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콘텐츠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언어가 섬세해질 때,
우리의 사유와 삶도 비로소 깊어진다”
인문학자가 전하는 K-콘텐츠의 미래를 위한 제언이자,
대중예술을 통해 만나는 친근하고 풍성한 우리말 말밭
하나의 형용사와 부사가 문장을 장악하고 장면을 만든다.
글을 만지는 힘이 콘텐츠를 캐낸다.
“언어는 인간 정체성의 뼈대 중 하나이며
사유와 감정, 감각의 그릇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내 삶이다.”
“우리말에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과 감각을 다룬 언어가 다양한 것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동의의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또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한류의 세계화 뒤에는,
우리말이라는 위대한 보물창고가 있었다.
오늘날 전 세계를 사로잡은 ‘K-콘텐츠’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2025년을 기점으로 ‘K-콘텐츠’는 글로벌 주류 콘텐츠로 자리잡으며 국가 경제를 부양하는 동력의 한 축으로 흥행을 누리고 있다. 섬세한 감정선과 관계 중심의 서사로 199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권에서 공감을 받기 시작한 ‘한류韓流’는 이제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문화상품’의 차원에서 나아가, 세계적 흥행의 원인을 분석하고 지속 성장 가능성이나 글로벌 브랜드화 전략 등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보고서들이 줄을 잇는 배경이 되고 있다.
오랫동안 대학 교단에서 인문학을 가르치고 현재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집필하며 시대와 소통하고 있는 저자는 ‘K-콘텐츠’의 동력을 우리말의 풍부한 감정, 다양한 감각, 섬세한 표현에서 찾는다. 피상적인 학문 이론보다는 문학작품은 물론 예능방송이나 드라마 등 대중예술들의 유의미한 사례를 통해 알기 쉽고 감각적으로 전하는 이 책은 우리말의 언어적 자산과 역사적 맥락, 그리고 문화적 선택이 어떻게 오늘날의 글로벌 콘텐츠 파워로 결실을 맺었는지 8개의 시선으로 깊이 있게 조명한다.
“우리말에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과 감각을 다룬 언어가 다양한 것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동의의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지금의 글로벌한 호응은 단순히 노래의 수준이 높아지고 안무가 절묘하며 선진적인 기획사를 통한 기획력 때문만은 아니고, 영화나 드라마의 시나리오와 각본이 탄탄하고 기술이 뛰어나며 연기가 특출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 전체를 관통하는 언어의 작용이 존재한다는 걸 파악해야 이 흐름을 지속시킬 수 있고 더 심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_「K-콘텐츠의 본질적 힘, 저항과 극복의 서사」에서
내면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빛깔과 결의 언어,
우리말의 형용사와 부사
명사의 상태, 성질, 모양, 색채 등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형용사는 사물의 상태와 모습을 다채롭게 입히는 ‘빛깔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노란 꽃’ ‘높은 하늘’ ‘쓸쓸한 풍경’처럼 대상을 눈에 보이듯 직관적이고 또렷하게 고정하여 감각적으로 명확하게 시각화한다.
부사는 동작과 양상의 미세한 결을 살려내는 ‘결의 언어’라 할 수 있다. 용언이나 문장 전체를 수식하여 동작이나 상태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 ‘태도’와 ‘과정’을 묘사하여 움직임의 느낌과 질감을 표현한다. “‘깡충깡충’ 뛰는 토끼와 ‘껑충껑충’ 뛰는 말(馬)이 달리는 모습은 다르다. 그냥 ‘뛰다’나 ‘달리다’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처럼 부사는 단순한 형태나 색깔을 넘어, 그 안에 담긴 분위기, 속도감, 결의 촘촘함을 세밀하게 살려내는 역할을 한다.
즉, 형용사는 대상이 ‘어떠한 존재인가(State)’를 명확한 빛깔로 채색하는 언어이고, 부사는 대상의 움직임이나 상태가 ‘어떠한 흐름과 질감인가(Texture)’를 섬세한 결로 다듬어주는 언어이다. 저자는 ‘K-콘텐츠’의 숨은 힘으로 다양한 우리말의 형용사와 부사에 주목한다.
