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카를로스

저자 - 프리드리히 실러
실러는 1759년 11월 10일 독일 서남부 슈바벤 지방의 네카르 강변에 위치한 작은 도시 마르바흐에서 태어난다. 아버지는 군의관이었는데 살림이 넉넉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은 일생 동안 실러를 괴롭힌다. 1766년 루트비히스부르크로 이사해 라틴어 학교에 다니면서 장차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되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군인 신분인 아버지가 영주 카를 오이겐 공작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서 아들을 1773년 사관학교(카를학교)에 보내는 바람에 신학을 포기하고 법학을 전공하다가 나중에 전공을 의학으로 바꾼다. 8년의 재학 기간 동안 자유가 없는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가운데 문학에서 도피처를 찾는다. 남몰래 클롭슈토크, 레싱, ‘질풍노도’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습작도 한다. 특히 철학 교수 아벨의 영향으로 논리적 사고의 세계를 경험하고 셰익스피어를 알게 되어 푹 빠진다. 1780년 졸업 후 슈투트가르트에서 하급 군의관 생활을 시작하는데 자유가 없어 괴로워한다.
1777년에 시작했으나 공부 때문에 중단했다가 1780년에 탈고해서 자비로 출간한 첫 비극 ＜군도＞가 1782년 1월 13일 만하임에서 공연되어 크게 성공한다. 이를 계기로 작가의 길을 걷기로 작정한다. 부패한 사회를 고발하는 ＜군도＞가 달가울 리 없는 영주는 실러에게 외부와의 접촉과 의학 서적 이외의 저술 금지령을 내린다. 실러는 이런 강제를 참을 수 없어서 그해 9월 22일 거의 다 완성된 비극 ＜제노바에서 일어난 피에스코의 반란＞을 가지고 만하임으로 도주한다. 만하임 국민극장의 전속 극작가 자리를 얻으려는 노력은 이듬해에야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계약이 연장되지 않아 정착하지 못하고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바이마르 등지를 떠돌다가, 1788년 예나대학의 사학 비정규직 교수로 초빙되어 이듬해 예나로 이주한다. 1790년 샤를로테 폰 렝게펠트와 혼인해 4명의 자녀를 얻는다. 1791년 폐병에 걸려 심하게 앓는다. 얼마 후 일어나긴 하지만 평생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신병에 시달린다. 수강생의 감소 등의 이유로 교수직을 접는다. 3년 동안 후원자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역사와 철학, 미학 연구에 몰두한다. 1797년 아우구스트 공작이 저명한 문인들을 불러 모은 결과 문학의 중심지로 떠오른 바이마르로 이사해 창작 활동을 하는 한편 궁정극장에도 관여한다. 1802년 자기 집을 마련하고 세습 귀족이 된다. 1805년 5월 9일, 1년 전에 시작한 비극 ＜데메트리우스＞를 마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실러는 작가로서 명성을 얻긴 했지만 당시의 열악한 문학 내지 출판 시장으로 인해 만년을 제외하곤 평생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신병에 시달리는 등 화려하고 유복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
실러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괴테와의 만남이다. 이것은 독일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가정환경이나 성장 배경은 말할 것도 없고 기질 면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이 두 천재가 처음부터 돈독한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질풍노도’를 극복하고 고전주의로 옮겨 간 괴테는 ＜군도＞의 작가를 탐탁하게 보지 않지만 바이마르 공국의 영주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에게 실러를 예나대학의 교수로 추천해 준다. 그러다가 1794년부터 이들의 우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괴테 편에서는 조형예술과 자연과학을 배경으로, 실러 측에서는 철학과 역사 연구를 통해서 이 두 시인의 예술관이 가까워진다. 이들은 자주 만나 문학, 예술에 대한 대화와 토론을 하고 또 서신을 교환하며 공동 작업도 한다. 이렇게 서로 격려하고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독일 문학의 황금기인 고전주의를 꽃피운다.
실러는 작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 희곡뿐만 아니라 시와 소설도 쓰고 그 밖에 역사와 미학에 관한 논문도 발표하며 몇 개의 문학잡지도 창간한다. 그러나 실러의 본령은 역시 희곡, 비극이다. 실러는 비극 작가로서 괴테보다 더 높게 평가되기도 한다. 실러의 희곡 작품을 간단히 소개한다.
＜군도＞는 썩어 빠진 사회를 통렬하게 고발하는 비극이다. 자유, 행위, 위대성을 갈망하는 주인공 카를 모어는 ‘질풍노도’의 전형적인 인물로, 절망감에 도둑 떼의 우두머리가 되어 썩어 빠진 시대와 사회질서에 반항한다. 그러나 이상주의적 동기에서 시작한 저항이 윤리적 세계 구조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결국 법의 심판을 받기로 한다.
＜제노바에서 일어난 피에스코의 반란＞에서 피에스코는 반란을 일으켜 주민들이 싫어하는 총독을 권좌에서 끌어내린다. 그러나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려는 유혹에 빠지자 함께 반란을 일으켰던 베리나에 의해 살해된다. 공화정 체제에서 자유의 옹호자로 나선 귀족 주인공에게서 공화제와 독재 군주제가 투쟁한다.
