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문학에서는 라오서를 소위 조련시기(1928__1937)의 대표적인 작가로 지칭하고 있다. 1929년 국민당 정부에 의해 창조사가 해체되고 좌익에 대한 탄압이 전개되면서 순수문학을 지향하던 루쉰, 마오뚠, 위따푸 등과 라오서는 쓰고 생각하는 자유를 수호하는 대열에 서게 되었다. 그의 문학사상은 어느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제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이며 인도주의적인 의식을 바탕으로 표출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대륙의 공산화 이전의 그 어느 작가보다도 사상의 순진성을 지키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라오서는 가정적인 출신부터가 지극히 평범하다는 데에서 신선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만주족인 부모를 두고 북경에서 태어난 그는 홀어머니의 품에서 자랐는데, 입고 있던 옷을 팔아서 끼니를 이어야 할 만큼 가난한 달동네의 삶을 보며 성장했다. 머리가 명석하고 문학에 대한 재능을 어려서부터 남달리 발휘하면서 1919년 5.4문학운동을 맞게된다. 이 운동은 그에게 무한한 창작에의 열정을 불러일으켰고 민중, 민족의 자각과 사회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문제시하기 시작한다. 약관에 북경시의 장학관으로 있던 라오서는 1922년에 어려운 살림에도 연경대학에 진학하면서 그의 문학에의 기초적인 역량을 다질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다. 그것이 1924년 영국으로 건너가서 서양의 문학세계를 가까이하는 기회로 이어진다. 라오서는 런던대학 동방학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면서 영국문학에 심취하였고, 그 중에도 특히 디킨스의 해학적이며 풍자적이 작법에 깊이 감화되어 갔다. 이 영향으로 1926년 6월부터 "소설월보"에 그이 처녀작 "장씨의 철학"을 연재하게 된다. 이 소설은 풍자적인 맛을 주는 성공적인 그의 첫산물이라는 데서 그의 작가적 지위를 확고히 하는 디딤돌이 된다. 그 이후부터 본명인 쉬청춘과 아호인 수위 대신에 '라오서'라는 필명으로 문단에서 현대문학의 한 금자탑을 쌓아 나가기 시작한다. 이어서 "조자왈"(1927), "마씨 부자"(1929) 등을 발표하고, 1930년에 제노대학의 교수가 되면서 본국에서의 창작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한다. 그후 1936년에는 그의 대표작인 "낙타상자"를 "우주풍"에 연재하게 된다. 1941년에 출간된 "낙타상자"가 1945년에 미국에서 "Rickshaw boy)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라오서는 세계적인 작가로 각광을 받게 된다.
1945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면서 중국대륙이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한 공산국가의 체제를 갖추어 감에 따라 라오서는 조국의 공산화를 실망과 우울한 심정으로 지켜보면서 미국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1950년에 전국문련의 신년다화회에 초청되어 귀국하면서 라오서의 노년의 생애는 중국의 체제와 밀접한 유대관계를 맺게 된다. 귀국 이후의 작가활동이 이미 발표된 작품들을 정리나 한 정도인 것을 보면 라오서의 심리적 갈등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나이 53세가 되는 1951년에는 중국의 작가로서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받고 이듬해 5월에는 마오쩌둥의 문예강화 10주년 기념을 위한 "마오 주석은 나에게 새로운 문예생명을 주었다"("인민일보" 1952년 5월 21일)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공산주의 문학이론으로 자신의 문학을 비판하고 주요작품은 개작하거나 삭제하여, 어떤 면에선 서구의 사조를 익힌 라오서의 본의 아닌 삶과 현실에 대한 아부와 밀착을 위한 언행이 아니었던가 하고 일말의 연민을 느끼게 한다. "낙타상자"도 1955년에 다시 개작하여 발표하였을 정도였는데, 그의 개작과 관련된 심경을 개정판 후기를 통해서 유추해 보면 1950년대 이후 1966년 문학혁명에 희생될 때까지의 작가적 의식을 알 수 있다. 그 후기의 일단을 보면, "이 소설은 나의 19년 전의 옛날 작품으로서, 여기에서 나는 인민을 동정하고 좋은 성품을 받들어 주지 못하면서 그들에게 이렇다 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지도 못하였다. 그들은 고생하면서 부당하게 죽어갔다. 그것은 당시 내가 사회의 그늘만을 보고 혁명의 광명과 진리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현실의 이데올로기에 짓눌린 한 작가의 비애를 읽는 것 같은 감상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떻든, 라오서는 이 공산사회에서 "용의 수염"(1951)이라는 화극을 써서 상연케하면서부터 '당을 따르는 벌레'가 되었고, 마오쩌둥 밑에서 정문원문교위원회 위원, 중국문련 부주석, 중국작가협회 부주석, 서기처 서기, 북경문련 주석을 지내다가, 1966년에 사상적 갈등의 말로를 보듯이 홍위병에 의해 모욕을 당하고 투신자살을 함으로써 비극적인 삶의 끝을 맺는다.
라오서의 참된 문학세계는 어디까지나 인민의 편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소재를 가장 인간적으로 소화하여 삶의 참의미가 무엇인가를 음미하도록 한 데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간판에 얽힌 이야기"는 신더쯔라는 작중인물을 통하여 전통적인 생활의식과 서민의 애환을 조화하여 중국인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