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탐미적인 형식과 지극히 사색적인 내용이 어우러져
《거짓말》의 멜로디를 풍요롭게 변주한다.
화가의 문체와 철학자의 상상력이 어우러진 흥미로운 소설이다.”
_정여울(문학평론가)
제2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거짓말》 개정판 출간!
“날카로운 자의식의 작가가 만들어갈 새로운 소설의 경지”
《레이디 맥도날드》 《서핑하는 정신》 한은형 첫 장편소설
당돌하고 위악적인 열일곱 소녀의 성장담을 그려낸 《거짓말》이 개정판으로 다시 찾아온다. 제2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자 한은형의 첫 장편소설인 《거짓말》은 개성적인 문장과 예민한 감수성, 유난스럽지만 매력적인 자의식으로 책을 덮고 나서도 잊을 수 없는 한 소녀를 독자의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1996년 제정된 한겨레문학상은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윤고은의 《무중력 증후군》,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장강명의 《표백》, 강화길의 《다른 사람》, 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 강성봉의 《카지노 베이비》 등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린 작품들을 선보이며 오랜 시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한은형의 《거짓말》은 2015년 “문장의 솜씨와 일관성 있는 색채, 예민한 감수성을 무기로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였”으며 “초반부터 빠르게 독자를 낚아채서 소설 속 인물을 따라가게 만든다”는 심사평과 함께, 총 291편의 경쟁작 가운데 압도적인 득표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거짓말》은 1996년을 배경으로 한 고1 여학생 최하석의 이야기다. 부족할 것 없는 가정환경이지만 부모는 하석이 무얼 해도 무덤덤할 뿐이다. 집 안에는 하석이 태어날 즈음 사라진 언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지 못할 좋은 딸이자 모범생이었던 언니를 이길 수 있는 방법으로 하석은 ‘죽음’을 생각하고, 자살 방법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습관처럼 내뱉고, 사랑도 우정도 책으로 배우던 하석은 PC통신을 통해 ‘프로작’을 만나고, 그 만남은 조금씩 관계를 배우고 솔직해지는 계기가 된다. 열일곱 소녀의 거짓말은 자신의 상처 안에 가라앉지 않기 위한 발장구와 같은 필수적인 생존 방식이다.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내뱉는 열일곱 살,
겁 많은 ‘자살 수집가’의 빛나는 성장담
1996년 여름, 국민학교가 사라지고 〈마카레나〉 열풍이 전국을 휩쓸었으며, 복제양 돌리가 태어났다. 여자아이는 열일곱이 되었고, 막 생리를 시작했다. 태어난 이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다. 엄마가 아니라면 멋지다고 생각했을 피곤한 미구 씨와 정성스레 난을 죽이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인 아빠는 아이가 공부를 잘해도, 사고를 쳐도, 무덤덤하게 반응할 뿐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어른들의 허위의식을 경멸하며, 취미는 자살 수집. 회의주의자이자 거짓말주의자. 이 당돌한 아이 최하석은 고1 여름, 같은 학교 남학생과 함께 발가벗고 교실 커튼을 덮어쓴 채 잠을 자다 들킨 사건으로 자퇴를 한다. 학교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었지만 하석에게는 그저 너무 지루해서 벌인 일일 뿐이었다. 경기도 변두리에 있는 Y고등학교로 전학 간 하석은 거기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 자신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는다. 자신의 솔직한 모습으로 이해받기를 애초에 포기하지만, 그렇다고 상대가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하석에게 거짓말은 즐거운 유희이자 아름다움이자 자신의 상처를 들키지 않기 위한 생존 방식이다.
거짓말을 좋아하게 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진심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을 말하는 편이 낫다. 상대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위해서다.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는 눈에 나를 유기(遺棄)하고 싶지 않으니까._본문에서
하석은 신문이나 책에서 자살 방법을 수집한다. 하석이 ‘죽음’에 사로잡힌 데에는 집 안에 짙게 드리워진 언니의 그림자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친구한테도 인기 있고, 부모님한테는 좋은 딸이고, 흠을 잡을 데가 없는 인간”이었던 언니. 언니라고 하지만 스무 살 나이 차에 본 적도 없고, 불러본 적도 없는 사람. 20대 초반에 죽어버린 바람에 부모의 모든 애정을 다 가져가버린 사람. 하석은 “죽어서라도 사랑이라는 걸 듬뿍 받고 싶”어서 언니보다 빨리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친구들보다는 이미 죽어버린 작가들과 더 잘 통하고, 그런 세계를 상상하는 것만이 하석이 지루한 삶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그런 하석의 눈앞에 PC통신에서 만난 ‘프로작’이 거짓말처럼 나타난다. 하석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와 달리 그에게 머릿속 생각을 투명하게 쏟아내고, 이해를 구하고, 진실을 말해버린다. 프로작과의 만남과 대화는 하석이 보는 삶의 방향을 아주 조금 바꾸어놓는다.
