럼 자식과 남편을 위해 쓰는 돈은 아끼지 않았지만 나를 위해 비싼 명품을 사거나 고급 레스토랑에 가진 못했다. 이제 아이들도 다 키워 독립시켰으니, 먹는 것만큼은 나를 위해 아까워하지 않고 쓰기로 했다. 내가 아프면 자식들도 고생이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_〈아침으로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간다〉에서
사람들이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80세가 간직하고 있는 80세만의 예쁨도 있다. 눈가의 주름은 젊은 날부터 차곡차곡 적립해온 웃음의 기록, 입가의 주름은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치열하게 일해온 부지런의 증거이니 미울 이유가 없다. 그저 아름답고 온전하게만 살아온 삶이라면 그 결과로 도달한 늙음이 원망스럽고 부질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젊은 날은 모두가 서툴렀고, 숨가쁜 쉼표의 연속이었다. 그 맹렬한 삶의 흔적이 얼굴에 고스란히 남았다.
_〈나에게 에쁜 말을 해줘야 꽃이 피어난다〉에서
젊을 때 돈을 많이 벌어놓고 빠르게 은퇴하여 노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이 행복한 노후일까? 나는 오히려 그게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일이 없었으면, 최소한 좋아하는 취미라도 없었으면 무척 우울했을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 나는 또렷하게 살아 있고, 삶에는 생동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년 퇴직하고 여행을 가는 것도 좋지만, 그 시간을 즐기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때 뭘 해야 할까?
_〈마지막까지 삶에는 생동이 있어야 해〉에서
“엄마, 옆집 아줌마는 왜 집에 있어?” 항상 집에 없는 엄마만 보고 살았으니 원래 엄마란 그런 줄 알았던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들은 학교에서 엄마가 왜 안 오시는지 물으면 “뚱보라서 안 옵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더라. 아, 내가 너무 돈과 일만 좇고 살았구나. 조급하게 돈을 번다고 해서 충분한 게 아니었다. 무엇에 연연하는 게 아니라 어떤 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소중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것이구나. 그 길로 배우 활동을 접고 가정을 위해 살기로 결정했다.
_〈가장 힘들 때, 나는 가장 부자였다〉에서
나이가 들수록 알아야 하는 건 ‘내가 다 맞는 건 아니다’는 점이다. 시어머니 말이라고 다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른이라고 해서 다 옳은 것도 아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어떤 건 어린 사람이 더 많이 알 수도 있고, 더 현명할 수도 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대우받으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하는 목소리를 더 많이 내야 한다고 본다.
_〈늙었다고 다 아는 건 아니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