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욘 포세
'바임' 3부작의 아름다운 서막
몰입감 넘치고, 심지어 트랜스 상태에 빠진 듯하다. 『바임』은 예상된 경로를 벗어나 표류하는 삶 그 자체만큼이나 오묘하고 놀랍다. _ 파이낸셜 타임스
“욘 포세다움 그 자체이면서 어딘가 새로워진 모습. 노벨상 수상자 욘 포세가 또 한번 해냈다. 이번에는 반전이 있는 유쾌한 작품이다.” _NRK(노르웨이방송)
욘 포세 작품 중 가장 장난기 넘치는 작품. 로맨스, 유령 이야기, 누아르가 뒤섞여 있다. _ 다겐스 네링슬리브(노르웨이 신문)
‘침묵과 리듬의 글쓰기’로 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현대사회의 공허한 정신에 문학의 신성한 빛을 던지며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자국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번역상을 제정해 올해 첫 수상자를 선정했고, “셰익스피어 이후 최다 공연 기록”을 세울 만큼 압도적인 사랑을 받는 극작가로서 작년에 “예술은 평화”라는 국제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세계연극의 날 기념 연설을 한 데 이어, 한국에서는 올해 4월 그의 희곡이 처음으로 연극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그가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년간 매년 한 권씩 일명 ‘바임 3부작’(『바임』 『바임 호텔』 『바임 위클리』)을 선보이기로 하고 그 서막을 알리는 첫 권 『바임』을 펴냈다. “중독성 있는 신비주의자, 현존하는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는 그의 신작에 세계 유수 언론이 주목했고,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3부작이라기보다는 “같은 상상의 장소를 공유하고 있는 각각의 독립된 세 편의 소설”이라고 말하며 앞으로 나올 이 소설들에 운을 뗐다. 노르웨이에서 올해 9월 말에 나온 책은 발빠르게 현재까지 18개국에 계약되며 큰 기대를 모았고, 영미, 에스파냐,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에서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바임’은 가상의 외딴 바닷가 마을 이름으로, 한 언론사 리뷰대로 익숙한 도플갱어 모티프로 격조 높은 “욘 포세식 하드코어”의 진수를 보여주는 로맨스 소설이다. 바임에 홀로 사는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인 표류자 같은 두 어부가 결단력과 단호함을 갖춘 한 여자와 만나 운명의 종착지로 삶의 배를 몰아가는 얘기다. 노르웨이 현지에서 활동하며 전작을 번역하기도 한 손화수 번역가는 욘 포세만의 문체와 호흡을 옮겨내고자 원고를 다듬고 또 다듬었고, 현지 에이전트를 통해 욘 포세에게 직접 「옮긴이의 말」 원고를 먼저 전달해 작가로부터 신뢰와 찬사를 얻어냄으로써 다른 해외판과 달리 욘 포세에게서 작가의 말을 이끌어냈다. (※ 한국어판 특이사항: 작가의 말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특별수록)
바늘과 실, 여자와 남자, 운명과 우연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한 고독, 사랑, 운명의 삼중주
이 소설은 총 3장으로 구성되며, 주요 등장인물은 네 명이다. 바임에 혼자 사는 어부 야트게이르, 그의 유일한 친구 엘리아스, 야트게이르가 십대 때부터 사랑해서 자기 배 이름으로 삼은 연인 엘리네, 그리고 엘리네가 고향을 떠나 결혼한 어부 프랑크다. 1장은 어부 야트게이르와 엘리네의 재회, 2장은 엘리아스 집을 방문한 야트게이르 이야기, 3장은 프랑크와 엘리네의 만남과 헤어짐이 중심 서사다.
