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과 폐쇄 · 소통과 단절 · 포용과 혐오
상반된 가치가 빚어낸
거대한 중국,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폭군과 영웅의 이분법을 넘어선 진시황의 맨얼굴부터
이민족 혐오로 몰락한 수도 장안
관료와 환관의 힘겨루기 속에서 불타 버린 정화의 대원정 기록
중국이 일당 지배 국가가 된 속사정까지
제국 · 교역 · 문화 세 관점과
스물다섯 질문으로 꿰뚫어 보는 중국 역사
◎ 도서 소개
꿰뚫는 질문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새로운 시각
분야 최고 전문가가 엄선한 핵심 질문으로 미래를 읽다
〈꿰뚫는 질문〉 시리즈
AI 시대, 질문하고 연결하는 공부
생성형 AI를 통해 클릭 몇 번이면 손쉽게 답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AI가 제공하는 정보는 인간이 연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점점 더 정확해지고 논리정연해지고 있으며, ChatGPT 사용자는 전 세계적으로 4억 명을 돌파하는 등(2025년 2월, OpenAI 최고운영책임자 브래드 라이트캡 발표) AI 활용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정보 산출의 속도 면에서는 인간이 AI를 따라잡기란 불가능하다.
AI가 불러온 정보 대홍수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꿰뚫는 질문〉시리즈는 이 과제에 부응하는 새로운 형태의 인문서를 다음 두 방향으로 기획했다.
첫째, ‘질문의 힘’을 기르는 공부를 하자. 지식을 통찰하는 능력은 ‘답변’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길러진다. “문제를 잘 정의하면 답은 이미 찾은 것이다.”(아인슈타인)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은 곧 잘 설계된 질문에서 나온다. AI 시대 핵심 역량 중 하나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둘째,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고, ‘스스로 응답’할 수 있는 공부를 하자.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E. H. 카)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시각은, 복합적·창의적 사고를 통해 가능하다. AGI 시대를 맞아 인간의 AI 의존성이 가속화되는 지금, 연결의 사고야말로 인간 고유의 공부법이다.
〈꿰뚫는 질문〉 시리즈는 분야 최고 전문가가 엄선한 핵심 질문을 통해,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하며, 현재를 정확히 바라보고 미래를 읽는 통찰을 제공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시리즈 첫 번째 책으로 『중국사를 꿰뚫는 질문 25』를 선보인다.
꿰뚫는 질문 001 『중국사를 꿰뚫는 질문 25』
통념을 뒤흔드는 관점, 역사를 새롭게 보다
역사에 관한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역사를 잘 아는 것일까? 역사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은 역사라는 오랜 학문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침묵하고 있는 수많은 사료에 말을 거는 역사가의 중요한 발화점이기 때문이다. 질문하지 않는데 답을 주는 사료는 없다. 같은 사료일지라도, 질문에 따라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저자인 중국사 학자 일곱 명은 ‘중국사를 꿰뚫는 질문’이라는 명제 앞에 오랫동안 숙고했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국사 최신 연구 성과를 집약하고, 한국인에게 필요한 중국사 지식이 무엇인지 논의해 총 25개 질문을 엄선했다.
『중국사를 꿰뚫는 질문 25』의 모든 장(25장)과 절(144절)은 각 주제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으로 제시되어, 역사가의 관점을 통한 ‘질문’의 면면을 살피고 그 관점을 체화할 수 있게 구성했다. 질문은 다음 세 관점에서 엄선했다. 1) 현재 중국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질문, 2) 기존 관점을 뒤집고 바로잡는 질문, 3) 주목받지 못한 핵심 개념을 해석하는 질문. 주제는 크게 다음 세 키워드로 정리했다. 1) 제국, 2) 교역, 3) 문화. 이 책은 세 관점의 질문과 세 주제를 직조해 중국사 연구의 최전선에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중국의 역동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폭넓게 조망한다.
◎ 책 속에서
영정이 진나라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린 지 26년이 되는 기원전 221년, 진나라는 여섯 개 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중국을 하나로 통일한다. 진왕 영정이 즉위 후 미성년 시절 행적은 대부분 후견인 역할을 했던 배후의 실력자 여불위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지만, 서른 살 이후 진행된 6국에 대한 전승과 외교술은 영정이라는 인물 개인의 지도력과 노력에서 비롯된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원전 221년 ‘천하’를 다스리는 유일한 군주가 된 영정은 그가 물려받은 역사·문화적 유산이라는 토대 위에 킹메이커 여불위가 마련해 준 특별한 기회를 잡아 능력을 십분 발휘하였고, 그 결과 수천 년 중국 역사 속에서 ‘아웃라이어’로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 26~27쪽, 1장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 희대의 폭군인가 중국 통일의 영웅인가?
