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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제퍼슨 상세페이지

토머스 제퍼슨

미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세운 건국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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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00원
출간 정보
  • 2026.05.18 전자책 출간
  • 2026.04.21 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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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 PDF
  • 950 쪽
  • 222.1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91176610162
UCI
-
토머스 제퍼슨

작품 정보

독립선언서의 주역, 건국의 아버지
제퍼슨 평전의 최고 권위작!




◎ 도서 소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기록★★
★★퓰리처상 수상 작가★★
★★워싱턴포스트 등 6개 매체 선정 한 해 최고의 책★★
★★월터 아이작슨 강력 추천★★

민주주의를 반석 위에 올린 대통령
권력의 본질을 꿰뚫은 현실적 이상주의자

토머스 제퍼슨. 그의 이름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혁명가에서 개혁가로, 좌절한 의원에서 국무장관을 거쳐 마침내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제퍼슨의 삶은 야망과 이상, 좌절과 타협의 연속이었다.
이 책은 제퍼슨의 출생부터 마지막 순간까지를 9부 43장에 걸쳐 담담하게 추적한다. 화려한 수사나 과장된 해석 없이, 한 인간이 역사의 격랑 속에서 어떻게 권력을 쟁취하고 행사했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상주의자 제퍼슨이 거대한 신생 국가의 정치가로서 현실과 부딪히며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의 철학이 어떻게 미국의 정치·경제·외교 노선을 장기적으로 규정했는지 촘촘하게 추적한다.
버지니아의 명문가 출신 청년이 독립혁명의 중심에 서기까지, 프랑스 주재 공사로서 유럽 무대를 경험하고 해밀턴과의 치열한 대결 속에서 야당 지도자로 성장하는 모습과 농업 공화국이라는 비전과 노예제를 둘러싼 모순, 제한적 정부를 주장하면서도 대통령으로서 루이지애나 매입을 결행해야 했던 딜레마까지— 한 지도자의 사상과 현실 사이의 깊은 균열이 어떻게 역사로 남았는지를 차분히 드러낸다.
이 평전은 흔한 위인전이 아니다. 대신 정치적 계산과 개인적 야망, 이상주의와 현실적 타협 사이를 오간 한 정치인의 진솔한 초상을 그린다. 독자들은 제퍼슨이라는 복잡한 인물을 통해 권력이란 무엇인지, 리더십이란 어떻게 발휘되는지, 그리고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또한 어쩌면 그의 치부라 여겨질 수도 있는 개인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정치가로서의 제퍼슨을 우상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자 남자로서의 모습까지 진솔하게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로써 제퍼슨이 저 멀리 하늘에 존재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한 사람이었음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오늘날 분열과 위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국가 전략, 오판, 그리고 통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던진다.




◎ 본문 중에서

제퍼슨은 늘 질문을 던졌다. 후손 중 한 명은 ‘기술자든 과학자이든 가리지 않고, 수레바퀴 구조부터 멸종 동물의 해부학까지 가능한 많은 것을 배우셨다’라고 회상했다. 그런 뒤 집으로 돌아와 들은 내용을 꼼꼼히 기록했다. 제퍼슨은 머지않아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으로 불리게 되었다._52쪽

출생과 교육 덕분에 제퍼슨은 자연스럽게 미국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아버지 피터 제퍼슨의 서재에 라팽이 쓴 여러 권의 《영국사》 시리즈가 꽂혀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아, 토머스 제퍼슨이 훗날 대서양 세계의 중심 사상으로 이끌 세계관은 이미 제퍼슨 가문에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초기 제퍼슨 전기 작가인 헨리 랜들은 피터 제퍼슨이 ‘확고한 휘그당 지지자였으며, 민주주의라는 말을 당시 폭넓고 대중적인 의미로 해석했을 때, 특정한 민주주의적 신념을 고수했으며 이는 아들에게도 전해졌다’라고 기록했다._64쪽

