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어스 노스코트는 당대 유령 소설의 대가 M. R. 제임스와 비견되기도 했던 작가. 그러나 많은 작가들의 운명처럼 재능에 비해 빨리 잊혀지는 불운이 더 컸다. 우아하게 죽여주는 분위기가 특징. 그러나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공포를 원하는 독자들에겐 우아함이 지루함으로 대체될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잔잔하고 얌전한 서사에 악마적 격정이 한번씩 스칠 때의 매력이 만만찮다. 이번 작품집엔 초자연적 현상과 오컬트 요소가 짙게 드러나는 노스코트의 단편 3편을 수록한다. 「포크 부인; 나는 괴물과 결혼 했다 The Late Mrs Fowke」 앞서 출간했던 「고(故) 포크 부인」의 개정판이다. 오컬트와 늑대인간에 가까운 몬스터를 결합하고 있다. 성실하지만 연애엔 젬병인 포크 목사는 마흔 살에 매혹적인 여인 스텔라를 만나 결혼한다. 그런데 이 여자 어딘지 요사스럽다. 심심찮게 주문 같은 걸 외지 않나, 민간요법이랍시고 수상쩍은 연기를 쐬지 않나, 사람들이 피하는 오지의 음침한 늪지를 성지처럼 찾아다니질 않나. 결국 참다못해 아내의 뒤를 밟는 포크 목사, 나름 사전 조사도 하고 각오도 했건만 그토록 섬뜩한 파국을 맞게 될진 몰랐을 것이다.
「브리켓 바텀; 앨리스 실종 사건의 현장 Brickett Bottom」 어느 실종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목회자인 아버지 아서 메이듀와 두 딸로 이루어진 단출한 가족. 대도시의 교구에 재임하면서 건강이 좋지 않았던 메이듀 목사는 안식년을 맞아 한적하고 공기 좋은 시골의 목사관으로 옮긴다. 두 딸인 앨리스와 매기도 동행하는데, 이 마을엔 ‘브리켓 바텀’이라는 묘한 분위기의 협곡이 있다. 사람들 사귀기를 좋아하고 산책을 즐기는 싹싹하고 건강한 두 자매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브리켓 바텀을 오가면서도 보지 못했던 빨간 벽돌집이 나타난다.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하지만 서늘한 여운의 이 고딕 단편은 두 자매 중에서 앨리스가 홀연히 실종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발걸음; 당신만 들리는 소리 The Steps」 영적 텔레파시라는 초감응 심령 현상이 소재. 초감각적 지각인지 환청인지 원인 모를 소리에 고통스러워하는 여성 H의 이야기다. H를 괴롭히는 소리는 한 남자의 발소리. 군인인 이 남자는 그녀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하고 전장으로 떠난다. 여성의 연이은 거절에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집요함을 보이고 떠난 이 남자. 그런데 그의 이름이 신문의 전사자 명단에 들어있는데, 이날 이후부터 H에게 다가오는 그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녀에게만 들려오는 소리…… 흥미로운 주제에 비해 결말이 다소 갑작스럽다.
영국의 작가로 토리당 소속의 부유한 정치가 스태퍼드 노스코트 경Sir Stafford Northcote의 아들로 태어났다. 미국으로 이주하여 결혼한 뒤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버킹엄셔의 치안판사를 지냈다. 뛰어난 유령 단편을 썼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큰 인기는 얻지 못했다. 대중 잡지에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썼지만,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다룬 단편을 모은 작품집 『유령극단$In Ghostly Company$』만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집이 출간되고 1년이 조금 더 지나서 작가는 세상을 떠났고 이후 그의 작품은 오랫동안 잊혀졌다. 대표작으로 「숲속의 집The House in the Woods」, 「검은 옷을 입은 아가씨The Young Lady in Black」, 「다운스Downs」, 「발자국Step」, 「고 포크 부인」 등이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