“넌 마요네즈를 좀 바를 필요가 있겠다.”
“뭐?”
나는 난데없는 그 애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마요네즈를 싫어한다. 계란 비린내가 신경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마요네즈? 내가 아는 마요네즈?”
프로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머릿속에 잡념들이 스며들지 않도록 방부 처리를 하는 거야. 너는 잡념이 너무 많아.”
(…)
프로작은 말했다. 이야기를 쏟아내고, 쏟아내고, 또 쏟아내라고, 그래서 탈진하라고. 원한다면, 자신이 스펀지가 되어주겠다고.
나는 ‘부드러운 모서리의 방’으로 가고 있는 걸까?_본문에서
《거짓말》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는 소녀가 아닌 또 다른 화자가 등장한다. 그 화자는 어른이 된 하석일 수도 있고,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서 하석의 이야기를 지어낸 제3의 인물일 수도 있으며, 많은 사람이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작가 자신일 수도 있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평범하다. 그래서 평범하지 않은 삶을 꿈꾸었다.” 마치 거짓말이 거짓말을 감싸고 있는 듯한 형태다. 이 교묘한 거짓말은 “하나의 서사 속에 두 개의 삶이 겹쳐질 수 있는 공백을 만드는 원동력”(서희원 문학평론가)이 된다. 겹겹의 거짓말로 이루어진 소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인지 가늠하려는 독자에게 작가는 마지막 문장을 건넨다.
어디를 믿어도 좋다. 어딘가를 믿지 않는대도 좋다. 어쨌거나, 거짓말은 거짓말인 것이다.
_본문에서
■ 추천사
《거짓말》은 ‘출생의 비밀’과 ‘자살’이라는 생의 두 모티브 사이를 바지런히 오가는 10대의 이야기다. 주인공의 일상은 탄생과 죽음이 한데 공유되는 자리인데, 거기서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빛나는 모험의 과정을 겪게 된다. 소설은 주인공의 성격처럼 시종일관 활달하고 힘이 넘친다. 생의 첫 섹스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에피소드는, 이 소설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인상적인 부분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해도 여전히 문학 출판은 소비자의 수준을 탓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산업 분야로 남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거짓말》은 근래의 어떤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듯 보인다. 말 그대로 가볍지만, 이 정도라면 가벼워도 좋잖아, 하는. _백민석(소설가)
뼈대만 추려놓고 보면 이야기는 어디선가 본 듯한 통속의 요소를 두루 갖췄다. 그러나 소설에서 뼈대를 추리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동시에 실감할 수밖에 없다. 세련된 감각으로 응축된 날카로운 문장들이 익숙한 이야기를 팽팽하게 끌고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한 편의 통속극처럼 진부하고 지루하거늘, 오직 빛나는 것은 잘 벼려진 하나의 문장이다”라고 당돌하게 선언하고 있는 소설이다. _서영인(문학평론가)
한은형의 《거짓말》은 살아온 삶과 살고 싶었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짓말’은 하나의 서사 속에 두 개의 삶이 겹쳐질 수 있는 공백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현실과 욕망의 팽팽한 긴장, 그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무중력의 서사로 읽힌다. 그곳에서 《거짓말》의 소녀는 현실을 지배하는 노동과 사회의 기율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욕망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다. 하지만 이를 부르주아적 욕망이 만들어낸 백일몽이라고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살아온 삶과는 별개로 살고 싶었던 삶이 인간을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_서희원(문학평론가)
이 책에 담긴 활자들은 응달에서 자라는 콩나물을 떠올리게 한다. 시선을 잠시 거두었을 때 두 배로 자라나는. 그러나 쉽게 가늠하지 마시길. 책을 덮었을 때, 안부를 묻고 싶은 소녀가 생긴 것도 예상 밖이었으니까. _윤고은(소설가)
소설 속 1인칭을 이런 두 가지 성향으로 나눠보면 어떨까? 끊임없이 자신을 말하려는 ‘나’와 끊임없이 타인을 관찰하려는 ‘나’. 전자의 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척한다. 후자의 나는 타인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 소설을 다 읽고 주인공에게 계속 마음이 쓰였는데, 그것은 자신을 말하려는 ‘나’의 태도 때문이었다. “첫 번째 자살 시도는 세 살 때였다고 한다”라는 문장을 태연하게 말하는 아이. 지루한 걸 끔찍해하고, 거짓말하는 순간 통쾌함을 느끼는 아이. 그 이면에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모습이 보인다. 주인공은 수영을 배운다. 발장구 백 번. 수영 강사는 그렇게 말한다. 거짓말이란 것은 이 아이에게 발장구 백 번과 같은 것 아닐까. 물에 뜨기 위해 계속 발장구를 쳤듯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이 필요했으리라. _윤성희(소설가)
《거짓말》의 언어는 독자의 상상을 기분 좋게 미끄러져나간다. 여긴가 싶으면 어느새 저 어딘가로 날아가 있고, 저 너머인가 싶어 머나먼 시선을 던지면 어느새 등잔 밑이 어둡다. “내용과 형식의 착란은 대개 매혹적이지 않나”라고 읊조리는 주인공의 시선처럼, 이 소설은 내용과 형식의 매력적인 불협화음으로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지극히 탐미적인 형식과 지극히 사색적인 내용이 어우러져 《거짓말》의 멜로디를 풍요롭게 변주한다. 화가의 문체와 철학자의 상상력이 어우러진 흥미로운 소설이다. _정여울(문학평론가)
