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에는 아무런 감정적 동요도 여성작가에서 기대하는 로맨스도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 책이 외설로 치부되는 것입니다.
그런 그런 멸시와 모욕은 나를 단련시켜줄 뿐입니다.”
_아니 에르노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아니 에르노의 문장을 좋아한다.
그녀의 문장들은 부싯돌 같은 날카로움으로
살아 있는 살점을 도려내고 살갗을 벗겨낸다.”
_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현실은 단 한 줄도 쓰지 않겠다는 작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불륜 체험을 그대로 소설화해 스캔들을 일으킨 여자, 광물성의 글쓰기로 붉디붉은 열정을 누구보다도 뜨겁게 표현하는 우아한 외설의 소설가. 『단순한 열정』 『탐닉』 『집착』 『카사노바 호텔』 등의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아니 에르노는 이렇게 온몸으로 글을 씀으로써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서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회적 영역과 개인적 영역을 허물어버린 독특한 글쓰기 덕분에 에르노라는 작가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로 취급되어왔다. 교사라는 프티부르주아적 직업과 여성이라는 성적 굴레는 ‘작가’로서의 에르노를 끊임없이 검열하고 심판했지만, 그녀는 일관되고 엄격하리만큼 철저한 글쓰기를 위한 펜을 놓지 않았다.
『칼 같은 글쓰기』는 아니 에르노의 굴곡 많은 문학적 도정을 되짚어본 대담집이다. 대담을 제안한 이는 소설가이자 문학 교수인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에르노와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자전적 글쓰기에 대하여 깊은 탐구를 하는 소설가인 동시에 평론가적 관점에서 그녀의 글쓰기를 지켜보고 있는 자네는 대담 내내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내보이지 않은 채, 에르노의 궤적을 추적하기 위해 단계별로 질문을 던지며 용의주도하게 대화를 이끌어간다. 그렇기에 이 대담집은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의 손에 이끌려 나온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모든 것이자 그녀 자신”인 글쓰기를 A부터 Z까지 이야기하는 내밀한 독백이기도 하다.
허구와 자전의 경계에 서서
에르노의 소설에 대한 논쟁의 핵심은 내용보다는 그 형식에 있다. 그녀의 글이 소설인가 아닌가, 더 나아가 문학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은 ‘무릇 문학이란 어떠한 것이어야 한다’는 보수주의적 관점과 충돌을 일으켜 발생한다. 실제로 그녀가 펴낸 두 권의 일기(『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탐닉』)는 ‘소설’이라고 분류하기에 망설여지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런 논쟁은 에르노에게 무의미하다. 그녀에게 소설이란 문학이 위치하고 있는 지점일 뿐, 소설을 씀으로써 ‘문학을 한다’는 생각은 현실을 변형함으로써 가면을 쓸 수 있는 가능성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의 문제이다. “진실을 저버리는 자전적 이야기보다는 진실에 가닿은 소설”이야말로 그녀가 생각하는 진짜 문학이다. 그녀의 자전적 글쓰기가 날것 그대로의 ‘노출증’이라는 시각은 큰 오해다. 그녀는 오히려 치밀한 계산과 엄정한 거리두기를 통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객관화하고 집단적으로 승화시킨다. 그렇기에 많은 독자들이 그녀의 글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반응이야말로 에르노가 작가로서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글쓰기가 주는 기쁨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이 뭔지 아세요? 누군가 내게 ‘당신은 바로 내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또는 ‘이 책은 바로 나예요’라고 말할 때랍니다.” (본문 145쪽)
변절자의 래디컬한 속죄법
1984년 에르노에게 르노도상을 안겨준 『자리』 첫머리에는 장 주네의 다음과 같은 문장이 인용되어 있다―“글을 쓴다는 것은 배반자가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막연한 아름다움으로서의 문학을 동경하던 젊은 여성이 소설 쓰기를 결심한 것은 우연히 서점에서 부르디외가 쓴 『상속자들』을 본 순간이다. 그녀는 그때를, 그 책이 자신에게 글쓰기를 ‘허락’해준 순간으로 기억한다. 카페를 겸한 식료품점의 딸로 태어나 고등교육을 통해 프롤레타리아에서 프티부르주아로의 계급 상승을 실현한 에르노는 출신계급을 변절했다는 죄책감에 평생 시달렸고, 결국 그것이 그녀를 문학의 길로 이끌었다. 그녀가 ‘사치’라고까지 말한 글쓰기는 변절에 대한 속죄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합법적’ 언어 행위들을 운반하는 어휘와 민중이 구사하는 문장구조를 통해 실현되는 난폭한 글쓰기다. 그 전복을 통해 그녀는 피지배자들의 관점을 문학 속으로 난입시키는 것이다. 현실의 전복을 꾀한 초현실주의 운동과 전혀 새로운 형태의 소설을 꿈꾼 누보로망에 경도된 에르노는 자신의 전 존재를 대가로 지불하는 글쓰기로 세상에 대한 지배적 관점을 뒤집고자 한다.
