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았길래 떨어지면서도 저렇게 아름다울까.”
“그것은 누구나 각자의 페이지가 있고,
각자의 문장이 삶의 한 부분이었던 사람들의 합창이었다.”
유대에서 함께하는 연대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소설가 하명희의 신작 소설집
“서로의 그네를 밀어주고 마음을 믿어주던 시간은 지나갔어도 내 안의 다정은 사라지지 않았음을. 되돌리고 싶은 것들을 향한 애도의 문장들이 가슴으로 스며들어 가만히 숨을 쉬게 한다.”
_박소영(퇴촌 베짱이도서관 관장)
‘인간은 인간에 대해 인간적이어야 한다’
장편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2014)로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하명희의 새 소설집. 2009년 〈문학사상〉에 택배 청년의 하루를 그린 단편소설 「꽃 땀」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1991년 ‘5월 투쟁’에 참여했던 고등학생 운동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로 제22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70미터 고공 크레인의 여성 기사가 주인공인 단편집 『불편한 온도』로 2019년 한국가톨릭문학상 신인상과 백신애문학상을 수상했다. 단편집 『고요는 어디 있나요』(2019)에 이어 8편을 모은 이번 작품집에서도 ‘온기’ 있는 작가라 평가받는 저자의 시선은 여전히 따스하다. “사람의 자리를 걱정하며 사람들의 ‘안녕’을 묻는 데 진심”(해설)인 작가는 “다정”(「다정의 순간」)이 유대를 넘어선 연대의 고리가 될 수 있고 아픔이 개개인의 몫인 각자가 아닌 이해와 지지가 있는 공동체로 나아가기를 정갈한 문체로 담담히 전한다. 또한 주연부터 조연까지 한 명 한 명의 배우가 살아 있는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생동감은 작가의 인간에 대한 밀도 있는 통찰력과 온기 있는 시선을 오롯이 담고 있다.
사람의 자리를 생각하며, 문학의 자리가 어디여야 하는지 자문자답하는 글쓰기를 보여주었다. 하명희는 특히 ‘온기’ 있는 문장으로 인기척 있는 작은 커뮤니티를 보여주는 데 여느 작가보다 진심이었다.
-해설에서
다종의 사회적 폭력에 움츠리고 치유받지 못한 이들
이번 작품집에는 공통의 아픔이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릴 적 ‘아픈 일’을 당하고 스님이 된 이모와 아버지의 병원비 때문에 사채업자들에게 ‘아픈 일’을 당한 엄마(「작년에 내린 눈」), 중환자실 앞에서 면회 시간에 맞추어 대기하고 있는 가족들(「작년에 내린 눈」), 연숙의 아버지로부터 생리 축하 인사를 들었던 선숙, 연숙, 미숙(나), 진숙(「먼 곳으로 보내는」), 고인이 된 소설가의 장례식장에 모인 고인의 작품 속 인물인 곡마단 소녀, 공중그네 소년, 차력사, 꽃시장 장미 여인, 파고다공원 이야기꾼(「모르는 사람들」), 오래된 서점이 폐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오래된 서점에서」), 중학교 시절 고모집에서 식모 노릇을 하며 차별과 학대를 당한 언니(「다정의 순간」), 부마민주항쟁 당시 열다섯 살 나이에 파출소 방화범으로 몰려 42일 동안 고문을 당했으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마산행」), 이태원 참사로 남편과 딸을 잃고 남겨진 엄마와 딸의 친구들(「밤 그네」). 뇌졸중으로 언어를 잃은 남편 ‘송민호’.(「그 여름 저녁 강이 우리에게 준 것)
다종의 사회적 폭력 앞에 움츠리고 치유받지 못한 채 남모르는 족쇄로 안고 살아왔던 이들의 고통은 같은 아픔을 나누는 유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일이 있던 당시 충격으로 일상생활이 어렵던 이모는 절에 맡겨져 가족과 연을 끓고 살았고 엄마는 그런 이모를 찾아가 미안했다고 손을 내민다. 엄마의 죽음 뒤 들려주는 이모의 이야기는 딸들에게 엄마의 생을 온전하게 이해받고 떠날 수 있도록 한다.(「작년에 내린 눈」) 연숙의 아버지의 말이 “생각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진숙은 시한부 진단을 받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뺑소니 사고로 지적장애 판정을 받은 연숙이 아빠를 돌보는 재가요양 간병인을 자청한다.(「먼 곳으로 보내는」) 주인공과 함께 세월호 관련 서적 북토크에 참가한 언니는 세월호 참사 후유증을 앓고 있는 동수에게 보내는 “다정”의 온기에 스스로도 치유를 받는다.(「다정의 순간」) 부마항쟁 40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아버지는 카메라 앞에 서서 40년 동안 감추었던 이야기를 밝힌다.(「마산행」)
인물들의 아픔은 ‘온기’를 지닌 이해와 지지가 함께하면서 연대로 나아간다.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저의 소설 속에는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겼다”면서 “우리는 이들과 함께 가야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밝힌 바람이 온전히 느껴진다.
상처받은 이들을 향한 ‘온기’
따뜻함에도 여러 색깔과 방향이 존재한다.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리얼리즘”(문학평론가 복도훈)이라는 평을 받는 작가의 ‘온기’는 단호하다. “그의 따뜻함에는 확실한 방향성이 있다. 그의 따뜻함은 이 세상의 뒤틀림과 그릇됨에 의해 상처받은 존재들을 향해서만 열려 있다. 그것은 따뜻함이되 ‘당파적 따뜻함’이”(김명인 문학평론가)라는 평처럼 이번 작품집에 등장하는 ‘국가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뺑소니’ 따위 폭력의 피해자들을 향한 연대(지지)에 대한 작가의 바람은 낱낱으로 흩어진 삶에 ‘함께’하는 삶의 의미를 전할 것이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점점 사라져가는가, 왜 아름다운 것들은 점점 가난해져가는가”라는 50년 전 문장을 나도 품고 있다고,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어진다.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