제퍼슨에게 1765년 윌리엄스버그에서 벌어진 인지세법 논쟁과 리배나강 정비 작업부터 1776년 필라델피아에서 독립선언서가 채택되기까지의 11년은 지적으로, 정치적으로, 정서적으로 꾸준히 성숙해가는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제퍼슨도 처음부터 혁명가는 아니었다. 충성스러운 영국 신민에서 독립을 주도하는 반역자로 탈바꿈하는 그의 여정은 그가 철학과 역사를 바탕으로 대중의 감정을 움직이는 감성적 호소의 힘을 잘 이해한 이상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_71쪽

당시 제퍼슨은 막 스물다섯이 되었고, 벳시 워커는 그보다 두 살 어린 스물세 살이었다. 1768년의 따뜻한 계절 동안, 제퍼슨은 여러 차례 벨부아 저택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종종 벳시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는 오랜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 듯했다_80쪽

진정한 고통은 책이 아니라, 앞으로의 재판을 위해 준비해두었던 법률 서류와 기록의 상실이었다. 그것 없이는 그는 더 이상 맡은 일을 완전히 해낼 수 없었다. 제퍼슨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화재 소식을 급히 이곳저곳에 알리며, 조언과 위로를 간절히 구했다. 심지어 동네를 완전히 떠나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자신의 터전에 깊은 애착을 가진 사람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파격적인 고민이었다._86쪽

제퍼슨은 입법자이자 공인의 삶을 살아가며 여러 순간, 노예제 사회의 종말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말이나 행동을 보이곤 했다. 하웰 사건의 변론문은 그가 언젠가 노예제 종말을 가능성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제퍼슨에게 노예 해방은 어디까지나 미래 세대가 실현할 과제였을 뿐, 본인의 살아 있는 동안 현실이 되리라고 믿지 않았다. 대중의 지지를 절실히 바랐던 젊은 정치인이자 변호사로서 제퍼슨은 블랜드 법안에 대한 하원의 거센 반발과, 하웰 재판에서의 판결에 분명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노예제에 대한 진보적인 시도를 반복하다가 좌절을 경험한 제퍼슨은 결국 보다 전통적이고 온건한 입장으로 물러나고 말았다._90쪽

제퍼슨은 훗날 독립선언서를 집필했던 책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에도 종교처럼 미신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그 미신이 힘을 얻고, 언젠가는 이 유물이 우리의 독립 대헌장이 탄생한 장소라는 이유만으로 상상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게 될지도 모릅니다.”_156쪽

제퍼슨은 독립선언서를 완성한 이후, 인간 본성에 대한 사유를 정치적 실천으로 옮기는 방법을 배우며 시간을 보냈다. 인지세법 위기 당시 제안했던 금식과 기도의 날 결의안처럼, 선언서 덕분에 언어가 리더십에서 얼마나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체득했다. 무엇이 가능한지를 제시하고, 사람들이 그 비전을 함께하도록 영감을 불어넣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국가 지도자의 본질적인 역할이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중요한 또 다른 능력은 입법의 장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정치인들을 설득해 공동의 대의에 동참하게 만드는 역량이었다._173쪽

1776년 가을, 윌리엄스버그에서 제퍼슨이 단행한 첫 번째 중대한 입법 개혁은 영속 보유권과 장자 상속제 철폐였다. 두 제도는 대지주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오직 한 명의 상속인에게만 물려주도록 강제하는 오랜 관습으로, 제퍼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의 영속을 법적으로 보장받는 특권 가문들을 탄생시켰고, 화려한 생활과 사치스러운 저택들로 구별되는 귀족 계급을 형성했다.’ 제퍼슨도 이러한 제도의 혜택을 입었지만, 더 큰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개혁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_174쪽

제퍼슨 역시 많은 입법가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집행 권한을 맡기 전까지는 행정 권력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전시 상황 속에서 주지사직을 수행하고 난 뒤, 그는 이 직책에 대해 처음 받아들였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고, 공직 수행에 따르는 대가에 대한 그의 인식 또한 더욱 예리해졌다._185쪽

트리니티 교회에서 열린 동일 회기에서, 제퍼슨 개인의 책임을 묻는 조사 결의안 외에도 또 다른 논의가 벌어졌다. 그것은 이번 혼란이 제퍼슨이라는 인물의 실패가 아니라, 애초에 그에게 주어진 권한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의원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으면서도 책임을 묻지 않는 권력을 가진 ‘독재자’를 임명해야 할 시점입니다.”_197쪽

