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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 상세페이지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

난다시편 010

  • 관심 0
난다 출판
소장
종이책 정가
13,000원
전자책 정가
30%↓
9,100원
판매가
9,100원
출간 정보
  • 2026.07.30 전자책 출간
  • 2026.06.19 종이책 출간
듣기 기능
TTS(듣기) 지원
파일 정보
  • EPUB
  • 약 2.7만 자
  • 39.0MB
지원 환경
  • PC뷰어
  • PAPER
ISBN
9791124065662
UCI
-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

작품 정보

난다시편 열번째 권
고명재 시집,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 출간


왜 꽃은 자신을 찢는 방식으로 향기로운지
늙은 소는 벼 스치는 소리를 어떻게 듣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 거기에서도
새순 보듯 내 얼굴 보고 싶은지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고 ‘미친 말들의 슬픈 속도’(박연준)로 시라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고명재 시인의 신작 시집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이 난다시편 10번으로 출간된다.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고 첫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2022)과 첫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2023) 이후 만나게 된 그의 반가운 두번째 시집이다. 이번 책에는 사랑하는 사람 어깨에 기대기 위해 나를 기울이고, 그이를 향해 방향을 틀던 때의 풍경과 장면들을 떠올리며 써내려간 시 57편이 5부에 나뉘어 담겨 있다. 시집 끝에는 시인이 독자에게 전하는 「고명재의 편지」와 대표작 「밥은 먹고 다니는지」(Are You Eating All Right)가 정새벽(Jack Saebyok Jung)의 번역으로 영문 수록되었다. “한번 당신 어깨에 기대도 되겠습니까. 왼편으로 제 영혼과 몸을 기울여 당신 어깨에 귀를 좀 얹어도 될까요.”(「고명재의 편지」) 오목하고도 유려하게 떨어지는 곳. 사람의 처마, 포개면 기와, 그렇게 동무를 만들기도 하는 곳. 비가 오면 사랑이 가장 잘 드러나고. 우산 밖으로 얼마나 흠뻑 젖느냐에 따라 사랑의 경사를 지레짐작해볼 수도 있는 곳이다.(「어깨」,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마치 장생하는 나무에 온갖 새들이 앉아서 뜨거운 여름을 견뎌내듯, 시인은 고통스러운 삶을 통과할 때면 영혼을 기댈 곳을 찾아 헤맨다. 그때 사랑의 경사를, 사랑의 속성을 이뤄주는 것이 ‘시’. 그가 쓴 시들은 한데 모여 거대한 어깨가 되고, 한없이 조심스러웠던 그곳은 나의 기둥이 되어 시들이 탄생하는 장소가 된다. “비가 올 땐 이렇게 나란히 선 채로/어깨가 젖는 줄도 모르고 걸었지/영화를 볼 때도 서로의 윤곽을 쓸어 담느라/같은 영화를 수십 번 봤지 빛만 닿았지”(「초록」,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자칫 팔꿈치가 닿을까, 귀가 빨개진 것은 아닐까. 젖은 빵으로 눈과 얼굴을 가리고 싶을 만큼 조심스럽던 첫 시집의 시간을 지나, 그는 이곳에 쓰인 시들을 위해 어깨를 내어준 이들에게 나지막이 속삭여본다. “그들의 둥글고 너른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습니다.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입니다.”(「고명재의 편지」)


‘우리’의 ‘우’는 뒤집어보면 호떡 같다
누르기 직전의 부드럽고 몽실몽실한

“반죽과 황설탕 그리고 계피 여기에 압력만 있어도 얼굴은 튀어나온다 엄마 가게 간판 떼고 집을 경매에 넘기고 친구들에게 전학 간다고 손을 흔들었을 때 할머니는 내 손을 말아쥐더니 단호하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걱정 마라, 내가 평생 친구가 돼줄게 네가 클 때까지 절대로 죽지 않을게”(「호떡」). 오래된 호떡집. 늘그막에 연애하는 어르신들이 손을 잡고 설탕물을 흘리는 곳. 반죽 사이로 압착된 설탕이 자클거리며 도망갈 곳도 없이 달게 타고 있는 곳. 시인은 호떡 먹는 할머니를 슬쩍 바라본다. “아무리 봐도 내 친구를 닮은 것인데”. 그래서 시인은 한여름에 호떡을 사게 된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어르신들과 입천장이 벗겨지도록 훌훌 먹었다. 완주란 게 그렇다. 뜨거운 줄도 모르고 눈앞이 끝이니 일단 닿고 보는 것. 시인이 성인이 되자마자 할머니는 쓰러져 오래된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조용히 창가에서 시인의 얼굴을 보더니 “우리는 친구지?” 하고 웃으며 물었다. 손등 위에 손등을 포개주었다. 엄지로 시인의 볼을 닦아주었다 그게 시인의 마지막 인장인 줄도 모르고 그들은 약속했고 지켰고 사랑했다. “‘우리’의 ‘우’는 뒤집어보면 호떡 같다 누르기 직전의 부드럽고 몽실몽실한”. 당신은 딸 대신에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엄마가 보고플 때 당신을 보았다.
“나는 엄마가 부르는 아리아를 들으며 컸는데 갤러리 망하고 웨딩드레스 숍이 망하고 한정식, 대게찜, 감자탕, 분식집 넘어 엄마는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반찬가게를 열 때 엄마는 ‘찬연’이라든가 ‘담채’ 같은 이름을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듣자마자 콧방귀를 뀌더니 만만하게 수미, 하고 못을 박았다 네가 아직 콧대가 덜 부러졌구나! 가게는 문지방이 낮아야 발이 오간다 혜영아 네 안의 수라상과 산진해찬을 엎어라 클래식이고 미대 졸업장이고 몽땅 버려라 혜영아 버리고 버려라 정신 똑바로 차려라 그거 다 깡그리 버려야 애들이 산다”(「수미」). 시인의 엄마는 그렇게 수미가 되었다. 무말랭이를 무치고 죽을 쑤면서 가끔 시인의 낭독회 영상을 본다. 그러다 누가 “수미야” 하고 밖에서 부르면 시인의 엄마는 당신 엄마가 온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곤 문을 활짝 열고 껴안는다. 긴 터널 밖으로 나온 것처럼. “그래도 이거 엄마가 지어준 내 이름이다? 나는 두 번 당신 딸로 거듭 살았어”. 호떡도, 무말랭이도, 수미도, 문진으로 쓰던 당근도. 모두 우리들 가운데 눈부신 결정(結晶)이 있어서 씨름처럼 붙어살던 시절의 이야기다.


