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은 호젓한 흙길이다!
산길은 아름답고 풍요롭다!
산길은 천의무봉이다!
속도 위주의 팍팍한 삶에 대한 반작용일까? 길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풍기는 자유로움, 평온함, 서정성 때문일까. 그린 워킹, 즉 걷기 여행이 인기다. 걷기 여행, 등산, 트레킹 등 걷기를 기본으로 하는 여가 생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올레길, 둘레길, 옛길 등 전국적으로 걷기 좋은 길은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고 적지 않는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으며 전국 어디를 가나 ○○길 홍보가 한창이다.
흙길을 품은 산길의 호젓함
쌀과 고추장 달랑 들고 무작정 감행했던 지리산 종주가 인연이 되어 우리 산천 구석구석을 ‘걸어 다닌’ 지 어느덧 20년이라는 여행작가 진우석. 그가 배낭 하나 메고 훌쩍 산으로 향했던 기억, 산길을 걷는 동안 행복했던 느낌, 산에서 돌아와 황홀했던 기분을 담아 『사계절 주말마다 떠다는 걷기 좋은 산길 55』를 펴냈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우리나라 구석구석 걷기 좋은 산길 중에서도 계절의 풍취를 오롯이 만끽할 수 있는 산길, 자연과 하나 될 수 있는 산길에 집중했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순과 살랑대는 들꽃 가득한 봄 산길, 울창한 숲과 옥빛을 담은 계곡의 비경에 취하는 여름 산길, 푸른 하늘 아래 황홀한 단풍과 낙엽 위를 사각사각 밟는 호젓한 가을 산길, 나뭇가지마다 환상적인 상고대(얼음꽃)의 매력에 압도되는 겨울 산길 등 계절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산길들을 정감있게 소개하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산으로 올라갈수록 사람들의 눈빛도 점점 순수해져서 마치 순수의 온도계를 재는 듯 했다”고. 저자 진우석이 말하는 산길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산은 호젓한 흙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현대인들은 흙과 함께하기 어렵다. 문명화된 삶은 곧 포장길 위의 삶이기 때문이다. 흙 밟기가 쉽지 않다보니 흙먼지 날리는 황톳길은 아스라한 추억이 되어 가고 있다. 물론 산 역시 편리함을 위해 나무·철제 계단 등 인공구조물이 늘어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흙길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곳은 산이다.
“몇 년 사이 걷기 열풍으로 전국적으로 걷기 코스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지만, 흙길을 품은 구간은 생각처럼 많지 않다. 아스팔트나 시멘트 길은 평탄하더라도 발목과 관절에 쉽게 피로를 준다. 반면 흙길은 오르내리는 굴곡이 있지만 피로는 덜한 편이다. 이상하게 걷기 코스가 산길보다 더 힘들다는 사람들의 말은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산길은 아름답고 풍요롭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니면서 만들어졌기에 자연스러운 선이 살아 있다. 길섶은 자연이 만든 거대한 수목원이며 식물원이다. 어느 수목원이 이처럼 풍부하고 다양한 생명을 품을 수 있겠는가. 산에 다니면서 산길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걷기 코스가 인간의 작품이라면 산길은 신의 작품이다. 걷기 코스는 때론 억지스럽게 길을 이어 붙인 흔적이 역력하지만, 산길은 그야말로 바느질 흔적이 없는 천의무봉이다.”
흙길을 품은, 신의 작품 같은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걷는 여행으로만 끝날 수 없다. 저자 역시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며 내가 산이 되는 순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산길을 걷는 매력은 호젓한 쉼이요 자유로운 즐김이며 자연이 안겨준 여유로움인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최우선한 계절별 산길 가이드
국토의 64%가 산림인 우리나라는 각 산마다 특색 있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계절별 기온차가 심해 봄여름가을겨울 제각각 색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산길 역시 계절별로 고려한다면 한층 더 감동적일 수 있다. 역사와 이야기가 제아무리 풍부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곳의 자연이 가장 아름다울 때 산의 진면목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설악산은 단풍이 절정일 때 만나는 것이 진짜인 것이다.
저자 진우석은 이런 우리나라 산의 특징을 고려해 계절에 맞는 코스를 엄선해서 소개하고 있다. 해빙기에는 야생화 산행, 봄철은 꽃 산행, 여름철에는 계곡 산행, 가을철에는 능선 산행, 겨울철에는 눈꽃 산행 위주의 산행 장소를 추천한다.
저자는 또한 산에는 정상 코스 말고도 좋은 길이 얼마든지 있음을 이야기한다. 산행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상을 올라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상을 고집하느라, 보석 같은 길을 주마간산 격으로 흘려버렸을지도 모르기에 정상보다는 걷기 좋고 풍광 빼어난 길을 소개한다.
이밖에도 책은 풍부한 사진을 바탕으로 각각의 산길에 얽힌 이력, 풍경과 감흥,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인해 다정다감한 산길 친구가 되어준다.
프랑스의 유명한 산악인 리오넬 테레이(1921∼1965)는 “산을 오르는 것은 자기 과시가 아니며,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이며, 자연에 대한 가장 순수하고, 가혹하며 신중한 도전이다. 또한 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독창적인 인간 활동이다.”라고 했다.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귀밑머리 식혀주는 바람을 벗하며 능선에 올라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면 생활 속 답답한 체증이 펑 뚫리듯 시원해지고 삶의 에너지가 상쾌하게 솟구칠 것이다. 오색찬연한 빛깔로 물들어 가는 산은 빼어난 풍경과 멋스러운 정취를 한껏 선사해줄 것이다. 산길을 걷고 오르며 만나는 아름다운 자연과 경치에 몸과 마음을 긍정의 에너지로 고양시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