여성, 그리고 억압받던 자로서의 자의식
고급함이라고는 없는 언어로 소설을 쓰는 에르노가 문화계의 보수 인사들의 반발을 샀음은 물론이다. 육체의 언어와 문학에 대한 숙고가 뒤섞이고, 문화적인 소재들과 일상의 소재들이 혼재하는 글쓰기를 폭력적으로 느낀 것이다. 이와 같이 민중계층과 통속문학, 그리고 그녀가 속해 있는 성에 빗대 가해진 비방은 그녀의 말마따나 ‘이중적’이다. 피지배 계층 출신 여성이라는 자의식은 에르노에게 문화계에 팽배해 있는 성적/계급적 억압에 맞설 수 있는 힘과 대담성을 부여해주었다. 실제로 그녀는 급진적 여성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좌파적 정치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에르노에게 문학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는 무엇이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사랑의 행로를 통해 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시선과 그녀 자신의 시선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성 정치적 관점에서 파헤치고, 평생을 프롤레타리아로 산 아버지의 삶을 소재로 민족학적, 사회학적 지형도를 그린다. 그렇게 그녀는 실재적이며 진정한 무엇이 깃든 리얼리티를 복원하고, 그로써 그녀만의 시학(詩學)을 완성하는 것이다.
피와 살의 글쓰기
에르노에게 문학이란 ‘구원’이다. 그녀는 “나는 구원하고자 하는,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 그러나 우선은 구원하고자 하는 욕망이 아닌 책들을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중에서)라고 쓴 바 있다. 그녀는 “문학 때문에 고통 받으므로 문학은 존재한다”고 말하며, 그 실체의 어느 곳에 자신의 글쓰기를 위치시킬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그곳은 “살과 피의 영역”이다. 그녀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실제 사물들의 무게를 싣고 단어들이 단어이길 그치고 감각이 되고 이미지가 되기를” 바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녀의 글쓰기는 ‘파토스의 전적인 거부’를 통해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글쓰기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바깥에 있는 어떤 진실을 탐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녀의 글쓰기가 ‘노출’을 극복하고 “문학과 사회학과 역사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리고 그 진실이라는 것은 위험천만한 무엇이다. “그 진실은 내가 위험을 무릅써서 얻어낼 가치가 있는 것이며, 내가 위험을 무릅쓸 것을 요구하는 진실이지요. (…) 난 오직 그 위험을 대가로 치르고서야 그 진실을 얻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어요……” (본문 150쪽)
『칼 같은 글쓰기』에는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가 스스로 신화화되기를 경계하며 지극히 조심스레 드러낸 진실의 단면이다. 그래서 이 대담의 초점은 에르노의 상상계의 궤적이 아니라, 그녀가 행해온 글쓰기의 윤곽과 그 글쓰기에 흉터처럼 남아 있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더듬어보는 데 있다. 이 책은 아니 에르노를 외설과 스캔들의 작가로 오해하고 있는 이들에겐 훌륭한 해명이, 위험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글쓰기에 열광하는 이들에겐 좀더 깊은 이해로 이끄는 단서가 될 것이다.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이브토에서 성장했다. 처녀명 아니 뒤셴느(Annie Duchesne), 프랑스 작가이자 문학교수이다. 루앙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중등학교 교사, 대학 교원 등의 자리를 거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그녀의 작품들은 사회학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Yvetot에서 보냈고, 노동자에서 소상인이 된 부모를 둔 소박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루앙 대학교를 졸업,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하여, 정식 교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1974년, 자전적인 소설 『빈 장롱Les Armoires vides』으로 등단했고, 1984년, 역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남자의 자리La place』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2008년, 전후부터 오늘날까지의 현대사를 대형 프레스코화로 완성한 『세월들』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 자신의 출생 이전에, 여섯 살의 나이로 사망한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인 『다른 딸L'autre fille』을 선보였고, 같은 해에 12개의 자전 소설과, 사진, 미발표 일기 등을 수록한 선집 『삶을 쓰다Ecrire la vie』를 갈리마르 Quarto 총서에서 선보였다. 생존하는 작가가 이 총서에 편입되기는 그녀가 처음이다. 200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탄생했다.