너무 좋아할 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요
너무 좋은 시는 끝을 가리고 같이 읽자고
도서관과 시가 받아주지 않으면,
이 난감하게 아름다운 기억을 어떡할까요

첫 책이 나왔을 때 시인을 키워준 스님이 집 앞에 호두나무를 보냈다. “울창한 나무는 웬 말이며 무엇보다도 우리 스님은 세상에 없는데?”(「호두」). 박스 속엔 호두 세 자루와 호두망치가 ‘축하해요 모든 관념을 깨세요!’라는 쪽지와 함께 있었다. 으지직 신나게 호두를 깨면서 홀랑홀랑 새처럼 까먹었는데 알고 보니 호두는 스님의 동생이 유언을 받들어 보낸 것이었다. “우리 아이 첫 책 나오면 호두를 세 자루 그리고 반드시 무거운 망치”. 으스러지는 호두 소리가 좋았다. 시인은 근처 사찰로 힘껏 달려가 아직도 자신을 보고 있냐고 하늘에 물었다. 여름이 오면 스님은 항상 오미자물을 우려 한 사흘은 냉장고에 차게 두곤 했다. “수박은 일단 귀부터 시원해지지 숟가락 끝에서 눈 밟는 소리가 가벼이 들리지”(「화채」). 스님은 시인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아가야, 화채는 원래 꽃 화(花)를 뜻해 그래서 내가 준비했지”. 비닐 속에는 스님이 산천에서 뜯어온 꽃잎이 있었고 그들은 머리를 아주 가까이 맞댄 채 얼음 가득한 오미자물을 잔뜩 삼켰다. 시인의 어금니에 벨벳 같은 게 부드럽게 씹히면서 짓이겨졌다. 그것이 장미를 씹는 순간임을, 그것이 시를 만나는 순간이었음을 시인은 이제 알게 되었다.
“너도 태어났니? 사람이니. 이름이 있니. 그렇다면 언제든 이야기를 가져갈 수 있단다.”(「고명재의 편지」) 그에게는 시가 그런 자리 같다. 누구의 것도 아닌 채로 존재하는 마치 도서관과 같은 것. 시인이 사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 울타리엔 장미가 흐드러지고, 초여름이면 동네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며 수시로 장미에 코를 박곤 한다. 그렇게 시는 언제든 열린 채 향기로운 것. 누구의 것도 아닌 채로 흐드러지는 것. 그러니 시는 역설로만 가능한 개념일지도 모른다. 시는 어린이의 것이자 성인의 것이며 어제 울다 잠든 사람의 것. 시는 가장 특권적인 언어이자 가장 비천한 목소리이고 가장 높고 가장 낮고 가장 쓰면서도 다디단 감로수 같은 것. 시에는 어제와 오늘이 엎드려 있고, 미래와 저녁이 뒤엉켜 있고 파인애플과 피자가 즐겁게 합쳐진다. 그래서 시인은 갠지스강을 보듯 시들을 바라본다. 앞선 선배들의 눈부신 시와 간절한 마음, 그 항하(恒河) 위로 풍덩 뛰어들고 싶기에. “저는 너무너무 궁금했습니다. 저를 키워주고 훌쩍 떠나버린 이들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 내 생각은 하는지, 유과를 씹던 겨울을 나처럼 선명하게 기억하는지. 어떤 우아함을 감히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 제 어금니에 장미가 씹히던 벨벳의 순간을, 호박밭에 작약을 키우던 장면을, 장기 기증을 하고 떠난 나의 엄마를,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휴먼시아를.”(「고명재의 편지」)

작가

고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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