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예술 작품, 값비싼 보석뿐 아니라 뭇 여인들의 마음까지 훔치는 낭만적인 모험가!
그래서 파리 시민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괴도 신사 루팡’.
추리소설의 클래식 <아르센 루팡 시리즈>를 현대적인 번역까지 더해 리디북스에서 만난다!
살해당한 세계 최고의 거부, 다이아몬드 왕 케셀바흐의 시체 옆에서 아르센 루팡의 명함이 발견됐다.
결코 피를 보지 않던 괴도 신사 루팡이 살인을?
발칵 뒤집힌 파리사회,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가는 불안감...
결국 이 모든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치안국의 새로운 영웅 르노르망 국장이 나서는데...
<책 속으로>
루팡이 허리를 굽혀 케셀바흐의 얼굴 바로 앞에 선 후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바르바뢰에게 파리 하층민들 사이에서 피에르 르뒥이라는 자를 찾아달라고 했다지요? 175센티미터 키에 금발, 끝이 잘려나간 왼손 새끼손가락, 오른뺨에는 희미한 흉터가 있고…… 자, 말해보시오. 그자는 누구요?”
“……”
“선생.”
“모르오……”
케셀바흐의 말에 루팡이 소리 없이 웃었다. 그렇게 혼이 나고도 또 모르쇠라니, 과연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점점 더 궁금해져서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가죽 주머니는 리옹 은행에 있는 것 맞소?”
“그렇소.”
“안에 뭐가 들어 있소?”
“최상품 다이아몬드 200개.”
“오~”
루팡의 양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간만에 맘에 드는 대답이었다.
따르릉!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예! 케셀바흐입니다. 연결해주십시오.”
루팡은 프런트 전화교환원에게 의심을 사지 않도록 케셀바흐 특유의 음색과 억양으로 말했다. 전화를 걸어온 이는 마르코였다.
“그래, 비밀번호는 맞던가? …… 잘됐군. 좋아. 잠시 끊지 말고 대기하게.”
루팡이 고개를 돌려 케셀바흐를 쳐다봤다.
“선생! 내가 방금 최상급 다이아몬드 200개를 얻었다오. 어떻소? 사실 생각 없소?”
“……”
천연덕스러운 루팡의 제안에 케셀바흐가 이마를 찌푸렸다.
“진짜 괜찮은 물건이오. 품질은 보장하겠소.”
루팡이 빙긋 웃으며 다시 물었다.
“…… 좋소. 사겠소.”
케셀바흐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50만 프랑 정도 받았으면 하는데……”
“좋소.”
“역시 이름 난 부호는 흥정 따윈 안하는군요. 좋아요, 그러면……”
루팡은 잠시 케셀바흐를 빤히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모레 아침, 리옹 은행에서 현금 50만 프랑을 찾아 오튀유 근처 숲으로 오시오. 다이아몬드는 내가 준비한 가방에 넣어 가져다주겠소. 흑단 상자는 아무래도 너무 눈에 띄니까 말이오.”
루팡의 말에 케셀바흐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니. 상자 째로 가져다주시오. 나는 현재 상태 그대로를 원하오.”
“흠…… 그래요?”
루팡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선생이 관심 있는 건 다이아몬드가 아니군. 아무튼 알겠소. 상자도 돌려주겠소. 대신 어떤 비밀이 있길래 그런 건지는 좀 궁금하군요.”
“……”
케셀바흐는 입을 다물었다. 루팡이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마르코. 상자를 살펴보게. 이중바닥 아닌가? …… 그럼 뚜껑은? …… 거울? 오케이. 깨뜨려보게.”
“……”
케셀바흐의 얼굴이 점점 초조해졌다. 전화기 너머 부하의 목소리를 들은 루팡이 씨익 웃었다.
“편지가 있단 말이지?”
케셀바흐의 낯빛이 급속도로 창백해졌다.
“1미터 75센티…… 왼손 새끼손가락 절단…… 응? APOON? 흠…… 알겠네. 자동차는 보냈나? …… 좋아. 20분 후에 합류하지.”
루팡은 전화를 끊고, 채프먼과 에드바르가 재갈 때문에 숨이 막힐 위험은 없는지 살핀 후 다시 몸을 일으켰다.
“선생, 하나만 더 물읍시다. APOON이 뭐요?”
“…… 모르오.”
“거짓말.”
“알면 내가 그걸 왜 적어놓았겠소?”
“흠……”
“정말 모르오.”
“좋소. 그럼 그건 어디서 들은 거요?”
“……”
케셀바흐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루팡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말을 꺼냈다.
“선생. 바르바뢰는 멍청한 자요. 뜨내기 삼류 흥신소장이란 말이오. 그는 당신이 부탁한 피에르 르뒥을 찾을 능력이 없소.”
“……”
“내게 정보를 주면 48시간 안에 찾아주겠소.”
“……”
여전히 케셀바흐의 입은 열릴 줄 몰랐다. 루팡은 말없이 케셀바흐의 주머니를 뒤지더니 멋진 금시계를 꺼내 그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3시 8분 전이었다.
“딱 3시까지만 기다리겠소. 그 다음엔…… 뭐……”
루팡의 손끝에서 단검이 번쩍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