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세계는 수수께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미스터리 공모전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이 어느덧 9회를 맞이했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은 매년 기성 및 신인 작가를 막론하고 한국 미스터리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작가들을 발굴해왔다. 『순결한 탐정 김재건과 춤추는 꼭두각시』로 첫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박하루를 시작으로, 이소민의 『영원의 밤』, 정은수의 『다른 남자』, 레이먼드 조의 『마지막 소년』, 최들판의 『7분: 죽음의 시간』 등 장편부문 대상작을 연달아 출간하며 국내 미스터리 장르의 기반을 다져왔다. 특히 지난해 선보인 민려의 『중복 보상』은 법의학자 유성호로부터 “문학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부검임을 일깨워주었다”는 추천을 받으며 한국 미스터리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장, 단편을 모두 모집하는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의 단편부문 수상자들 또한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제3회 단편부문 수상자인 김묘원의 『고양이의 제단』과 제4회 수상자인 현찬양의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은, 중학교와 조선 초기 궁궐이라는 독특하고 한국적인 소재를 미스터리에 녹여내며 장르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7회 수상자인 배연우의 『탐정, 수정』은 일본을 중심으로 창작, 소비되는 ‘본격 미스터리’ 장르의 국내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며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렇듯 꾸준히 오늘날의 한국 미스터리와 소통해온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은 지난해 첫 수상작품집을 출간했다. 그간 미스터리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던 단편부문 대상작과, 본심에 오른 최종 후보작 네 편을 한 권으로 엮었다. 올해 출간된 『제9회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품집』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버 렉카 등 현실의 풍경을 조각내 옮긴 이야기로 독자를 장악하는 대상작 「광신도(洸神渡)」를 비롯해 김상태의 「심판관」, 김아직의 「호명: 망자의 이름을 부르니」, 황수경의 「지역 노인-유학생 교류 시범사업에 관하여」를 소개한다. 장르의 문법을 능숙하게 비틀어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네 편의 소설을 통해 한국 미스터리가 맞이할 미래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흩어진 파편들을 하나의 불온한 진실로 이어붙이듯 써보았습니다.”
서슬 퍼런 욕망을 발가벗기는 네 편의 이야기
‘장르’를 역습하며 뻗어나가는 한국 미스터리의 미래
대상작 | 혜림, 광신도(洸神渡)
“태초에 물이 있었고, 그 물에서 생명이 났으니,물을 거스르는 자는 생을 거스르는 자다.”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장악한 작가의 의도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린사’뿐일지도.” - 김효선(알라딘 한국소설 담당 MD)
실종된 딸을 찾는 수상한 행색의 중년여성. 거듭된 신고와 왠지 모를 불길함에 딸의 자택에 찾아간 경찰은 살인사건으로 의심되는 현장을 마주한다. 곧이어 야산에서 딸의 시신이 발견된다. 유력한 용의자인 남자친구의 범행으로 수사가 종결되려던 그때, 사이비 종교 ‘수궁원’에 몸담은 피해자의 어머니가 의심스러운 언행을 보인다. 일기, 수사 기록, 커뮤니티, 인터넷 방송 녹취록 등 여러 형태로 등장하는 파편적인 정보 속에 숨은 진실은 끝내 예상치 못했던 결말로 이어진다.
김상태, 심판관“그러나 지금 나의 죄를 추궁하는 것은 경찰이 아니다.구름 위, 정말로 내 목을 조여오는 것은.”
“선명한 캐릭터와 도시의 분위기, 사건의 과정 등이 잘 그려져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 서미애(소설가)
경제자유화 선언으로 찬란한 발전이 예견되던 2000년대 초 인도. 외국계 은행의 직원인 ‘박원서’는 강가를 따라 화장터가 끝없이 이어진 발루아 지역, 가트 거리 진출을 노린다. 그러나 카스트 제도의 영향으로 귀족들에게 배척당하거나 마약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의 진출을 방해하는 뒷세계 세력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등 난항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고, 잇따른 업보는 방심한 순간에 상상치도 못한 방식으로 돌아온다.
김아직, 호명: 망자의 이름을 부르니“네 이름을 지운 세상으로 가서 네가 누군지 알아올 것이다.그때까진 네 이름도 바리다.”
“캐릭터와 설정이 일회성으로 동원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고 매우 생동감 있다.” - 박하루(소설가)
망자의 이름을 세 번 불러 저승으로 인도하는 바리공주. 그러나 염치산에서 흉측하게 훼손된 몰골로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원혼을 발견한다. 바리공주는 망자에게 이름을 찾아주기 위해 염치산 변사 사건을 담당하는 오 형사를 찾아간다. 인간의 영역에 발 들일 수 없는 바리공주는 망자와 소통하며 오 형사를 간접적으로 돕는다. 바리공주의 도움에 힘입어 오 형사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던 사건의 유류품에서 힌트를 얻고, 답보 상태에 있던 수사를 끔찍한 진실이 기다리는 곳으로 이끈다.
황수경, 지역 노인-유학생 교류 시범사업에 관하여“노인은 아주 잠깐, 타나콘을 가늠하듯 바라보았다.백내장이 진행중인 듯 희끄무레하게 탁해진 눈동자에 핏발이 서 있었다.”
“토속적 분위기를 진하게 풍기는 점과 개운하지 않은 뒷맛이 남는 결말까지, 한국 공포소설의 요소를 뚜렷하게 갖추고 있다.” - 박광규(평론가)
영도시 주도하에 지역 노인과 영도대학교 소속 유학생의 교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시범사업은 성공적으로 마치지만 담당 부서인 노인복지과 주무관은 성과 보고서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한다. 〈이니셰린의 밴시〉의 나라에서 태어난 숀 머피, ‘부두교’로 알려진 크레올계 여성 멜리나, 〈랑종〉의 나라에서 온 타나콘 라따나퐁, 세 학생의 보고서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한 수상한 노인의 존재. 공원에서 휘파람을 불고 자진모리장단을 두드리는 노인은 무언가를 부르는 듯도, 지키는 듯도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