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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2 상세페이지

고백 2작품 소개

<고백 2> “여기 있는 그대로 완전히 자연 그대로 충실하게 묘사한,
앞으로도 유일무이하게 남을 인간의 초상화가 있다”

혁명적 사상가 루소의 빛과 어둠을 모두 담은 적나라한 자화상. <고백 1>은 그중 첫 번째 작품으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전체 2부 12권으로 구성되었으며(1, 2부를 각각 <고백 1>, <고백 2>로 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계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난 1712년부터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제안을 받아들여 영국 우턴으로 망명을 떠나기 전인 1765년까지 일어난 일들을 다루었다.

루소가 스스로 자기 삶의 주요 사건들을 기억에 의존하여, 혹은 서간 자료를 제시해가며 기록한<고백>은 그의 성격과 가치관을 형성시킨 배경과 경험, 인간관계, 주요 저작의 집필 동기와 출간 과정, 그 저작들이 당대에 불러일으킨 반향 등을 상세히 전하고 있어 루소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 역할을 한다.

젊은 시절에 저지른 부끄러운 잘못과 독특한 성적 취향, 여성 편력은 물론, 자기 아이 다섯을 모두 고아원에 맡긴 일, 백과전서파의 디드로를 위시한 친구들과 절연하게 된 일까지 낱낱이 고백한 이 작품을 통해 루소는 세간의 오해를 풀고 자신의 진정성을 인정받고자 했다.



이 책의 시리즈


출판사 서평

말년의 루소가 자신을 해명하고 변호하고자 집필한 자서전
―루소의 자전적 3부작의 첫 저작이자 대표작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문명과 인위적인 사회 제도에 반대했으며, 자유와 평등의 사상으로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기초를 닦은 18세기 사상가 장 자크 루소. 그는 불평등의 근원이 무엇이며 그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 성찰한《인간 불평등 기원론》, 기능적 인간이 아닌 자연적 인간을 형성하는 교육을 주창한《에밀》, ‘인민 주권론’과 ‘법의 지배’라는 원리를 골자로 공화국의 모델을 제시한《사회계약론》등을 남겨 근대 최고의 독창적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루소는 낭만적인 서간체 연애소설《신엘로이즈》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살아생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절대왕정과 전통적인 종교관에 도전하는 급진적인 사상을 펼친 탓에 비난과 박해를 받으며 고초를 겪기도 했다.
당대 학자들과의 불화와 세간의 갖은 오해에 억울한 마음을 품고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자 끊임없이 시도했던 루소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회상록 형식으로 집필한《고백》, 여전히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심판대에 세워 가상의 대담집 형태로 쓴《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 ― 대화》, 다소 평온해진 마음으로 자신을 담담히 성찰하며 쓴 일기 형태의 미완성 유고작《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이렇게 세 편의 자전적 작품을 펴냈다.《고백》은 그중 첫 번째 작품으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전체 2부 12권으로 구성되었으며(1, 2부를 각각《고백 1》,《고백 2》로 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계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난 1712년부터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제안을 받아들여 영국 우턴으로 망명을 떠나기 전인 1765년까지 일어난 일들을 다루었다. 루소가 스스로 자기 삶의 주요 사건들을 기억에 의존하여, 혹은 서간 자료를 제시해가며 기록한《고백》은 그의 성격과 가치관을 형성시킨 배경과 경험, 인간관계, 주요 저작의 집필 동기와 출간 과정, 그 저작들이 당대에 불러일으킨 반향 등을 상세히 전하고 있어 루소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 역할을 한다. 젊은 시절에 저지른 부끄러운 잘못과 독특한 성적 취향, 여성 편력은 물론, 자기 아이 다섯을 모두 고아원에 맡긴 일, 백과전서파의 디드로를 위시한 친구들과 절연하게 된 일까지 낱낱이 고백한 이 작품을 통해 루소는 세간의 오해를 풀고 자신의 진정성을 인정받고자 했다.
《고백》은 그간 ‘고백록’ 혹은 ‘참회록’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으나 원제 ‘Les confessions’의 의미를 그대로 살려 ‘고백’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책세상에서는 루소 탄생 300주년을 맞이한 2012년부터 루소의 저작들을 ‘자서전, 소설, 정치·사회, 교육·철학, 언어·예술 외’의 다섯 영역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11종 13권)《고백》은 그 다섯 번째 작품으로, 자서전 성격의 저작은 이로써 완간된 셈이다.《고백》,《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 ― 대화》,《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으로 이어지는 루소 말년의 자서전적 저작들은, 삶의 궤적과 어두운 내면까지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자아 형성의 경험을 추적하고 자아를 탐구한 정신분석의 효시이자, 18세기 말에 등장한 ‘개인’의 이념에 문학적·사상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과오와 악덕, 모순까지 낱낱이 까발린 치열한 자기 탐구의 기록
《에밀》출간 이후 박해를 피해 은둔 생활을 하던 루소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에 관심을 보여온 출판인 마르크 미셸 레의 권유를 받은데다 마침 자기 해명에 대한 욕구도 강했기에 단단히 마음을 먹고 1764년 12월《고백》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나는 일찍이 전례가 없고 어떤 모방자도 결코 실행하지 못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나는 나를 닮은 사람들에게 한 인간을 온전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그 인간은 바로 나일 것이다. 나는 혼자이다. 나는 내 마음을 느끼고 사람들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알던 사람들 누구와도 같지 않다. 외람되지만 나는 살아 있는 어느 누구와도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더 낫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이다. 자연은 잘했건 못했건 나를 만든 거푸집을 산산조각내버렸는데, 그 일에 대해서는 내 글을 읽고 난 후에야 판단할 수 있다.”(《고백》 1부, 17쪽)

