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저는... 내가 또 있어요.”
“저는 페이시아인데요..... 페이시아가 아니에요.”
한때 국내 최대 인터넷 소설 사이트인 모 문학 사이트에서 이달의 소설에 선정 되었던 내 자작 중편소설 <안단테 스피아나토> 중 스승과의 대화 장면이다.
피아노에 열중했던 당시에, 이와 연관된 글을 올려 당선된 기쁨은 내가 어릴 적 쇼팽의 연습곡 <겨울바람>을 칠 수 있게 되었을 당시만큼이나 기뻤던 한 순간이었다.
지금에 와서 이 대목이 생각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 난 결코 병원 문턱을 한 발자국도 들어서 본 적이 없다. 그곳은 나의 세계와는 상관없는 악마의 주사 바늘과 씀바귀보다도 더 쓴 이상야릇한 약들이 기다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금지구역의 드라마 ‘V’의 세계였다. 그때 난 앞으로 병원 같은 곳은 절대 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길 가다가도 그런 곳은 쳐다도 안 볼 거라 몇 번을 다짐했지만 어느 새 난 병원 울타리를 한 발자국도 떠날 수 없는 의사라는 직업을 얻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건 무슨 다마 방 쓰리쿠션 삑사리 난 상황도 아닌 시츄에이션이란 말인지 가끔은 입꼬리 한쪽이 올라가게 만든다.
<안단테 스피아나토>는 물론, 해리장애 피아니스트 환자에 대한 이야기로, 의사가 된 현재의 나를 어쩌면 이렇게도 똑같이 미리 스케치해 낼 수 있었는지 돗자리만 펴면 나도 이 방면에서 한 가닥 명성을 자자하게 날리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무슨 뜻인지 모르시는 분은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그랜드 폴로네이즈>라는 피아노곡을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게 진작 나에게만 해당하는 상황일까. 짐작하겠지만, 다행스럽게도 한국 땅에서 국가로부터 의사면허장을 하사받은 후로 귀퉁이 작은 2층 하꾸짝 방에 들어앉아 벽면에다 대고 참선을 시작한 개원의들로서는 다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난 비열하게도 나만 당하는 게 아니라서 억울하지만은 않다.
“그래, 맞아. 모든 개원의들은 다 똑같은데 뭘...”
사실 이게 다다. 위로 삼을 말 말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지금 현실에서는 적어도 이중인격, 아니 이중상황적 직업군임이 확실하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명품 브랜드 골프채 휙휙 휘두르며 ‘사장님, 나이스 샷’이 의사 신분을 대표하고 있는 캐디의 호칭인 전형적인 귀족 의사 상과, 거적때기 둘러싸고 앉아있는 허중이 풍 캐릭터의 그 그지 상(본문 참조)이 헷갈리게 공존하는 그런 짬뽕국물 진득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실제의 키메라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이 그지 같은 상황이 곧 끝나고 전형적인 의료사회주의 유럽국가의 의료 미개국으로 전락하든지 아니면, 길 가던 꼬부랑 할머니가 지팡이 튕겨보니 이 길이 아님을 곧바로 깨닫고 올바른 길로 빨리 들어서서 의료 선진국으로 가든지 아무튼, 어차피 조만간 끝장이 날 게 뻔한 이 상황을 지금 결론만이라도 확실히 알려준다면 그것이 나의 의사 생활의 행복한 인생의 한 부분이었음을 후회 없는 한 판 승부로 빨리 여기고 싶다. 이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결론은 누룽지건 설은 밥이건 탄 밥이건 명품 밥이건, 조만간 밥통은 열린다는 것이다. 나는 안다. 하꾸짝 벽면 스님들도 할 말이 많다는 것을. 하지만 누구 한 명이라도 주름살 블록 쌓기 게임을 즐기면서 거울에 대고서라도 제대로 하소연 하거나 높으신 양반께 건의라도 해 본 적이 있나...? 이게 키포인트란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처참하게 무너진 삼풍백화점 뒤치다꺼리 하는 시점에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더욱 심한 얘기가 등장할 것 같은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아 이만 글을 마칠 생각이다. 이 책을 출판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랑하는 윤희와 다롱이, 그리고 뱃속에 입체 초음파로만 흐릿하게 확인한 예쁜 아기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빼 놓을수 없기에 여기서 언급하오니 여러분의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출판을 주선해 주시고 도와주신 <강서거사>님과 한방편의 자문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유용상 의료일원화특별위원회 위원장님, 조정훈 선생님, 전국의사총연합 대표 노환규 선생님, 총무 박광재 선생님, 제 만화에 법률적 자문을 해 주신 임병석 변호사님, 그 외 수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끝으로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Parapithecus surpassed Homosapiens in tricks, but the latter had no rival in justice, and the former became extinct after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