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서클”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군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입니다.
「우보 사틀라」에 이은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의 두 번째 시간입니다.
이번에는 크툴루 신화의 “차토구아”가 중심이 되는 두 편을 함께 소개합니다. 차토구아는 크툴루 신화의 올드원에 속하는 신적 존재인데요. 차토구아를 맨 먼저 창조한 작가는 스미스입니다. 러브크래프트는 이 차토구아를 차용하여 자신의 크툴루 신화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는데요. 차토구아와 함께 스미스까지 ‘클라카쉬-톤’이라는 대사제로 변용한 것은 원작자에 대한 익살스러운 헌정이자 깨알 같은 디테일입니다.
스미스가 ‘조타쿠아’로도 칭한 차토구아는 괴물 두꺼비의 모습으로 전체가 짧은 털로 뒤덮여서 박쥐나 나무늘보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감길 듯한 졸린 눈알에서 보이듯 자신의 제단에 바쳐진 제물만 먹어대며 웬만해선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방콕”형 신인데요.
반면에 러브크래프트는 차토구아를 “널리 숭배되는 강력한 신이었고, 큰-얀의 거주자들이 이 신을 받아들인 이후 한때 이 지역에서 강성해진 도시의 이름을 차토구아로 명명하기도 했다.”(「고분」), 암흑의 왕국 은카이에서 온 “일정한 형태가 없는 두꺼비상”(「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 “미발달된 수 백 개의 다리를 지닌 검은 두꺼비 괴물”(「박물관에서의 공포」) 등으로 묘사하고 있는데요.
다소 애매한 가계도이긴 하나, 쌍둥이 신 예브와 누그 중에서 예브의 자식이 차토구아(누그의 자식은 크툴루)로 설정됩니다. 예브와 누그의 부모가 슈브-니구라스(어머니)와 요그-소토스(아버지)인 것을 감안하면(「영겁으로부터」) 크툴루의 사촌격인 차토구아는 굼뜬 외모와 달리 살벌한 혈통의 후손이군요. 이밖에 차토구아는 『광기의 산맥』, 「실버키의 관문을 지나」 등 여러 작품에 등장합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차토구아는 스미스의 박쥐나 나무늘보, 께느른한 이미지 등 디테일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스미스가 “코스믹” 기원과 다른 차토구아의 가계도를 세운 것도 러브크래프트와 차별화되는, 흥미로운 부분인데요. 나아가 스미스는 자신의 차토구아에게 다양한 형태로 변하는 성형능력 내지는 변신 능력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차토구아(조타쿠아)는 서로의 창조물을 주거니 받거니 변주하는 방식으로 각자의 세계관을 확장했던 러브크래프트 서클의 긴밀한 관계성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토성으로의 관문」은 차토구아의 다른 이름 즉 조타쿠아가 등장합니다. 하이퍼보리아의 ‘무툴란’에서 최대 라이벌인 대사제와 마법사가 충돌합니다. 현재를 지배하는 여신 이호운데를 섬기는 제사장 모르기, 숭배가 금지된 고대의 신 조타쿠아(차토구아)를 지하에서 몰래 섬기는 마법사 에이본. 언뜻 힘의 균형은 유력한 신을 등에 업은 모르기에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모르기가 에이본을 이단 심문하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에이본은 조타쿠아로부터 금기의 지식을 전수받고 토성으로 가는 문을 벽면에 설치하는 등 나름 종교심판에 대비를 해왔습니다. 계획대로 시크라노쉬(토성)로 도주하는 에이본, 이를 쫓는 모르기. 이들은 이제 시크라노쉬라는 낯선 공간, 낯선 종족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조타쿠아의 친족(친삼촌)인 “흐지울쿼이그문즈하”(하, 발음이 불가능하다고 미리 알려주는 사악한 친절함은 스미스라고 다르지 않네요...)과 조우한 에이본은 그 신의 메시지를 특정 종족에게 전달하라는 계시를 받들어야 합니다.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살아남기 위해 외계 행성에서 벌이는 두 하이퍼보리아인의 흥미진진한 여정과 그 끝을 다룬 작품입니다.
「사탐프라 제이로스 이야기」는 차토구아가 최초로 등장하는 단편입니다. 출간 시기 때문에 러브크래프트와 선후 관계에서 작은 오해가 생기기도 하는데요. 스미스가 「사탐프라 제이로스 이야기」를 집필한 것은 1929년, 《위어드 테일스》에 발표한 것은 1931년입니다.