그리고 제퍼슨은 점차 깨닫게 된다. 버지니아에서 경험한 진실은 더 넓은 미국 전체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국가 정부와 주정부, 주정부와 국민 사이, 즉 삶의 다양한 요소들이 충돌하는 이 지점에서 절제된 권력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과제였다_219쪽

제퍼슨에게는 정보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전국 의회에 선출된 지 10일 뒤, 그는 리치먼드의 버지니아 주의회 의원에게 정국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계속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_220쪽

제퍼슨은 자상한 아버지였지만, 때로는 엄격하기도 했다. 그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내가 너를 위해 고용한 가정교사들에게서 얻게 될 학문적 성취는 네가 내 사랑에 걸맞은 사람이 되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사랑을 더 키우진 않더라도, 적어도 줄어들지 않도록 막아줄 것이다.”_229쪽

제퍼슨이 지지한 1784년 조례안이 굉장히 중요했던 것은 새로운 영토 내에서 노예제 확장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항은 의회에서 단 한 표 차이로 부결되었다. _237쪽

“제퍼슨 씨만큼 인생의 불쾌한 일들을 잘 넘기는 신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일정한 불합리를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지요.”_264쪽

제퍼슨은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인물 워싱턴의 뜻을 거스르면서도, 본인의 입장을 관철했다. 그는 워싱턴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당시의 정세를 고려할 때 자신은 프랑스보다는 미국에서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현실적인 이유를 내세웠다._355쪽

강 한가운데에서 자신과 딸의 안전이 다른 이들의 다툼으로 위협받자, 제퍼슨은 상황을 장악하고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관철했다. 제퍼슨의 손녀는 이렇게 회상했다. “뱃사공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노를 저었다고 들었어요. 머리 위로 무거운 노를 휘두르며 강렬한 표정과 흥분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던 키 크고 기묘한 인물을 쉽게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_380쪽

그에 앞서 제퍼슨은 워싱턴과 관련된 꺼림칙한 문제 하나를 먼저 바로잡고 싶어 했다. 항상 타인의 평판에 예민했고, 특히 워싱턴에게는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던 제퍼슨은 1796년 6월 9일 자 《오로라》지에서 중대한 보도를 접했다. 그 보도는 워싱턴이 중립 정책을 두고 논쟁하던 당시, 내각에 배포한 기밀문서에 근거한 것이었다. 제퍼슨은 자신만큼은 그 문건을 유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결심했다. 6월 19일 워싱턴에게 편지를 보내 ‘모든 신성하고 명예로운 것을 걸고’ 맹세하며 말했다. “그 문서는 결코 제 자물쇠 아래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_388쪽

1798년 4월, 제퍼슨은 재정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그는 한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지금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은 50달러뿐입니다. 이게 당분간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전부예요.”_411쪽

루이지애나 매입 이야기는 제퍼슨의 강인함, 대처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프랑스로부터 영토를 완전하게 지켜내고 나라의 크기를 두 배로 늘려 미국을 대륙의 강국으로 변모시키려는 그의 결단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느리거나 용기가 부족한 정치인은 인수 기회를 망쳤을 것이며,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정치인은 엄격한 헌법적 원칙을 고집하다가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그러나 제퍼슨은 느리지도, 약하지도,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지도 않았다._494쪽

“대화를 나눌 때 제퍼슨 씨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웠으며, 겉으로는 야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 만큼 크지 않았으며, 보통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과학과 문학, 그리고 특히 거의 전적으로 그의 노력에 의해 탄생하고 있는 버지니아 대학교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있을 때, 그가 즐겨 얘기한 주제는 그리스어와 앵글로색슨어, 시대별 역사적 유물, 독립 혁명 당시 시대 상황과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회상, 그리고 1783년~1784년 시기부터 1789년까지 프랑스 주재 시절에 관한 이야기였다.”_615쪽

작가

존 미첨John A. Meac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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