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문단의 독특하고 감각적인 작가 파올로 조르다노
뉴욕 타임스 · 월스트리트 저널 등 전 세계 15개 언론 추천작
물리학과 일상을 연결하는 독특하고 감각적인 작가
파올로 조르다노가 핍진하게 그려낸 현대인의 사랑
이탈리아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파올로 조르다노의 『증명하는 사랑』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증명하는 사랑』은 국내에 소개되는 조르다노의 두번째 장편소설로, 규정할 수 없는 미묘한 관계를 우아하고 섬세하게 다루어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등 전 세계 15개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두 남녀의 사랑과 성장을 그린 『소수의 고독』에 이어, 조르다노는 다시 한번 사랑의 의미에 천착하며 완전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우리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 노라의 활기와 나의 우울, A 부인의 점성적 안정감과 내 아내의 별난 어수선함, 내가 여러 해 동안 전념해온 명쾌한 수학적 논리와 바베트의 투박하면서도 직관적인 사고방식, 그 모든 요소는 우리의 부지런한 노력과 애정에도 불구하고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눈에 모든 것이 확연히 보일 때까지 끊임없이 증식했던 A 부인의 암은 다루기 어려운 미세한 세포 덩어리에 불과했지만, 우리가 서로 분리된 개별적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우리는 우리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녹아들 수 없었다. (본문 183p)
『증명하는 사랑』에서 조르다노는 특히 현대인의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해 공감을 더한다. 맞벌이 부부가 임신, 육아, 커리어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가족 공동체를 꾸려가는 젊은 부부가 겪는 균열과 갈등,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우리의 일상을 핍진하게 그리면서도 공존의 가능성을 제안하며 우리에게 구체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만으로
서로에게 녹아들어 완전한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증명하는 사랑』은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인 ‘나’와 노라의 사랑의 역사를 그린다. 대학 시절,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은 연극 동아리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 부부가 된다. 그러나 어린 아들 에마누엘레가 생기며 세 가족이 되자 부부는 위기를 겪는다. 지도교수에게 착취당하며 불면증에 시달리는 ‘나’는 좀처럼 임용 기회가 찾아오지 않자, 해외에서 연구를 이어나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아내 ‘노라’는 이민에 부정적이다. 게다가 어린 아들 에마누엘레를 키우는 것도 버거워 일과 가정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에마누엘레는 또래보다 발달이 늦어 유치원에서 늘 주눅들어 있고, ‘나’는 인내심 있게 아들을 가르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엉망인 것만 같은 이 가족에게 이웃 A 아주머니가 구원처럼 나타난다. A 아주머니가 가사도우미이자 보모 역할을 맡아주자 세 사람에게 안정이 찾아오고 이내 삶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머니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으며 세 사람 사이에는 다시 균열이 생겨난다.
A 부인은 우리가 하루하루 완성해나간 일의 진정한 증인이었고, 우리를 하나로 잇는 유대감의 유일한 증인이었다. 레나토 이야기를 할 때면 우리에게 뭔가를 조언해주려는 것 같았다. 비록 불행한 결말로 짧게 끝났지만 완벽하고 순수했던 관계에 대해 전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랑은 결국 그 사랑을 발견하고 가치를 인정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오해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그녀의 시선 없이는, 우리는 위험에 빠진 기분이었다 (본문 36p)
세 사람 사이의 중심축이었던 아주머니가 사라지자 삐걱대는 톱니바퀴 같은 생활이 시작된다. ‘나’와 노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외면한 채 관계가 거의 단절되기에 이르고, 아주머니를 대체할 사람을 찾지 못한다. 가족을 이루기 전에는 매력으로만 보였던 두 사람의 기질적 차이가 결혼 후에는 너무도 큰 장벽으로 느껴지며 ‘나’의 가족은 위기를 맞는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은 과연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누군가를 발견하고, 그 존재로서 인정하는 사랑 위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해질 수 있다
『증명하는 사랑』의 ‘나’와 노라는 서로의 다른 기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몸도 마음도 멀어진다. 두 사람은 깨어진 관계를 봉합해줄 사람을 찾아 의지하고 싶어하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않다. A 아주머니의 병상을 마지막으로 찾은 날, 노라를 잘 돌봐주라는 아주머니의 유언을 듣고서야 ‘나’는 스스로에게만 매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직업적 기반이 이탈리아에 있던 노라는 외국으로 떠나 연구를 이어가고 싶은 ‘나’의 바람을 외면해왔고, ‘나’는 이탈리아에 남고 싶어하는 노라를 배려한다는 작은 영웅심리에 도취되어 지내왔다. 그러나 A 아주머니의 죽음은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계기가 된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며, ‘나’를 우선시하던 관계에서 타인을 바라보는 사랑의 단계로 나아간다.
“그리고 또 생각해봤어. 만약 당신이 학교에서 재계약되지 않아도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어.”
“나는 그럴까봐 겁나는데.”
“우리가 다른 곳으로 떠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한번 시도해보자. 당신이 여기서 잘 지내지 못하고, 또 더 좋은 기회들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렇게 해보면 돼. 나는 외부에서도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을 거야. 만약 잘 안 돼도 하는 수 없고. 군밤 전문가가 되지 뭐.” (본문 193p)
‘나’와 노라는 기나긴 방황 끝에 마침내 자신들의 사랑을 발견해줄 사람도, 증명해줄 사람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단 해보자고,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라며 웃어 보이는 노라의 모습에서 작가는 두 사람의 앞길에 희망을 비춘다. 『증명하는 사랑』은 이성적 끌림에 외면해왔던 타인의 모습들을 직시하고 나와 다른 상대방을 수용하는 온전한 사랑을, 그렇게 새로운 내일을 맞이하는 희망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