이처럼 루소는《고백》 서두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솔직하게 내보이겠노라고 고하는 한편, 스스로 독보적인 존재임을 천명한다. 이 책 전체에 걸쳐 자기 모습을 “비열하고 비천했을 때는 비열하고 비천하게, 선량하고 관대하고 고귀했을 때는 선량하고 관대하고 고귀하게” 거짓 없이 드러냈다는 점을 줄곧 강조하는 그는 선과 악, 미덕과 악덕, 이성과 감성 등 상반된 요소들이 공존하여 모순적이고 다면적인 자신의 맨얼굴을 보여준다. 그리고 “진실해야 할 사람은 나이고 공정해야 할 사람은 독자”라며 독자에게 그 진정성을 믿어주고 판단해줄 것을 당부한다. 독자를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거는 방식을 사용하여 이 책을 서술한 루소는 명백한 잘못을 고백하면서도 자신이 처한 상황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독자들의 공감과 이해를 구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루소의 주관이 강하게 개입되어 모순되는 점이 없지 않으나 ‘나 자신’이라는 주제를 파고들어 과거의 행적을 돌아보고 주요 굴곡마다 어떤 내면 변화를 겪었는지 치열하게 성찰하고 탐구했다는 점에서《고백》은 근대적 자서전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치부까지도 드러내는 대담함과 솔직함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고백록》과 비견되는 루소의《고백》은 자서전의 대표작으로서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전자가 방황하던 젊은 시절에 저지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에게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이 주가 된다는 점에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면, 후자는 자기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데 보다 집중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또한 어린 시절의 경험이 인격과 심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강조한다는 점, 때로는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무의식이 작용하는 심리의 변화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루소의《고백》은 프로이트보다 앞서서 정신분석을 시도한 실례로 평가받고 있다.

