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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마음을 가지게 해주세요 상세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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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세이/시시

하얀 마음을 가지게 해주세요

문학동네시인선 254

  • 관심 0
  • 조해주 저자
소장
종이책 정가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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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8,400원
판매가
8,400원
소장
출간 정보
  • 2026.09.30 전자책 출간
  • 2026.09.17 종이책 출간
듣기 기능
TTS(듣기) 지원
파일 정보
  • EPUB
  • 약 2.3만 자
  • 39.1MB
지원 환경
  • 앱
  • 웹
  • PC뷰어
  • PAPER
ISBN
9791141691394
UCI
-
하얀 마음을 가지게 해주세요

작품 정보

“열려 있어
밀면 열려”

부딪치고 밀려나며 서로의 온도를 확인하는 존재들
문을 밀면 시작되는 하얀 마음의 공동체

문학동네시인선 254번째 시집으로 조해주 시인의 『하얀 마음을 가지게 해주세요』를 펴낸다. 전통적인 등단 제도를 밟는 대신 첫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아침달, 2019)로 한국 시단에 도전적인 첫발을 내디딘 시인은 두번째 시집 『가벼운 선물』(민음사, 2022)에서 중력을 거스르는 언어가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를 선연히 펼쳐 보였다. 그후 사 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듯한 무심한 표정의 그가 처음으로 꺼내 보인 작은 소망 같다.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고 제안하던 시인의 산뜻한 용기를 기억한다면, 혹은 그에게서 건네받은 선물로 하루를 무사히 지나 보낸 적 있다면, “발 디딜 곳 없이 헤매다가 하얀 네모 안으로 들어가 쓰러지면 그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라고”(「보이지 않는 물」, 70쪽) 말하는 시인의 얼굴이 퍽 반가울 것 같다.
시집을 열면 “한 문장 때문에 긴 여행을 떠나게 된 사람의 이야기”(「고양이가 그려진 종이」), 즉 성실한 매일을 발판 삼아 여기에 도착한 시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긴 여정에는 이렇다 할 표지판이나 안내서가 없다. 여타의 시집과 달리 부의 나눔 없이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낯설다면,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잠시 접어두고 시인의 발걸음을 따라 차분히 걸어보기를 권한다. 시인의 의도대로 “멈추지 않고 한 번에 걸어가”(‘미니 인터뷰’에서)봐도 좋고, 시편들 사이로 출몰하는 ‘새’나 ‘공’을 쫓아 읽거나, ‘식당’이나 ‘공원’을 찾아가는 색다른 재미를 누려봐도 좋다. 그가 차근차근 부려놓은 “이야기에 푹 빠지면 어느새/ 창밖이 달라져 있”(「사람이 없는 시간」)을 것이다. 그때엔 창밖으로 나가 자신만의 풍경을 그려보아도 좋을 것이다.

눈이 녹아 물이 되면
서로가 서로에게 포개지는 영혼들

나는 뜨거운 걸 잘 못 만진다

탕에 발가락을 넣으면
튕겨나온다
부글거리는 물거품을 떠올리며
땀만 뻘뻘 흘린다

커피 하얀 김이 도망가는
뱀처럼 빠르게 일렁이다가
잠든 뱀처럼 느리게 길어지는 것을 다

보고 나서야 잔에 입을 대었다
뗀다
_「차가운 사람」 부분

화자는 “나는 뜨거운 걸 잘 못 만진다”고 고백한다. 그는 온탕이나 커피의 온기도 저어할 만큼 열기를 버거워한다. 또다른 시 「겨울에 태어난 사람」에는 “한여름에도 땀을 잘 흘리지 않는” 이가 등장한다. 그에겐 “술을 나눠 마신 사람”의 “추위를 빼앗”아 갈 정도로 깊은 한기가 흐른다. 그러나 차갑다는 것이 곧 냉정하고 매몰차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차가운 사람인 동시에 “누군가가 목 뒤로 삼킨 불/ 꺼내려고” 그것을 “만져보고 싶”(「차가운 사람」)어하는 사람이고, 자신 안의 “겨울을 식탁보처럼 펼”치고 “눈사람을 식탁에 앉”(「겨울에 태어난 사람」)히는 사람이다. 조해주 시의 ‘차가운 사람들’은 함께 뜨거움을 견디는 대신 자신의 차가움을 나눠줌으로써 “조금 덜 뜨거”워 “이제 마셔볼까”(「차가운 사람」) 싶은 온도를 만들어내고, 자신처럼 차가운 누군가와 “함께 녹아내리는 기쁨에 대하여 상상할 수 있”(「겨울에 태어난 사람」)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들이 타고난 성정과 달리 ‘배운 다정함’을 품고 있는 까닭은 얼어붙었다 녹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언 우물
주먹처럼 웅크린 몸으로 그는
그 안에 잠겨 있었지

(……)

새의 목표는
깨뜨려서 깨우기
그건 그 새만의 방식이어서

그는 뒤척였지
바깥에서 보면 악몽에 찡그리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핏줄처럼 금이 자라고 있었지

