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서클”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군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입니다.
코스믹 호러의 크툴루 신화와 환상의 드림랜드를 아우르는 러브크래프트 문학의 근간은 고딕 소설입니다. 소설은 물론 문학론을 통해서 현재의 문학 지형에 고딕 전통을 매끄럽게 접목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작가도 러브크래프트입니다.
「무덤」은 러브크래프트의 고딕 특징을 잘 보여주는 단편입니다. 공포, 초자연적 사건, 미지의 불가해한 대상 등의 요소 외에 현재에 연결된 과거의 공포라는 고딕의 또 다른 특징도 잘 녹아있습니다. 제목에서 암시되듯 배경도 고딕 소설의 전형적인 (이 작품의 경우 과거의 번영과 현재의 몰락을 보여주는) 폐허와 폐쇄적 공간에 해당되는 무덤인데요. “하이드 가계”라는 유서 깊은 가문과 그 비밀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설정으로도 유효합니다.
죽음과 광기를 주제로 한 이 단편엔 에드거 앨런 포의 영향이 배어 있습니다. 다만 포의 영향이 짙은 다른 고딕 단편들에 비해서 러브크래프트 자신의 색채를 많이 보여줍니다. “드러내기 위해 감추는” 글쓰기 전략 때문에 고딕 특징을 잘 살린 반면 공포의 울림은 적은 편입니다.
저바스 더들리라는 1인칭 화자가 어쩌다가 정신병원에 오게 됐는지를 밝히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자칭 몽상가이자 예언자인데, 어렸을 때부터 병적이고 기이한 상상에 빠져서 나름 혼자서도 잘 지내는 외톨이입니다. 어느 날 불가사의한 묘지를 발견하면서 더들리의 상상력은 서서히 광기로 물들어갑니다.
<책 속에서>
내 이름은 저바스 더들리,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몽상가였고 예언자였다.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부유했고, 제도권의 교육과 또래의 사교적인 오락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성격 탓에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에서 살아왔다.
청소년기와 성년기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고서를 탐닉하거나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저택 인근의 들판과 숲을 거닐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그런 책에서 읽거나 들판에서 본 것들이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읽거나 본 것과 정확히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얘기는 삼가야겠다.
이런 얘기를 자세히 해봤자, 때때로 주변에서 내 지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은밀히 오가는 험담에 힘을 더 실어줄 뿐이다. 나로서는 원인 분석은 건너뛰고 사건만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