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카슨이라는 장르의 시작,
에로스 그 달콤씁쓸함에 대하여
그리스 고전문학 연구자였던 앤 카슨은 1986년 첫 작품 『에로스, 달콤씁쓸한』을 출간하며 작가로서 여정을 시작한다. 이 산문은 그의 학위 논문을 개작한 것으로 여기서 그는 학문적 작업과 창작 행위를 뒤섞으며 여러 장르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을 두지 않는 자신의 문학 세계를 예고한다. 그의 에로스에 대한 탐구는 맞붙은 서른다섯 개의 장으로 엇갈리듯 이어지고, 그리스 로마의 서정시와 로맨스에서부터 현대 작가들의 시와 소설, 플라톤의 대화편까지 다양한 문학 작품과 역사적 사료, 문헌을 통해 에로스의 윤곽이 그려진다. 『에로스, 달콤씁쓸한』은 에로스라는 달콤씁쓸한 침입자를 두려워하지 않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진짜 삶’을 향해 날개를 펼친 수많은 연인들과 시인들, 그리고 지혜를 사랑한 철학자들의 모습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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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부분은 결정적이다. (…) 우리의 이야기는 에로스가 우리에게 들어오는 순간 시작된다.
_254~255쪽
시작 부분은 에로스적 맥락에서 결정적이다. 날개를 단 에로스는 난데없이 나타나 우리를 사랑에 빠트리고 우리가 지금껏 살아온 적 없던 삶으로 우리를 데려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로스는 언제 시작되는가? 앤 카슨은 그 시작 부분이 우리 통제를 벗어난다고 말한다. “그 순간은 아주 찾기 어려워서, 늘 너무 늦고 만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는 언제나 이미 너무 늦은 순간이다”(249).
통제력을 벗어나는 이 시작 부분은 살아 있는 무언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언가가 터져나오는 지점이라는 점에서 또한 결정적이다. (앤 카슨에 따르면) 에로스에 사로잡힌 연인은 왠지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다’고 느낀다. 연인은 시간 속에서 유기체로서 살아 있는, 고유한 자신을 자각한다.
1986년 출간된 작가 앤 카슨의 첫 작품 『에로스, 달콤씁쓸한』이 에로스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것을 함축한다. 고대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막 받고 작가로서의 시작 부분에 선 앤 카슨은 다른 무엇이 아닌 에로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난데없이 우리를 사로잡는 에로스를 가까스로 붙잡아 자신의 이야기 시작 부분에 놓는다. 그 결과 에로스를 통해 작가 앤 카슨의 결정적인 시작 부분이 드러난다. 거침없이 우리 삶에 찾아와 우리를 변화시키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에로스를 통해. ‘앤 카슨의 이야기는 에로스가 들어오는 순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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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카슨의 에로스에 대한 탐구는 맞붙은 서른다섯 개의 장으로 엇갈리듯 이어진다. 그는 그리스 로마의 서정시와 로맨스에서부터 현대 작가들의 시와 소설, 플라톤의 대화편을 탐닉하다가 이내 문자 사용과 에로스 탐닉과의 관계를 파헤친다. 수많은 이름과 시대, 장르를 경유하는 움직임은 현기증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가령 “필기체와 활자체 사이의 차이, 진짜 브론스키와 상상 속 브론스키 사이의 차이, 사포와 ‘가만히 귀기울이는 남자’ 사이의 차이, (…) 바로 그 지점에서 욕망은 느껴진다. 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에로스의 스파크는 연인의 마음속에서 기쁨을 작동시킨다”(118~119)와 같은 문장에서, 우리는 다양한 문학 작품, 문자학 및 정신사의 맥락을 에로스라는 하나의 지점으로 묶는 그의 기민한 움직임을 마주한다.
그런데 독자가 이 움직임에 감탄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그가 보여주는 박학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감탄은 그가 언급하고 분석하는 개개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들에 손을 뻗어 한데 겹쳐놓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에로스적 욕망이 손을 뻗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고 말한다.
에로스는 경계의 문제다. 그가 존재하는 것은 어떤 경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손을 뻗음과 붙잡음 사이, 시선과 응답하는 시선 사이, ‘나는 널 사랑해’와 ‘나도 널 사랑해’ 사이의 간격 속에서 욕망의 부재하는 현존이 활기를 띤다.
_59쪽
앤 카슨은 에로스를 그 그리스적 어원에 따라 ‘없어진 것에 대한 욕망’으로 정의한다. 연인이 원하는 상대방은 현재 자신 곁에 있지 않은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에로스적 욕망은 언제나 여기 없는 그것을 향해 손을 뻗는 행위를 수반한다. 앤 카슨은 묻는다. “연인은 사랑에서 무엇을 원하나?” 표면적으로 연인은 상대 연인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이내 연인의 기쁨이 상대 연인이 아니라 상대 연인을 향해 손을 뻗는 행위 자체에 있다고 말한다. 즉, 연인은 언제나처럼 계속해서 상대 연인을 향해 손을 뻗는 행위를 계속할 수 있기를 욕망한다.
