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 1913~1960년. 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카뮈는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고, 같은 해 에세이 『시지프 신화』로 철학적인 면모를 인정받았다. 또 극작가로서도 『칼리굴라(1938)』 『오해(1944)』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47년 『페스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비평가상’을 수상했지만, 1951년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반항하는 인간』을 발표해 사르트르를 포함한 동료 작가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그는 1957년 역대 두 번째로 어린 43세의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사후에 유작 『행복한 죽음(1971)』과 미완성 소설 『최초의 인간(1994)』이 출간됐다.
빅토르 위고 Victor Marie Hugo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극작가. 1802~1885년. 1822년 첫 시집 『송가와 잡영집Odes et Poésies Diverses』을 간행하고 같은 해 결혼했다. 1825년 프랑스 왕실로부터 레지옹도뇌르 기사 훈장을 받고, 여러 잡지에 문학평론을 기고하며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문학 논쟁에도 참여해 낭만주의 문학의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받는다. 희곡 『크롬웰(1827)』 서문은 고전주의 이론에 대항한 낭만주의 연극이론의 선언서로서 유명하고, 희곡 『에르나니(1830)』는 고전파와의 ‘에르나니 논쟁’을 일으켰다.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1831)』으로 소설가로서의 지위를 굳혔고, 1841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다.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발하다 추방을 당해 19년여 해외를 떠돌지만, 이 시기 그의 대표작인 소설 『레 미제라블(1862)』 『바다의 노동자(1866)』, 시집 『징벌(1853)』 『명상시집(1856)』 등이 발표됐다. 1870년 나폴레옹 3세의 몰락으로 파리에 돌아와, 1876년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지만 2년 만에 건강 악화로 은퇴했다. 1885년 폐울혈로 사망한 빅토르 위고는 국민적인 애도 속에 프랑스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고 팡테옹에 시신이 안장됐다.
우고 와스트 Hugo Wast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1883~1962년. 20세기 초중반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읽힌 작가 중 한 명으로, 생전에 그의 작품이 3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1911년 소설 『복숭아꽃』으로 등단했고, 1918년 스페인 왕립아카데미에서 소설 『검은 계곡』로 ‘5년주기상’을 받았다. 또 1925년 발표한 사실주의 소설 『돌의 사막』으로 ‘국가문학상(1928)’을 수상했다. 공직으로는 1916년에는 보수당 소속으로 하원의원으로 선출됐고, 재선에 실패한 후 1920년부터 산타페대학의 교수로 재임했다. 호세펠릭스 우리부루의 군부 쿠데타 직후인 1931년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임명됐고, 1935년 교황 비오 11세로부터 ‘성 그레고리오 대훈장’을 받았다. 1943년 페드로 라미레스 군사정부의 법무부 장관 겸 공공교육부 장관이 되어 공립학교에 가톨릭 종교교육을 선택과목으로 도입해 아르헨티나 교육의 60년 전통을 깨뜨렸다. 주요 작품으로는 앞서 언급한 것 외에 『까마귀의 집(1916)』 『격동하는 도시, 활기찬 도시(1919)』 『공동체(1935)』 『금(1935)』 『후아나 테이버(1942)』, 『666(1942)』 등이 있다.
레프 톨스토이 Граф Лев Николáевич Толстóй, Leo Tolstoy 러시아의 대문호. 1828~1910년. 1852년 처녀작인 자전소설 『유년시절』을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이후 1853년 발표한 『소년시절』과 1856년의 『청년시절』을 묶어 ‘자전소설 3부작’으로 부른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고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간행하기도 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1869)』 『안나 카레니나(1877)』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레프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Астапово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O. 헨리 O. Henry, William Sydney Porter 진 웹스터와 함께 미국 문학의 2세대19세기 말~20세기 초를 대표하는 작가. 1862~1910년.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 기드 모파상의 영향을 받아 보통 사람들, 특히 뉴욕 시민들의 생활을 낭만적으로 묘사했다. 약사, 제도사, 은행원, 기자 등의 직업을 전전하며 1887년경부터 습작을 시작해, 칼럼니스트이자 만화가로도 활동했다. 1893년 《롤링 스톤즈》라는 주간지를 내며 글을 썼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텍사스 오스틴의 은행에서 근무하다 1898년 횡령죄로 기소되어 복역하게 되던 중, O. 헨리라는 필명으로 《맥클뤼어》에 발표한 「휘파람 부는 딕의 크리스마스 스타킹(1899)」이 인기를 얻었다. 출감 후 1902년부터 《뉴욕 월드 선데이 매거진》에 연재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작가로 활동해 총 381편의 단편을 발표했고 10여 권의 단편집을 출간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되찾은 양심(1903)」 『캐비지와 왕(1904)』 「마지막 잎새(1905)」 「크리스마스 선물(1906)」 등이 있다. 1910년 세상을 떠나며 딸에게 남긴 유언은 “불을 밝혀다오. 어둠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였다.
