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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슈타인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예술/문화

발렌슈타인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

구매종이책 정가28,000
전자책 정가22,400(20%)
판매가22,400

책 소개

<발렌슈타인> 실러의 ≪발렌슈타인≫ 3부작은 독일 문학사에서 처음 이루어진 쾌거였으며, 이 작품을 통해 실러는 자신의 본령인 희곡 작가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소위 시민 비극과는 차원이 다른 역사 비극으로, 그리스 비극이나 셰익스피어 비극과 비견할 수 있는 희곡이 독일 작가에 의해 처음으로 창작된 것이다.
실러는 공연을 관람하러 온 프로이센 왕에게 소개되었고, 역시 공연을 본 스웨덴 왕에게서 귀한 다이아 반지를 하사받았다.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황실에서도 공연 소식을 듣고 방문을 예고했다. 초연을 보고 빌헬름 폰 훔볼트는 감격해서 실러에게 편지를 썼다. “이제까지 아무도 이렇게 많은 군중을 동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아무도 이렇게 광범위한 소재를 선택한 사람은 없습니다.”
바이마르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발렌슈타인≫은 1799년 베를린 공연을 시작으로 라이프치히(1800), 함부르크(1806) 등지에서 공연되었고 마침내 독일어권 극장의 레퍼토리로 자리를 잡아 갔다. 그러나 3부작이라는 분량 때문에 공연에 문제가 생긴다. 처음에는 3부작을 3일에 걸쳐서 공연하다가 그 후엔 <발렌슈타인의 진영>과 <피콜로미니>를 첫날 공연하고 둘째 날엔 <발렌슈타인의 죽음>을 공연하는 방식이 시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이틀 또는 사흘에 걸쳐 공연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실러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함부르크 공연을 위해 많은 부분을 생략해서 1회용 대본을 만든 바 있다. 애석하게도 이 대본은 분실되었다가 1958년에 재발견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여러 가지 1회 공연용 대본이 나왔다. ≪발렌슈타인≫은 책으로 출간되어서도 호평을 받아 판을 거듭했다. 오늘날도 ≪발렌슈타인≫은 독일어권 무대에서 계속 공연되며 괴테의 <파우스트>와 함께 김나지움의 독일어 교재로 읽히고 있다.


저자 프로필

프리드리히 폰 실러 Friedrich von Schiller

  • 국적 독일
  • 출생-사망 1759년 11월 10일 - 1805년 5월 9일
  • 경력 예나대학교 역사학 객원교수

2015.03.1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
프리드리히 실러는 독일 서남부의 네카르 강변에 있는 마르바흐의 소시민 가정에서 1759년 11월 10일 태어났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신학을 전공해 목사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영주(領主)인 카를 오이겐 공작의 명에 따라 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8년 동안 방학도 없이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았다. 처음엔 법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 전공을 바꾼 그는 졸업 후 슈투트가르트에서 하급 군의관이 됐다. 그는 학생 시절에 몰래 문학 작품을 탐독하며 습작을 했다. 철학 교수 아벨의 권유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탐독한 것은 그에게 충격적인 체험이었다.
자비 출판한 처녀작 <군도>가 1782년 1월 13일 만하임에서 성공적으로 초연된 것을 계기로 그는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공작의 저술 금지령을 피해서 그는 1782년 9월 22일 밤에 만하임으로 도주한다. 그는 만하임 극장에서 전속 극작가로 첫출발을 하지만 계약이 만료되자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 그리고 바이마르를 떠돈다. 그러다가 예나대학의 비정규직 교수로 초빙되어 1789년에 예나로 이주했다. 그는 여기서 역사와 미학 강의를 하지만 학생 수의 감소와 신병으로 얼마 후 사직했다.
실러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괴테와의 만남이었다. 1794년부터 괴테와 실러의 본격적인 친교가 시작되었는데, 이들은 자주 만나서 문학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많은 서신을 교환하며 공동 작업을 했다. 특히 1802년에는 실러가 예나에서 바이마르로 이사를 해 그들의 친교와 공동 작업은 더욱 강화됐다. 실러는 1805년 5월 9일 오랫동안 앓던 지병으로 바이마르에서 사망했다.
46세의 나이로 마감한 실러의 일생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그는 소도시에서 태어나 평생 소도시에서만 살았다. 그가 가 본 대도시는 1804년 봄에 약 4주간 여행한 베를린뿐이었다. 물론 당시엔 여행하기가 지극히 어렵긴 했지만 그는 평생 빈이나 파리를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
실러는 작가로서 시, 소설, 역사 및 미학 논문 그리고 희곡을 썼다. 생계유지를 위해 몇 개의 문학잡지를 간행하기도 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엔 아직 저작권 제도가 정립되지 않았고 독자층도 제한되어 있어서 글 쓰는 사람들이 전업 작가로 살아가기는 어려웠고 영주나 독지가의 후원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말년에야 돈을 많이 받는 극작가가 되었지만 그는 한평생 빚에 쪼들리는 가난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병약한 몸으로 일생 동안 신병에 시달렸다.
실러는 정치적인 부자유와 변혁의 시기에 살면서 개인적으로는 늘 경제적인 어려움과 병고에 시달려야만 했다. 따라서 그의 문학작품에서는 항상 현실적인 삶과 높은 이상의 세계가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다.

역자 - 이원양
이원양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문학박사). 독일 괴테인스티투트디플롬을 받았고 쾰른 및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연구했으며 뮌헨 대학교 연극학연구소에서 연극학을 연구했다. 한국브레히트학회 회장, 한국독일어교육학회 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그리고 한양대학교 문과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독일연방공화국 정부로부터 1등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이며 한국브레히트연극연구소(Bertolt-Brecht-Zentrum Korea) 소장이다.
지은 책으로는 ≪브레히트 연구≫(1984), ≪독일어 기초과정≫(1995), ≪우리 시대의 독일연극≫(1997), ≪독일 연극사≫(2002), ≪만나본 사람들, 나눈 이야기≫(2006), ≪이원양 연극에세이≫(2010)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한국의 봉함인≫(2005), ≪베르톨트 브레히트≫(2007) 등이 있다. 번역 희곡으로는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2006), <서푼짜리 오페라>(2006),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2008), 크뢰츠의 <거세된 남자>(1987), <수족관>(1988), 슈트라우스의 <재회의 3부작>(1997), 브라운의 <베를린 개똥이>(2007), 실러의 <간계와 사랑>(2008), <빌헬름 텔>(2009), 폰 호르바트의 <빈 숲 속의 이야기>(2009), 클라이스트의 <펜테질레아>(2011), 폰 마이엔부르크의 <못생긴 남자>(공역, 2011) 등이 있다. 2010년 7월 밀양연극촌에서 <햄릿> 공연 사진전 <햄릿과 마주보다>를 가졌다.

목차

나오는 사람들 해설

발렌슈타인의 진영
피콜로미니 일가
발렌슈타인의 죽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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