《고백》1부―어린 시절의 잘못에 대한 고백, 청년 시절의 방랑과 모험
《고백》 1부는 어머니의 죽음을 대가로 치른 불행한 출생과 파란만장한 성장 과정, 어린 시절의 잘못에 대한 고백, 방랑과 모험, 독서와 음악에 대한 경도, 루소의 후원자이자 연인 역할을 한 ‘엄마’ 바랑 부인과의 만남과 헤어짐 등을 담은 28년간의 기록이다. 루소는 어쩌면 시시콜콜하다고 볼 수 있는 일까지 일일이 기록했는데, 이 모든 일들이 종국에는 자신을 형성시켰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 없이 모성애가 결핍된 상태에서 아버지와도 헤어져 살게 된 루소는 여러 곳을 전전하며 직업 교육을 받는다. 루소는 이 시기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하고 억압적인 분위기가 자신을 태만과 거짓말, 좀도둑질이라는 악덕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밝힌다. 얽매이기 싫어하고 자유를 갈구하는 루소는 조각가 뒤코묑의 공방에서 도제로 일하다가 결국 도망쳐 나와 방랑의 길로 접어들면서 인생의 일대 전환점을 맞이한다.
1부에서 주목할 것은 어린 시절 저지른 잘못에 대한 고백과 이에 대한 루소의 죄의식 토로 혹은 항변이다. 대표적인 예로 베르첼리스 백작부인의 집에서 일하던 시절에 리본을 훔치고는 하녀 마리옹에게 누명을 씌운 일, 동행하던 음악가 르 메트르가 리옹에서 간질 발작을 일으키자 그를 버려두고 안시로 돌아온 일을 들 수 있는데, 미성숙했을 때 저지른 죄이긴 하지만 평생 죄책감을 느끼며 두고두고 괴로워하는 루소에게서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마리옹에게 누명을 씌운 일은 루소가 그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만큼 엄청난 마음의 부담이 되었는데, 그 부담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바람이《고백》 집필에 큰 역할을 했다고 밝힐 정도이다. 그 전에 랑베르시에 목사의 집에 기숙 학생으로 기거할 당시 빗살을 부러뜨렸다는 의심을 받은 대목에서는 결백함에도 죄를 추궁당한 억울함과 분노를 격렬히 토로했던 루소이기에 역으로 남에게 누명을 씌운 일은 그의 이중성과 모순을 드러낸다. 애당초 마리옹에게 호감이 있었고 그녀에게 리본을 줄 의도가 있었기에,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심하게 추궁하는 바람에 압박을 느껴서 누명을 씌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기묘한 자기 합리화의 심리 기제도 발견된다.
1부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독특한 성적 취향 형성에 대한 고백이다. 랑베르시에 목사 집에서 지냈을 당시 랑베르시에 양에게서 엉덩이를 맞는 체벌을 당했을 때 혼재된 관능을 발견하고 그 때문에 체벌을 오히려 욕망하게 되었다는 부분에서 일찍이 유소년 시절에 피가학적 성적 쾌감을 발견했음을 알 수 있다. 청년기에는 외진 길목에서 여자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자신의 엉덩이를 노출하고 쾌락을 느끼곤 했다는, 다소 수치스러운 경험을 고백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다 성숙해진 이후에는 성적 욕망을 직접적으로 분출하기보다 상상 속에서 충족시키는 편을 택했다고 하면서 비교적 정숙한 품행을 유지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한편, 음악 개인 교사, 측지소 등 여러 일자리를 전전한 끝에 정착하여 바랑 부인과 레 샤르메트의 시골집에서 머물던 시기를 그린 6권에서 루소는 모처럼 안식을 찾고 짧지만 평생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할 행복을 누렸다고 회상한다. 자연과 전원생활을 애호하는 그의 취향은 이때 확고해져서 말년까지 이어진 셈이다. 이 시기에 루소는 폭넓은 독서와 자연 속의 사색을 통해 지적 소양을 쌓음으로써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도 다방면에 걸쳐 독창적인 사유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백》2부―아이 유기 및 운둔과 박해에 대한 입장 표명
2부는 베네치아 주재 프랑스 대사관의 서기로 일하던 시절 이야기, 평생의 반려자 테레즈와의 만남, 오페라 작곡, 악보 필사,《음악 사전》 집필 등의 음악 활동, 디드로, 볼테르, 달랑베르 등 당대 철학자들과의 교류, 본격적인 저술 활동 입문과 사상의 발전 과정, 루소 자신과《에밀》에 가해진 박해 및 도피 생활, 아이들을 고아원에 버린 일에 대한 해명 등으로 구성된 24년간의 기록이다. 적들이 암암리에 중상모략을 꾸미고 있다는 불안과 망상으로 점철된 2부는 슬프거나 괴로운 일이 없진 않았지만 그리운 추억으로 남은 시절을 그린 1부에 비해 어두운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2부에서 루소는 거의 전권에 걸쳐 테레즈와의 사이에서 낳은 다섯 아이를 모두 고아원에 맡긴 일에 대한 죄책감을 고백한다. 교육을 논한《에밀》의 저자이면서 정작 자기 아이들을 교육시키기는커녕 양육의 책임을 저버렸다는 사실은 루소를 공격하는 이들이 단골로 언급하는 최대 약점이다. 이에 대해 루소는 당시 상황상 어쩔 수 없었고 아이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고 항변한다. 즉, 직접 기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 공교육에 맡기는 것이 시민이자 아버지로서의 도리에 맞고, 아이를 고아원 혹은 공교육에 맡기게 되면 그들을 불운한 아버지의 운명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후원자들에게 아이를 맡기게 되면 아이들이 자라서 부모를 증오할 수도 있기 때문에 차라리 부모를 모르고 자라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에 한시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고 양심의 가책을 토로하는 루소이지만, 극소수의 지인에게만 털어놓은 이 비밀이 새어나간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의 잘못도 크지만 힘들게 고백한 비밀을 폭로하는 행위는 더욱 비열하다며 배신감에 치를 떠는 양면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2부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세간의 오해와 박해에 대한 루소의 입장 표명이다. 후원자 데피네 부인이 마련해준 ‘레르미타주’에 기거하면서 시작한 은둔 생활에 대한 의견 충돌로 디드로, 볼테르, 달랑베르 등 당대의 대표적 지식인들과의 우정이 깨지고 결국 그 거처를 떠나야 했던 시기를 그린 부분에서 루소는 상대방의 오해에서 비롯한 불화와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스스로를 변호한다. 이런 와중에 루소는 한동안 정열을 쏟게 만들어《신엘로이즈》집필에 큰 영감을 준 두드토 백작부인과 결별하는 한편 데피네 부인과 사이가 틀어져 레르미타주를 떠나게 되는 등 불행의 시기를 보낸다. 그 후《사회계약론》과《에밀》을 출간하는데, 기존의 권위를 위협하는 급진적인 사상을 담았다는 이유로 판매를 금지하는데다 박해를 받고 도피 생활로 내몰리게 된다.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모티에와 생피에르 섬 등지에서 은둔하게 된 루소는 이 시기에 식물 채집에 흥미를 붙이면서 식물학에 애정을 기울이기도 한다.《고백》을 쓰게 된 것이 바로《에밀》로 인한 박해가 시작된 지 3년째가 되는 1764년의 일이다. 집필에 착수한 이후에 거처를 여러 번 옮기는 혼란이 있었고 중상모략을 일으킨다는 우려를 느끼기도 해서 여러 번 집필을 중단했다가 마침내 1770년 12월에《고백》을 완성한다. 당시의 유명인사들을 워낙 많이 등장시켜 그들을 난처하게 만들 소지가 있었기 때문인지《고백》은 사적인 낭독회를 통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졌을 뿐 루소의 죽음 이후 4년이 지난 1782년에야 출간되었다. 자신의 기록을 적들이 없애버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루소 자신도 8권 말미에서 “내가 내 운명과 이 저술의 운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이 책은 나와 관련된 사람들과 내가 죽은 후에야 빛을 볼 것이다. 하지만 나를 짓밟으려는 압제자들이 진실을 두려워하여 갖은 노력으로 기록의 흔적을 지워버리려고 하므로, 나는 가장 엄정한 공정함과 가장 엄격한 정의가 내게 허용하는 모든 것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역설하며 자신이 죽고 나서 작품이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친다.
세간의 오해를 풀고 자신의 진정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했기 때문인지 루소는 이 작품에서 자신은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모든 것을 밝히겠으니 독자들은 이에 대해 정당히 판단해달라고 말한다. 동료들과의 불화와 박해에 괴로워하고 망명 생활을 하며 고초를 겪은 루소의 억울함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하면서도 기억의 오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잘못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며 자기를 합리화하고 적들이 자신을 모함한다면서 피해망상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등 루소의 태도에는 여러모로 모순되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역자가 해설〈고백을 통한 독자와의 소통의 욕구〉에서 주장하듯이 루소는 결국 “스스로를 유폐시키거나 타인들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이해받는 것”을 원했기에《고백》을 집필했다고 볼 수 있다.