오스카 와일드 Oscar (Fingal O’Flahertie Wills) Wilde 아일랜드의 시인, 소설가이자 극작가. 1854~1900년. 1881년 첫 시집인 『시집』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이후, 유일한 장편소설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1)』과 희곡 『진지함의 중요성(1895)』으로 대중적인 스타가 된다. 날카로운 풍자와 화려한 언어구사력으로 당대 최고의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퀸즈베리 후작의 막내아들이자 그보다 16살 어린 앨프리드 더글라스와 동성애에 빠진, 소위 ‘퀸즈베리 사건’으로 몰락했다. 결국 1895년부터 2년간 교도소에 수감된 후 바로 프랑스로 건너가지만, 그곳에서 가난과 고독 속에 지내다 1900년 뇌수막염으로 사망했다. 사후 그의 작품들은 위선적인 빅토리아 시대를 비판하고 예술의 자율성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재평가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 『캔터빌의 유령(1887)』 『아서 새빌 경의 범죄(1891)』, 희곡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1892)』 『살로메(1893)』, 동화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들(1888)』 『별에서 온 아이(1891)』 등이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谷崎潤一郞 일본 소설가. 1886~1965년. 1910년 문예지 《신사조》에 단편 「문신」을 발표하며, 당시 주류이던 자연주의 문학이 아닌 줄거리 중심의 글로 관심을 끌었다. 초기에는 가학성과 피학성, 여성 숭배 등 파격적인 소재를 다뤄 ‘악마주의’ 작가로 불리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관동 대지진 이후 간사이 지방으로 이주하며 일본 전통의 미에 관심을 가지며 문학적 전기를 맞았다. 고전문학인 『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는 등 일본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해 ‘문장의 신’이라 칭송받을 만큼 탐미적이고 유려한 문체로 평가받는다. 4회 연속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일본인 최초로 미국예술원 명예회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치인의 사랑(1925)』 『만지(1931)』 『세설(1949)』 『열쇠(1956)』 『미친 노인의 일기(1962)』 등이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독일의 대문호. 1749~1832년. 1773년 희곡 『괴츠 폰 베를리힝겐』으로 문단에 데뷔했고, 이듬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해 단숨에 유럽 전역의 스타로 떠올랐다. 18세기 후반 독일의 반계몽주의적 문학운동인 ‘질풍노도’ 운동의 상징이 됐다. 주요 작품으로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선택적 친화력』, 『파우스트』, 『이탈리아 기행』, 『서동시집』 등이 있다. 괴테는 고전주의 문학을 확립하며 독일 문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식물학, 광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업적을 남긴 ‘보편적 천재’로 평가받는다. 그는 83세가 된 1832년 바이마르에서 “더 많은 빛을!”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 엮은이 - 이문열(李文烈)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향인 경북 영양, 밀양, 부산 등지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서 수학했으며 대구매일신문 기자로 재직하던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그해 겨울」, 『황제를 위하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여러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독보적인 문체로 풀어내어 폭넓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특히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은 문단의 주목을 이끈 초기 대표작이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젊은 날의 초상』 『영웅시대』 『금시조』 『시인』 『오디세이아 서울』 『선택』 『호모 엑세쿠탄스』 『불멸』 등 다수가 있고, 『이문열 중단편 전집』(전 6권), 산문집 『사색』 『시대와의 불화』 『신들메를 고쳐매며』, 대하소설 『변경』(전 12권) 『대륙의 한』(전 5권) 등이 있으며, 평역소설로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가 있다.
오늘의 작가상1979, 동인문학상1982, 대한민국문학상1983, 중앙문화대상1984, 이상문학상1987, 현대문학상1992, 21세기문학상1998, 호암예술상1999, 대한민국예술원상2009, 동리문학상2012 등을 수상했다. 또 1992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2015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24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등 전 세계 31개국 24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