『에로스, 달콤씁쓸한』에서 앤 카슨은 에로스를 이야기하기 위해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그런데 멀리 떨어져 있던 것들에 손을 뻗어 하나의 단일한 주장이 가시화되려는 순간 그는 돌연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 돌려 에로스의 또다른 면을 제시한다. 저자 스스로가 에로스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기를 의도적으로 지연하는 듯하다. 즉, 그는 마치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에로스의 여러 면을 향해 손을 뻗는 그 행위 자체에 탐닉한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와 혹은 무엇과 사랑에 빠져 있는가? 에로스 그 자체와. 그는 글쓰기를 통해 에로스에 대한 에로스를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글의 말미, 소크라테스에 대한 아래 문장은 이 책에 드러난 저자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아주 분명히 보았듯이,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차이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은 큰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다. 그는 그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겼는데, 그 자신이 구애 자체와 사랑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_287~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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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힐 듯 잡히지 않는 ‘달콤씁쓸한’ 에로스를 뒤쫓는 앤 카슨의 글쓰기를 하나의 주장으로 요약하기란 불가능하다. 그가 펼치는 에로스의 면면들은 그가 참조하는 작가와 사상가, 예술가만큼이나 개성적인 동시에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문자 중독자, 문예인 입장에서 가장 흥미로울 지점은 그가 에로스와 문자, 에로스와 읽기/쓰기, 나아가 에로스와 앎을 겹쳐놓는 순간일 것이다. 그는 에로스라는 개념이 구술 사회에서 문자 사회로 넘어가면서 사람들에게 더 예민하게 인식되었고 첨예하게 다뤄졌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에로스 탐닉과 문자 사용은 서로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후자가 전자를 증폭시켰다는 주장이다. 처음엔 과도한 것으로 들리던 이 주장은 그러나 문자사적인 근거와 다양한 문학 작품 분석이 쌓이며 설득력을 얻는다.
“알파벳 표기의 어떤 부분이 에로스적인가?”(79) 책의 초반에 제기되었던 이 문장은 후반부에 이르러 “읽기와 쓰기의 어떤 점이 에로스적인가?”(184)와 같은 문장으로 변형되더니 서서히 앎 그 자체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에로스가 연인의 마음속에서 작용하는 방식과 사상가의 마음속에서 앎이 작용하는 방식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소크라테스 시대부터 철학은 그 유사성의 본성과 쓰임새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철학자들만 그런 노력에 호기심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두 행위, 즉 사랑에 빠지는 것과 앎에 이르는 것이 왜 나를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싶다. 그것들에는 전기가 통하는 것과도 같은 무언가가 있다. 그것들은 다른 어떤 것 같지 않은 대신 서로 비슷하다.
_125쪽
이 탐구는 책의 후반부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대한 독창적인 독해를 통해 절정에 이룬다. 『파이드로스』가 무엇에 관한 대화편인지는 오랜 논쟁의 대상이었다.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의 사랑에 관한 대화는 어느 순간 글쓰기에 관한 대화로 변하고, 그 이후 에로스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파이드로스』는 한쪽으로는 에로스로, 다른 쪽으로는 로고스(‘이야기’ ‘연설’ ‘이성’ ‘논리’ ‘담론’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양분되어 있다.
그러나 앤 카슨이 보기에 이것은 표면적인 모호함이다. 그는 『파이드로스』를 읽어내려가며 참된 로고스와 진정한 에로스가 유사하다는 것을, 나아가 모든 로고스가 그 안에 에로스적 욕망을 내포하고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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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제시한 바와 같이 “우리의 이야기는 에로스가 우리에게 들어오는 순간 시작된다”. 에로스는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우리 삶을 습격하는 침입이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갑자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같은 기분에 빠진다. 동시에 그것은 정상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 따르면 에로스는 일종의 광기mania이다. 이 갑작스러운 습격, 거대한 변화는 그 자체로 통제 불가능한 것이어서 그 시작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에로스와의 조우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라고 앤 카슨은 역설한다. 에로스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한다. “앎에 대한 욕망이 위험에 대한 염려를 넘어선다.”
『에로스, 달콤씁쓸한』은 우리에게 단지 에로스에 대한 지식만을 전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욕망의 침입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자아가 파괴되는 게 두려워 몸을 움츠리기만 해서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영영 알 수 없게 될 거라는 경고 섞인 가르침까지도 전해주는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를 살고 싶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에게 날개를 돋게 하고, 육신과 정신이 훼손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날개를 펼쳐 반드시 참여해야만 하는 진짜 ‘삶’ 속으로 날아가게 만든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