저자 프로필


저자 소개

18세기 프랑스의 정치사상가이자 철학자, 소설가, 교육이론가, 음악가, 극작가인 루소는 1712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9일 만에 어머니를 잃고 열 살에 아버지와 헤어진 그는 열여섯 살 때부터 제네바를 떠나 유럽을 떠도는 생활을 했다. 그 방랑의 길에서 만난 바랑 부인은 10여 년 동안 연인이자 후원자로서 루소의 지적 성장을 도왔고, 이후 그의 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정식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루소는 여러 분야에서 사회 활동을 하다 파리에 정착해 《백과전서》 집필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저술 활동을 시작한다. 1750년 계몽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학문예술론》으로 명성을 얻은 후 문명과 사회 및 사유재산 제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 근대 교육론의 기원으로 평가받는 《에밀》, ‘인민 주권’을 창안해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지주가 되는 《사회계약론》 등을 발표하면서 전통과 기득권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과 세계의 모형을 제시한다. 1761년에는 낭만적인 연애소설 《신엘로이즈》를 출간해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독자들과 교감한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 선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연으로의 회귀를 설파한 루소는 이성과 지성을 중시한 계몽 철학자들과 대립하게 됨으로써 혹독한 비난과 핍박을 받는다. 또 절대왕정과 기독교를 위협하는 급진적 사상으로 인해 저작들이 판매 금지되고 프랑스에서 추방당했으며, 사생활과 관련해서는 자식들을 고아원에 맡긴 것에 대한 비난이 그를 따라다녔다. 망명 생활이 이어지며 불안과 박해 망상에 시달리던 루소는 말년에 식물과 꽃의 세계에서 안식을 찾고 《고백》,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대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 자신을 성찰하는 집필 활동을 계속하다 1778년 생을 마감했다.
18세기 최고의 독창적 천재로 불리는 루소는 이성과 진보의 논리에 반기를 든 문명 비판자였으며, 자유와 평등을 옹호한 혁명적 사상가였다. 또한 합리와 낙관이 지배하던 시대의 공기를 거슬러 자연을 노래하고 감성의 순수한 꿈을 추구했으며, 당대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수성을 제시한 19세기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단일한 체계나 이론으로 환원시키기에는 너무나 풍부하고 폭넓은 루소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목차

제7권 1741~1747
제8권 1748~1755
제9권 1756~1757
제10권 1758~1959
제11권 1760~1762
제12권 1762~1765

해설 | 고백을 통한 독자와의 소통의 욕구 | 박아르마


장 자크 루소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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