데뷔 시절부터 아니 에르노는 노르망디의 소읍 이브토의 카페-식료품점이었던 자신의 유년 시절로 구성된 자전적 소재에 몰두하기 위해 모든 픽션을 포기했다.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체험을 혼합한 그녀의 작품들은 부모의 신분 상승(『남자의 자리』, 『부끄러움』), 자신의 결혼(『얼어붙은 여자』), 성과 사랑(『단순한 열정』, 『탐닉』), 주변 환경(『밖으로부터의 일기』, 『바깥세상』), 낙태(『사건』), 어머니의 치매와 죽음(『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한 여자』), 심지어 혹은 자신의 유방암 투병(『사진의 사용』, 마르크 마리 공저)을 소재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해부하였다.
그녀는 “판단, 은유, 소설적 비유가 배제된” 중성적인 글쓰기를 주장하면서 “표현된 사실들의 가치를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 객관적인” 문체를 구사, “역사적 사실이나 문헌과 동일한 가치로 남아 있기를” 소망한다. 에르노에게는 “자아에 내재된 시적이고 문학적인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글쓰기는 “문학적, 사회적 위계를 전복하려는 의도에서 출발, 문학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상들 ― 슈퍼마켓, 지하철 등 ― 에 대해, 이것보다 고상한 대상들 ― 기억의 메커니즘, 시간의 감각 등 ― 을 서술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그 둘을 결합하여” 글을 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생각할 때 썼던 그 단어들을 되찾는 일이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개인의 기억 속에서 집단의 기억을 복원”하려는 사회학적 방법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개인성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인 그녀의 작품은 자전의 새로운 정의를 부여했다.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에 타인들, 법,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아니 에르노는 사회학자의 방법론을 채택, 자신을 집단적 표본과 특성을 체득한 한 체험자의 총합으로 간주한다.
“나는 나를 특수한 존재로서, 절대적으로 특수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나 자신을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나는 나를 사회적, 역사적, 성적 경험과 판단의 총합, 언어의 총합, 또한 세계(과거와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특수한 주관성을 형성하게 된 총합으로 간주한다. 나는 나의 주관성을 보다 일반적이고 집단적인 메커니즘과 현상을 되살리고 그것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다.
” 그녀에 따르면 사회학적 방법은 전통적으로 자전적인 ‘나’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사용하는 나는 비인격적 형태를 띄고 있다. 성별도 애매하고, 종종 나의 말이기보다는 타인의 말일 수도 있는, 전체적으로 다인격적 형태이다. 그것은 나를 픽션화하는 수단이 아닌, 내 체험 속에서 현실의 지표들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로써 그녀의 작품은 자신의 궤적의 “사회적 이종교배”(소상인의 딸에서 학생, 교수, 이어 작가가 된)와 그에 따르는 사회학적 메커니즘을 다루고 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망을 접하고 [르몽드]지에 애도의 헌사문 「부르디외, 회한」을 기고하면서 사회학적 방법론과 자신의 작품 사이의 유대감을 밝혔고, 부르디외의 글이 그녀에게 “자유와, 세계 펼에서의 실천이성과 동의어”였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