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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없음’이라는 확신이 ‘신은 존재함’이라는 믿음을 끝내 압도하는 순간을 조용하고 젊잖은 방식으로 보여주는 소설. 코맥 매카시의 <선셋 리미티드>는 아주 단순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지하철 선로로 몸을 던지려던 한 남자를 다른 남자가 붙잡아 올리고, 두 사람은 좁은 방 안에서 밤새 이야기를 나눈다. 등장인물은 단 두 명뿐이다. 신앙을 가진 전과자 ‘흑’과 자살을 시도한 대학 교수 ‘백’. 소설은 거의 전부가 이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겉으로 보면 이야기는 분명하다. 흑은 삶을 포기하려는 백을 붙잡아 두려 하고, 백은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믿음과 절망, 신앙과 허무가 서로 맞부딪히는 구조다. 그러나 대화가 이어질수록 묘한 균열이 드러난다. 흑의 말은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삶을 향해 등을 돌린 사람을 다시 붙잡아 세우려는 진심으로 가득하다. 인간은 서로를 버려서는 안 되며 신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지만 결국 방을 떠나는 것은 백이다. 그리고 혼자 남는 것은 흑이다. 이 순간 소설의 의미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흑의 말은 백을 붙잡아 두기에는 충분히 논리적이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지탱하기에는 충분히 단단하지 못했다. 대화 속에서 흑은 신을 믿는 사람으로서 삶의 가치를 끊임없이 주장하지만, 마지막에 남겨진 그의 독백에서는 확신보다는 흔들림이 더 크게 느껴진다. 반대로 백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 그는 삶의 무의미를 확신하는 사람이고, 그 확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코맥 매카시의 다른 작품들을 떠올리면 ‘신은 없다’는 그의 메시지는 더욱 또렷해진다. <로드>의 잿빛 세계, <핏빛 자오선>의 끝없는 폭력. 그의 소설 속 세계는 종종 문명이 무너진 뒤의 풍경처럼 보인다. 인간의 잔혹함과 허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 세계에서 신의 존재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질서를 보증해 줄 초월적인 존재는 침묵하고 있고, 인간은 그 침묵 속에서 서로를 붙잡아 보려 할 뿐이다. <선셋 리미티드>의 단 두 사람이 마주 앉은 방 안에서 벌어지는 일도 어쩌면 그 세계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신을 향한 믿음을 가진 자는 자신의 신념을 확신하는 사람을 끝내 붙잡지 못한다. 그리고 남겨진 그는 묻는다. 자신의 믿음의 한계를 깨닫게 할 사람을 왜 하필 자신에게 보내셨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과연 ‘믿는 자’는 그 믿음 안에서 평안할 수 있을 것인가. _________ 당신이 왜 나를 거기 내려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해를 못하겠어요. 내가 저 사람을 돕기를 원하셨다면 왜 나한테 할말을 주시지 않은 겁니까? 저 사람한테는 할말을 주셔놓고. 나더러 어쩌란 말입니까? 선셋 리미티드 | 코맥 매카시, 정영목 저 #선셋리미티드 #코맥매카시 #문학동네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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