＜간계와 사랑＞은 레싱의 ＜에밀리아 갈로티＞와 같이 귀족 청년과 평민 처녀 사이의 비극적 사랑을 통해 권력을 탐하는 부도덕한 귀족계급과 힘은 없으나 도덕적인 시민계급 간의 갈등, 부자간의 세대 갈등을 그린 시민비극이다.
30년전쟁 때 신성로마제국 황제, 즉 구교 측의 총사령관을 소재로 한 ≪발렌슈타인≫은 서극(序劇)인 ＜발렌슈타인의 진영＞ 그리고 ＜피콜로미니 일가＞와 ＜발렌슈타인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3부작으로 핵심 문제는 의지의 자유다. 진영의 분위기와 발렌슈타인 장군의 카리스마적 이미지를 그린 서극에 이어서 ＜피콜로미니 일가＞는 발렌슈타인의 승리 아니면 종말을 둘러싼 음모를 보여 준다. 발렌슈타인과 스웨덴군이 한편이 되고 옥타비오 피콜로미니와 황제가 다른 한편이 되어 병사들과 옥타비오의 아들 막스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3부에서야 극의 전면에 나서는 발렌슈타인은 황제 아니면 스웨덴인들과 결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인생이 환상이나 별점과의 놀이가 아니고, 어정쩡한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 다른 한편 옥타비오의 사주를 받은 버틀러는 그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아버지의 의중이 밝혀질 때까지, 발렌슈타인의 딸 테클라에 대한 사랑과 발렌슈타인에 대한 존경으로 총사령관에게 묶여 있던 막스는 이상을 실현할 수 없음을 알아차리고 전투에 뛰어들어 죽음으로써 탈출구를 찾는다.
＜마리아 슈투아르트＞는 사촌간인 스코틀랜드 여왕 마리아 슈투아르트(영어로는 메리 스튜어트)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사이의 대립을 다룬 비극이다. 신교도들의 반란을 피해 영국에 온 마리아가 엘리자베스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유폐된 상태에서 극은 시작된다. 마리아는 수동적인 주인공이다. 마리아의 사형선고가 집행될 것이냐 아니면 철회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중심을 이룬다. 마리아는 엘리자베스가 자기에게 가한 불의를 정의로 받아들인다. 이전에 저지른 죄에 대한 벌로서 인식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리아는 현실적인 감각적 인간에서 이상주의로 올라간다. 마리아는 정신적인 자세나 외적 미모 면에서 진정한 여왕으로 그려지는 한편 엘리자베스는 권력의 정상에서 점차 굴욕을 느끼고 외로운 처지로 떨어진다.
＜오를레앙의 처녀＞의 소재는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때 신의 계시를 받고 나타나 오를레앙에서 포위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프랑스 왕 샤를 7세를 구하는 등 열세에 처한 프랑스를 구했으나 나중에 영국군의 포로가 되어 마녀로 몰려 화형당한 잔(독일어로는 요한나) 다르크의 전설적인 이야기다. 재판이나 화형은 그려지지 않는다. 전설의 기적의 세계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신비한 것은 초감각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한 시적 비유다. 여주인공의 비극적 갈등은 그녀의 소명, 그리고 인간이자 여성으로서의 본능 사이의 간극에 있다. 요한나가 신의 일을 위해 싸우기 때문에 그녀의 소명은 그녀의 개인적인 일일 수 있는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녀는 순수해야 하고 실러가 말한 숭고함의 화신이다. 그런데 그녀가 적장 리오넬에게 사랑을 느끼는 순간 세상의 성스러움도 사라진다. 그녀의 신비한 힘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녀는 전투에서 쓰러진다. 자신의 초인적인 소명에 자기 몸을 제물로 받치는 것이다.
＜메시나의 신부 혹은 원수가 된 두 형제＞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고대 그리스 비극에 가깝다. 예언에 따라 누이 때문에 서로를 죽이려는 두 형제가 어머니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피해 가지 못한다는 줄거리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같이 분석극적 기법으로 전개된다.
＜빌헬름 텔＞은 텔의 전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스위스인의 독립 투쟁, 합스부르크 왕가에 충성하던 한 스위스 귀족의 독립운동 지지자로의 변모 등 세 가지 갈래를 ‘자유’라는 이념으로 융합한 작품이다. 텔이 홀로 자족하면서 살아가는 사냥꾼에서 폭군을 죽이고 민족을 살리는 인물로 발전하는 모습이 그려지긴 하지만 주인공은 자유를 쟁취하는 스위스인 전부다.

역자 - 윤도중
윤도중(尹度重)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뮌헨 대학교, 본 대학교, 마인츠대학교에서 수학한 뒤, 주한독일문화원, 전북대학교를 거쳐 현재 숭실대학교 독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숭실대학교 인문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레싱, 괴테, 실러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레싱: 드라마와 희곡론≫(2003), 역서로는 ≪괴테 고전주의 희곡선≫(1996), 카를 추크마이어의 희곡 ≪쾨페닉의 대위≫(1999), 레싱의 희곡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2008), ≪에밀리아 갈로티≫(2009) 레싱의 저서 ≪라오콘: 미술과 문학의 경계에 관하여≫(2008)와 ≪함부르크 연극론≫(2009), 프란츠 메링의 저서 ≪레싱 전설≫(2005), 프리드리히 헤벨의 비극 ≪마리아 마그달레나≫(2009)와 ≪유디트≫(2010), 클라이스트의 희곡 ≪홈부르크 공자≫(201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