《거짓말》에 나오는 여고 1년생 화자의 위악과 당돌함은 의외로 이 소설의 겨냥점이 아닐 수도 있겠다. 오히려 있을 수 있는 위악의 상투성을 거절한 자리에서 투명하게 돌출하는 자기 배려의 순진성이 화자의 이야기에 특별한 감흥의 순간을 만들고, ‘거짓말의 시간’을 사라져갈 인생의 시간과의 관련 속에서 되새기게 한다. 무엇보다 서사의 흐름과 소설의 분위기를 단단하게 장악하고 있는 개성적인 소설 문장, 언어의 호흡이 인상적이다. _정홍수(문학평론가)
주인공의 자의식은 유난스럽지만 매력적이고, 그것을 묘사하는 작가의 솜씨는 야무지고 잔인하다. 이것은 또한 작가의 자의식이기도 할 것이다. 이 작품의 가장 빼어난 지점이 이 부근 어딘가에 있다. 한국문학은 어떤 자의식을 지녔을까, 하는 점에 대해 종종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요즘, 이런 날카로운 자의식의 작가가 만들어갈 새로운 소설의 경지를 기대한다. _최인석(소설가)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들은 다른 심사위원들께서 충분히 말씀하실 터이니 그건 넘어가고 나는 이 작가가 진일보하여 한국 소설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이루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이도 그렇고 풍겨 나오는 만만찮은 분위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_한창훈(소설가)
■ 본문에서
그 여름에 대해 생각한다. 거짓말에 대해 생각한다. 사라진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사라진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사라진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그 시간을 견딜 수밖에 없었던 나에 대해 생각한다. 겁 많은 ‘자살 수집가’에 대해 생각한다. 거짓말이 없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교실에서 남자아이와 커튼을 덮고 있다가 경비원에게 발각된 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했다. 커튼을 함부로 뗀 것을 기물 파손으로 문제 삼았다면 모를까, 그들은 다른 걸 문제 삼았다.
남자아이와 같이 누워 있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는 것.
나는 억울했다. 교칙에는 남자아이와 누우면 안 된다는 금지도 없었고, 밤에도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는 의무도 없었으니까. 나는 이유를 물어봐주기를 바랐다.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루해서요. 너무 지루해서요.’
‘솔직’이라니. 한숨이 나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였다. 민주, 평화, 평등, 자유, 수호 같은 말들과 함께. ‘훌륭한’이라는 형용사를 쓰는 사람과 ‘오롯이’ 따위의 부사를 쓰는 사람도 싫었다.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다’, 이게 솔직의 뜻이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거짓말을 즐겼고, 늘 뭔가를 숨겼으며, 바름을 혐오했고, 곧은 건 내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나는 불투명한 사람이 좋았다. 어떤 투명함은 하나의 폭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회의주의자가 웅변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이상하지만 멋질 것이다. 아니, 이상해서 멋질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조국의 융성을 위해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다 잘할 수 있는 걸까요? 글쎄요, 노력은 나도 하고 너도 하는데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는 뭘까요? 아무래도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걸까요? 그럴 바에야 노력을 안 하는 건 어떨까요? 아무래도 지나치게 애쓰는 건 보기 안 좋으니까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움직이는 노랑 구름을 보는 것 같았다.
책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친구를 발견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랄 만한 게 없었으니까. 여자애들과 도시락을 먹거나 화장실에 같이 갔지만, 그뿐이었다.
작가일 때도 있었고, 작가가 만든 인물일 때도 있었다. 동의를 얻지 않고 친구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내 입장에서만 본다면 아주 괜찮은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든든해졌다.
어떻게 하더라도 나는 이 여자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진지하고 모범적인 인생을 살다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죽은 뛰어난 여자를. 내가 언니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즉 부모의 관심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죽는 것이 유일했다. 언니보다 더 일찍. 그리고 더 애절하게.
나는 죽어서라도 사랑이라는 걸 듬뿍 받고 싶었다. 내가 언니보다 사랑스럽지 않다고 해도 불쌍하게 여겨진다면, 사랑 비슷한 걸 얻을 수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한부 인생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어야 한다. 빠를수록 좋다. 그러므로 나와 함께 죽어줄 남자애가 시급히 필요했다. 아니면 사랑으로 나를 죽여줄 남자도 괜찮다. 난 그 남자에게 말할 것이다. ‘내 목을 졸라줘’라고. 그러면 겁 많은 나도 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