1장은 야트게이르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어느 여름날, 그는 ‘엘리네’라는 비밀스러운 이름을 지어준 자기 배를 타고 바임에서 대도시 비에르그빈에 간다. 뜯어진 단추를 꿰매기 위해 바늘과 실을 사겠다는 구실로 그곳에 갔으나, 뜻하지 않게 두 번이나 사기를 당해 가진 돈을 잃는다. 그러다 거기 대도시에서 우연찮게도 십대 때 사랑한 엘리네와 재회하고, 그녀는 남편 프랑크한테서 도망쳐 다시 고향 바임으로 돌아가자며 야트게이르를 재촉한다. 두 사람은 함께 바임에서 살게 된다. 2장은 대부분 엘리아스의 독백으로 채워져 있다. 크리스마스 직전의 이른 저녁 누군가 문을 계속해서 두드리고, 겁에 질려 있던 그에게 오랜만에 유일한 동네 친구 야트게이르가 짧게 방문한 후 돌아간다. 잠시 후 바임 상점 근처 사람들한테서 그가 익사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3장은 프랑크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만선으로 벌이가 좋은 어느 날 일행과 술을 마시다 엘리네가 자신을 ‘프랑크’라고 부르며 다가와서는 결국 그날로 두 사람은 살림을 차린다. 갑자기 삶에 찾아온 그녀는 또다시 불현듯 프랑크 곁을 떠났고, 그러다 야트게이르라는 어부와 살다 그가 죽자 다시 그를 찾아와 짐을 싸서 바임으로 가자고 재촉한다. 프랑크는 부모한테 물려받은 고향집을 나와 그녀가 시키는 대로 운명처럼 이끌려 살다 그녀가 죽자 모든 걸 정리하고 다시 자기가 살던 집으로 돌아와 일흔다섯이 되도록 자신에게 일어난 수수께끼 같은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뭔가 미궁 같은 삼각관계를 다룬 이 우화는 작은 배와 큰 배, 사랑과 죽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남자와 단호하고 결단력 있는 여자의 만남에 관한 책이다. 또한 불안과 고독, 미련과 회한, 운명과 우연이 뒤얽히는 인간의 삶에 대한 드넓은 통찰을 하게 하는, 소란한 지상의 비밀한 신성의 흔적을 예감하게 하는 소설이다.
쉼표와 사이: 작별과 재회의 들숨과 날숨으로 짜나가는 글쓰기
이 작품에서 야트게이르, 엘리네, 프랑크는 로맨스 서사의 전형적인 삼각관계에 해당하나, 세 사람의 직접적인 갈등과 대면 없이도, 욘 포세는 자신만의 문체와 서사 전략으로 독특한 사랑과 운명의 변주를 그려낸다. 두 남자 모두 자신의 배 이름이 여자의 이름과 같거나 유사하다(엘리네/엘리노르)는 특징을 공유한다. 무엇이 그들의 운명을 불러들였는지 알 순 없다. 공교롭게도 야트게이르의 원래 이름은 게이르이고 프랑크의 본명은 올라브이지만, 관계 속에서 첫 이름은 사라지고 여자가 부르는 대로 불린다. 마치 “오래된 지인”이나 “서로 잘 아는 사이”처럼 위장한 채 다가온, 알 수 없는 거역 불능의 운명에 호명당하듯. 그리고 모두가 삶의 막바지에서 생명의 실이 다 풀리고 빈손이 되면, 만나고 다시 헤어진 얼굴들을 뒤로하고 태어나 자란 고향으로 돌아가 먼저 간 가까운 이들 곁에서 눈을 감는다. 육체와 영혼이 말끔히 연을 다하고, 거기 묘비에는 고유의 이름만 남는다.
욘 포세는 “내게 글쓰기는 듣는 행위”라고 늘 말해왔다. 2장에서 엘리아스가 계속해서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 일, 대부분 그의 내적 독백으로 이뤄진 이 모놀로그 장을 별도로 할애한 이유다. 포세는 “삶 자체가 수수께끼”이므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 채 “저기 바깥에 존재하는 것을 기록할 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며, 만약 알았다면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작 『7부작』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 역시 마침표 없이 쉼표로만 이어진다. 만남과 헤어짐, 들숨과 날숨, 침묵과 말, 현재와 과거가 뜻밖의 순간에 서로 밀물과 썰물처럼 오가며 관계(인연)의 태피스트리가 쉼없이 얽히고설키듯, 포세의 글쓰기 역시 인간 존재들이 짜낸 삶의 무늬를 보여주는 맑고도 투명한 언어의 바느질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