꿈을 깨고 나오는 이마의 분명함으로

있는 힘껏 밀었지
넘어질 것이 넘어질 때까지
엎질러질 것이 엎질러질 때까지
_「유리된 느낌」 부분

“언 우물” 안에 “주먹처럼 웅크린 몸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은 “봄 가을 새가 와도” “목마른 여름새가 테두리에 앉아 고개를 갸웃해도” “녹지 않”는다. 그러나 “감나무잎 하나 떨어지”는 겨울이 오자 그는 처음으로 “뒤척”인다. 얼어붙은 몸을 녹인 것은 다름 아닌 “새”다. 이 시의 새는 “작은 부리로” “나뭇가지/ 돌멩이/ 오디/ 총/ 콩/ 캔” 따위의 것들을 “하나씩” “있는 힘껏” 밀어 넘어뜨”린다. “깨뜨려서 깨우기”가 “그 새만의 방식이”므로. 얼어 있던 ‘그’가 긴 잠에서 깨어날 기미가 보이자 새는 다만 “온몸을 털어내”고 “그간의 일을 다 잊은 듯이 날아”간다.
이번 시집 곳곳에 날아다니는 ‘새’는 한껏 가벼워진 언어로 냉담한 세계에 온기를 물어오는 시인의 분신 같다. 「반려」는 “그는 새를 풀어놓고 키운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말에 갸우뚱하게 되는 것은 “새들은 일 년에 하루만 그의 정원에 머문다”라는 문장이 곧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록 새와 함께하는 날은 일 년에 단 하루뿐이지만, 화자는 새를 떠올리고, 새가 남긴 흔적을 상상하고, 새가 흘린 깃털을 주우며 “이게 새와 사는 게 아니라면……” 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어느새 돌아와 가만히 가슴팍을 두드리는 기척”은 잠든 그에게 “생일 축하해” 하고 인사를 건넨다.
그렇다면 세계와 적극적으로 부대끼지 않으나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는 감각 속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화자들을 이번 시집의 주인공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겠다. 새가 앉았다 간 자리에 남겨진 차가운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눈이 녹으면 뭐가 되지?”(「눈빛 보내기」)라는 물음이 자연스레 잇따른다.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 그래선지 마치 물처럼 떠밀리고 부딪치고 밀려드는 감각이 다수의 시에 등장한다. 식당 문이 열릴 때마다 밀려드는 사람들(「강변식당」)이나 새벽의 실내 수영장에서 물살과 함께 밀려나는 바깥의 감각(「생존근육」), 바람이 “밀어내는 대로/ 휘어지”는 나무들(「느낌온도」)이 그것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인사하다가 이마가 서로 부딪치기도 하”(「주말농장」)지만 “부딪치면 찌르르 울리는 것이 있다”(「야외석」)는 것을 알기에 밖으로 향하는 존재들이다. 특히 이 시집의 후반부에 수록된 세 편의 연작시 〈보이지 않는 물〉은 경계를 넘어서는 물의 특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사실 영훈과 나는 쌍둥이였고, 사람은 잠든 상태가 기본이라고 한다. 발 디딜 곳 없이 헤매다가 하얀 네모 안으로 들어가 쓰러지면 그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라고. 점점 더 깊이

이상해…… 참 이상하단 말이야…… 머리만 대면 파도가 밀려온다. 나는 나의 영혼을 자꾸 영훈이라고 한다. 이름을 조금씩 틀리게 말하는 습관이 있다.
_「보이지 않는 물」(70쪽) 부분

이 시에서 “무용수 영훈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는” 화자는 어느덧 소설 속으로 들어가 영훈과 함께 “해변에 앉아 있다”. “영훈은 물처럼 부드러운 몸짓으로 빠르게 넘어가는 페이지 위를 뛰어다니”고, “발을 헛디”딘 ‘나’는 “난데없는 장소에 떨어”져 “모래 위에 한 글자처럼 누워 있다”. 그렇게 텍스트의 일부가 된 ‘나’는 “사실 영훈과 나는 쌍둥이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파도가 밀려”오는 순간, ‘나’는 자기 자신의 영혼조차 타자(영훈)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렇게 ‘나’가 소설 속 인물과 완벽히 겹쳐질 때 우리는 ‘나’의 영혼 위에 포개진다.

번번이 얼룩진 자리를 씻어내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라는 정체성에서 미끄러져 타인과 완전한 하나가 되어보는 상상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존재라는 믿음과 맞닿아 있다. 그것은 다른 존재에 감응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다짐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을 마주할 수 있다”(「고양이가 그려진 종이」)는 각오는 거창한 신념보다 “장미 화단을 본 적 없는 사람도 장미를 그릴 수 있다”는 사소한 시도에서 비롯한다. 시인의 말처럼 “하얀 마음”이란 “어떤 오염에도 물들지 않는/ 마음”(「음각」)이 아니라, “계속 더러워지는 마음, 그러나 씻을 수 있는, 회복 가능한 마음”(‘미니 인터뷰’에서)이기 때문이다. “하얀 마음을 가지게 해주세요”라는 바람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그의 시 속에서 우리는 언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가 꿈꾸는 책은 “열려 있으니까 언제든지 와서 있어”라고 초대하는 “주인 없는 아지트”, “펼친 책에 얼굴을 파묻”으면 “다시 떼어낸 뺨에는 옮은 문장이/ 말투가/ 까맣게 새겨지”(「열린 공간」)는 시집이다. 시인의 마음에 하얀색 음각으로 새겨진 문장이 다른 이의 마음에 검은색 양각으로 옮겨가는 일은 놀랍고도 아름답다. 지금 펼쳐놓은 조해주의 시집에서 어떤 문장이 옮겨왔다면 우리는 겹겹이 물드는 하얀 마음의 공동체에 도착한 것이다.
_오연경, 해설에서

작가

조해주
출생
1993년
경력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19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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