디지털 환경이 소통의 장이 된 요즘은 빠른 전달을 위해 더욱 축약적인 방법들로 소통한다. 최대한 짧게, 글보다는 이미지로 발화자의 생각과 느낌을 전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서는 의미를 곱씹어야 하는 개념어나 말이 길어지는 수식어 등이 조용히 소멸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는 이는 드문 것 같다. 저자는 “동사와 일상의 사물을 지칭하는 명사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개념어, 관념어만 멀어진 게 아니라 형용사와 부사도 빠른 속도로 우리의 일상언어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소해 보이는 형용사와 부사의 소멸은 말하는 ‘나’를 정교하게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 경험 역시 줄어들게 하여, 언어뿐만 아니라 섬세한 감정까지 소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콘텐츠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는 건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우리 언어에 깔린 섬세하고 다양하며 풍부한 형용사와 부사의 역할도 큰 몫을 수행한다고 확신한다. 그 낱말들이 직접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이 빚어내는 사유와 감성, 그리고 감각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_「들어가며」에서
우리의 풍부한 언어 자산이 빚은
다양한 감각과 섬세한 표현력
〈기생충〉 〈폭싹 속았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의 ‘K-드라마’와 BTS를 필두로 하는 ‘K-팝’,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까지 세계적인 호응의 바탕에는 공감이라는 인류 보편적 감정이 존재한다. 어떻게 우리의 작품들은 세계적인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을까.
저자는 창작자와 배우가 인간의 미세한 감정선과 관계 중심의 서사를 깊이 있게 읽어내고 표현하는 데 감정과 감각의 정교한 묘사가 가능한 우리말의 형용사와 부사가 숨은 힘이라고 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말의 형용사와 부사는 섬세한 언어 자산이며 또한 세밀한 언어적 표현력이 대중의 깊은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인류 보편적인 정서적 동의와 연대를 만들어낸다고 단언한다. 형용사와 부사가 다양한 우리말이 “보물 창고”인 이유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말의 풍부한 의성어, 의태어와 고맥락 언어의 특성이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과 K-콘텐츠의 섬세한 표현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다각도로 탐구한다. 나아가 우리말이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감정과 동작의 세밀한 결까지 담아내는 뛰어난 예술적 도구임을 깊이 있게 통찰한다. “섬세한 언어의 존재는 섬세한 장면의 표현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한류의 진짜 힘은 이런 데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눈물인데 ‘눈물이 골짝 난다’는 문장은 몹시 억울하고 야속해서 나는 눈물이다.
영어로는 ‘tears flow’로 간단히 설명된다. 물론 거기에 다양한 부사구들이 딸려 상황이나 이유 그리고 감정이 담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말처럼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을 낱말 하나로 담아낼 수는 없다. 우리말에 다양한 감각과 풍부한 감정을 담은 형용사와 부사가 많다는 건 콘텐츠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 매우 큰 자산이다.”
_「왜 한국 배우들은 연기를 잘할까?: 우리말은 한류의 중요한 뿌리다」에서
K스토리와 우리말에 담긴 극복 서사
이번 책에서 저자는 ‘K-콘텐츠’의 성과에는 고유한 서사의 힘 역시 한몫을 하고 있으며 우리의 스토리텔링이 매력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언어의 다양성에서 오는 것”이라고 전한다. “섬세한 표현의 언어를 가졌다는 건 그만큼 읽어내고 표현할 수 있는 감정과 감각의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과 일치한다”는 통찰이다.
서사를 이끄는 스토리텔링의 도구는 언어라고 말할 수 있다. “극복 서사”를 가진 우리 민족의 언어는 서사의 기록을 위한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극복의 역사가 응축된 ‘결과물’이자 다시 시련을 이겨내게 하는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거친 풍파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텨낸 언어의 단단함과 따뜻함이 오늘날 K-스토리가 가진 강력한 공감대의 뿌리가 되어주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눈물이 골짝 난다” “사무치다” “애운하다” 같은 말은 단순한 번역을 넘어 특정한 서사적 맥락을 내포하고 있다. 창작자는 자신의 언어에 축적된 서사적 유산을 활용해 인류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고유한 이야기를 완성하고 공감을 끌어낸다. 시련과 저항의 역사에서 탄생한 독보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이유일 것이다.
감각과 서사의 힘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우리말은 이제 한 단계 더 도약할 때이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잊혀가는 아름다운 우리말 표상을 재조명하고 언어가 만드는 세계관의 깊이를 지켜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K-콘텐츠가 일시적 흥행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하려면 감정과 감각의 전달을 넘어 인간과 사회를 깊이 통찰하는 ‘사유를 담은 언어’로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제언한다.
“우리의 사유나 감각은 언어라는 기호에 의해 정의되고 인지되고 해석된다. 심지어 상상의 영역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롤랑 바르트식으로 말하자면 기호화되지 않은 어떠한 것도 우리는 감각할 수 없는 셈이다. 또한 의미는 기호 너머까지 존재하되 그 텍스트에 갇히거나 외부의 힘, 즉 어떤 권위나 규정에 지배되지 않고 저항하며 자신의 영토를 마련하려는 사람에게만 허용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나의 언어를 만지고 뜯고 조립하며 해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내 삶과 우리의 문화를 한 차원을 끌어올리는 힘이 된다.”
_「들어가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