하이퍼보리아의 첫 번째 도시 콤모리옴이 버려진 것은 수백 년 전인데요. 백의의 무녀가 이 도시의 멸망을 예언한 결과입니다. 두 번째 도시 우줄다롬으로 사람들이 이주한 이후, 도둑질로 살아가는 사탐프라 제이로스는 콤모리옴의 유적에서 크게 한탕하려고 합니다. 콤모리옴에 남아있을 왕실의 금은보화와 신전의 값비싼 제기들을 노린 것인데요.
제이로스는 절친이자 역시 같은 직업을 지닌 티로브 옴팔리오스와 작당을 하고 콤모리옴으로 향합니다. 콤모리옴의 신전과 능과 왕궁에 상상을 초월한 괴물과 공포가 영원히 떠돈다는 괴담을 무시한 결과는 치명적입니다. 제이로스가 그 충격과 파멸의 전말을 밝히는 이유는 자기들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 말라고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책 속에서>
여신 이호운데의 대사제, 모르기는 자신의 가장 난폭하고 유능한 부하 열둘과 함께 새벽녘에 악명 높은 이단자 에이본을 찾아갔다. 북쪽 바다 위로 뻗은 곶 한곳에 검은 편마암으로 지은 에이본의 집, 그런데 그들은 그가 없는 것을 알고는 실망하고 놀랐다.
그들이 놀란 것은 그를 기습하는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에이본 처단 계획은 방음이 되는 지하실의 철통 보안 속에서 세워졌다. 그리고 에이본에 대한 판결이 내려진 직후 하룻밤에 그 먼 길을 달려왔던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살가죽으로 만든 두루마리에 불로 새긴 룬 문자 상징이 있는 그 무서운 체포장이 무용지물이 된 것에 실망했다. 그리고 에이본에게 선사하려고 그토록 신중하게 준비한 독창적인 고문, 그 복잡하고 처절한 시련을 빨리 시도해볼 가능성이 없어서 실망했다.
모르기는 특히 낙담했다. 그 꼭대기 방에 아무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을 때 그가 읊조린 저주는 참으로 길고도 무시무시했다. 에이본은 마법에서 그의 최대 경쟁자였고 이들은 하이퍼보리아 대륙의 최북단 반도인 무툴란 주민들 사이에서 엄청난 명성과 권세를 함께 얻었다. 그래서 모르기는 에이본과 관련한 악의적인 소문을 기꺼이 사실로 믿었고 이것을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혐의를 에이본에게 씌우고자 했다.
_「토성으로의 관문」 중에서
나, 우줄다롬의 사탐프라 제이로스는 오랫동안 버려진 하이퍼보리아 통치자들의 수도 콤모리옴의 밀림화된 외곽에 있는, 인간의 숭배 대상에서 무시된 차토구아 신의 신전에서 티로브 옴팔리오스와 내가 당한 일의 전모를 부득불 왼손으로 써내려가는 바, 그 이유는 지금 내게 오른손이 없기 때문이다. 마스토돈의 가죽으로 만든 튼튼한 피지에 세월이 흐르면 핏빛 붉은 색으로 변하는 수바나 야자의 보랏빛 즙으로 이글을 씀으로써 콤모리옴의 사라진 보석에 얽힌 과장된 전설을 듣고 혹여 유혹을 당하게 될 선량한 도둑과 모험가들에게 경고로 삼으려한다.
내 평생의 친구이자 믿음직한 동료, 티로브 옴팔리오스는 능란한 손가락과 민첩하고 빈틈없는 기질을 요하는 일에 적격인 인물이었다. 나 자신이나 티로브 옴팔리오스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보다 훨씬 더 유명한 이 바닥의 꾼들도 움찔 꽁무니를 뺄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스무 마리가 넘는 맹독성 파충류들이 득시글거리는 방에 보관되어 있는 쿠남브리아 여왕의 보석들을 훔쳤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하이퍼보리아 초기 왕조의 장식물로 가득한 아크로미의 철통같은 상자까지 부수었다.
사실 이 장식물들을 처분하기가 여의치도 않고 위험하기까지 하여 멀리 레무리아에서 온 야만인 선박의 선장에게 눈물을 머금고 헐값에 팔아넘기긴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상자를 연 것은 눈부신 위업이었다. 삼지창으로 무장한 십여 명의 보초가 가까이 있어서 쥐죽은 듯 조용히 처리해야하는 일이었으니까. 우리가 그때 사용한 것은 쉽게 구하기 어려운 강산(强酸)인데……. 아니다. 용감하고 능란한 고도의 기술과 영웅적인 추억에 대해 말하고픈 유혹은 강하나, 수다스레 너무 오래 끌어서는 안 되겠다.
_「사탐프라 제이로스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