주나라 이후로 남성 중심의 종법제가 사회제도의 근간을 이루었음에도 무측천은 어떻게 황제로 즉위할 수 있었을까? 중국사에서 여성 권력자가 자주 출현했음에도 오직 무측천만이 황위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황제 무측천은 재위 기간이 15년이지만, 황후에 책봉되어 정치에 직접적으로 간여했던 기간까지 합하면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장기간에 걸친 여성 황제 무측천의 천하 통치는 남성 황제의 그것과 실제 달랐을까? 겉으로 드러난 현상과 내부의 본질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기존의 질서를 바꾸고 새로운 상황을 조성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고 그에 따라 생길 수 있는 한계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당연하게 여겼던 관습적 인식이 혹여 지나친 무관심에서 생긴 것은 아니었을까?
― 72쪽, 4장 유일한 여성 황제, 무측천을 어떻게 볼 것인가?
비록 문인 관리들이 중앙과 지방의 주요 관직을 장악하고 ‘문’의 가치를 더욱 강조하였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송 조정의 가장 긴급한 관심사는 언제나 국방 분야 안건들이었다. 또한 최고 결정권자인 황제도 비록 어릴 때부터 문인으로서의 교육을 받았지만 정책 결정상 국가의 존망과 직결되는 ‘무’에 더욱 큰 비중을 두었다. 오히려 ‘무’의 가치가 지나치게 중시되던 조정의 분위기 속에서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한 문인 관료들은 조정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에 ‘문’의 가치를 존숭하는 운동을 강하게 추진하였다.
― 178쪽, 9장 문치주의는 송나라를 문약하게 만들었는가?
오늘날 여러 학자들이 그 시대 이루어진 해상교통과 교역의 번영을 팍스 몽골리카(Pax-Mongolica) 즉 ‘몽골의 평화’라고 일컫는다. 초원 유목민 출신으로 바다를 접하지 못한 몽골이 인류 역사상 가장 눈부시게 해상무역을 진흥한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그러한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원대 해상무역의 번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상을 다방면으로 조망해야 한다. 이를 통해 원조의 유목적 성격을 밝히고 역사상이 후대 세계사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 266쪽, 14장 유목민족 몽골은 왜 해상무역을 진흥했을까?
역사에서 ‘만약’을 상정하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만약’ 정화 관련 기록이 소각되지 않았더라면 이후 해양력을 둘러싼 세계사의 흐름이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쉽게 단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정화 관련 해양 기록은 소각되었고 명은 더 이상 해양 세계로의 적극적인 진출을 도모하지 않았다. 명이라는 거대한 책봉국이자 종주국의 우산 밑에서 정통성을 인정받았던 조선 역시 명의 책봉-조공 질서 및 해양 관념에서 벗어나는 ‘변칙’을 감행하지 못했다. 고려시대까지 이어 온 해양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와 동력이 사라진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명의 정화 관련 기록 소각은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동했던 것이다.
― 303쪽, 15장 명나라는 왜 정화의 원정 기록을 태워 없앴을까?
위기를 통해 급감했던 인구, 상대적으로 원활한 이주, 전쟁국가에서 복지국가로의 전환, 이전 위기를 교훈 삼아 민생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지도자들의 의지 등이 오히려 더 열악한 기후 환경에서 힘을 발휘했다. 이상기후 현상에도 인간의 대처 능력은 과거에 대한 학습과 평화 시에는 잘 발휘되지 않는 초사회적 협력을 통해 향상되었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 17세기보다 한층 강화된 오늘날이지만, 기민한 리더십과 초월적 공동체성으로 무장한다면 명이 아니라 청의 길로 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 365쪽, 18장 17세기 소빙기는 명과 청의 교체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이는 단순히 과거의 사례로 머무르지 않는다. 매카트니의 접근이 옳고 티칭의 방식이 틀리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이분법적 사고는 우리를 위험에 빠뜨린다. 이 복잡한 문제는 최근 가속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존 국제규범과 질서를 유지하며 단기적 실익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질서 형성에 동참할 것인가.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단순한 힘의 대결을 넘어, 국제관계의 규범과 제도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과거 매카트니와 티칭이 마주했던 딜레마와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창을 제공한다.
― 403쪽, 20장 영국 사절 매카트니는 건륭제에게 정말 두 무릎을 꿇었을까?
이처럼 하나의 정당이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당이 국가기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국가기구보다 우위에 있고 국가기구 외에도 광범위한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은 일당 지배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의 정당과 국가가 일체화되어 있는 중국의 체제를 당-국가 체제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당-국가 체제가 시작된 것이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1949년부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중국공산당과 함께 20세기 중국 정치사의 또 다른 주역이었던 중국국민당 역시 유사한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했으며 중국공산당도 1949년 이전부터 이러한 당-국가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따라서 당-국가 체제는 20세기 이후의 중국 정치사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465~467쪽, 24장 중국은 왜 일당 지배 국가가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