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큰일이 벌어지진 않을 겁니다.
만약 이상 현상이 나타나면 가게로 찾아오십시오”
■ 책 소개
“호랑골동품점은 물건 속의 숨은 기억을
건져내어 낡은 인연을 꿰매는 역할을 한다.
이제 당신을 발칙한 이야기 속으로 초대한다”
―청예(소설가)
한(恨) 깃든 물건을 보관하고 정화하는
귀신 들린 가게, 호랑골동품점의 문이 열리다!
힐링 호러 소설의 눈부신 발걸음, 범유진 신작 장편소설 출간
판타지, 호러, 청소년소설 등 장르를 불문하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선보여온 범유진의 신작 장편소설 《호랑골동품점》이 출간되었다.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 3관왕을 기록하며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서사를 구축해낸 《아홉수 가위》 《카피캣 식당》 등 이후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신작이다. 레트로 텔레비전 탑과 고미술점이 늘어선 골목의 끝, 밤 11시에 문을 열어 새벽 4시까지 운영하는 수상한 가게가 있다. 호랑골동품점은 사회 구조적 문제와 부조리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한이 깃든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이곳을 지키는 호미(虎眉)와 신령한 땅의 기운이 오랜 시간을 들여 골동품에 서린 불온한 힘을 정화한다. 그런데 미처 정화되지 못한 물건들이 인간을 꾀어 탈주하는 바람에 곳곳에서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호랑골동품점》은 지극히 환상적이고 현실적인 ‘힐링 호러 소설’이다. 기이한 호러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되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줄곧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핀다. “놀랍도록 기막히고 음흉한 술래잡기” 같은 서사를 좇아가다 보면 마지막 책장을 넘길 즈음 “분노와 그리움, 때로는 애수”마저 느낄 수 있다(청예 소설가). 가정폭력, 노동인권, 여성혐오, 외모지상주의, 계급 문제 등 세상의 어두운 면을 가감 없이 비추면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을 놓지 않는 《호랑골동품점》이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과 쾌감으로 전해질 것이다.
골동품 중 판매 금지 품목은 이 성냥처럼 사연이 깃든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자신과 비슷한 한이 응축된 사람을 끌어들여 가게를 벗어나려 하지요. 그렇게 멋대로 돌아다니면서 계속 사고를 일으킵니다. 그것도 한을 해소하는 방법이 됩니다만…… 그래서야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게 되니 가게 안에서 한을 정화하는 겁니다.
“호랑골동품점에 잠들어 있다가 밤이 되면
깨어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생에 대한 울분과 미련이 뒤섞인 저주 받은 물건들
〈19세기, 영국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성냥〉에서 김규리는 콜센터 노동자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순번을 정해놓고 화장실에 다녀와야 할 정도로 고된 업무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김규리는 호랑골동품점 앞을 지나다가 홀린 듯이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오래된 성냥갑을 집어 들었을 때 “나를 가져. 나를 가져가” 하는 목소리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도둑질을 하고 만다. 그 후 김규리는 무명천으로 턱을 감싼 여자 귀신들을 매일 같이 마주치며 시달린다.
〈19세기, 그림자인형 와양쿨릿〉은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배달 노동을 하는 김택구의 이야기다. 시샘 많고 폭력적인 그는 아내를 잃은 뒤 애먼 아이를 납치해 아내 대신 돌봄 노동을 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러던 중 호랑골동품점에서 충동적으로 목각 인형을 가져온다. 그날부터 김택구의 귓가에는 숫자를 세는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1977년, 체신1호 벽괘형 공중전화기〉는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면 결국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지운은 숲속 게스트하우스에서 은둔 중인 연극배우로 남모르게 자살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게스트하우스에 버려지다시피 놓인, 오래된 공중전화기가 갑자기 울린다. 수화기를 든 정지운은 세상을 떠나고 없는 단짝 친구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덕분에 삶에 대한 의욕을 서서히 회복하게 된다.
〈1950년대, 럭키 래빗스 풋〉에서 심길용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친구들의 협박에 울며 겨자 먹기로 영상 일을 돕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심령 스폿 촬영을 하러 호랑골동품점에 간 친구들이 슬쩍 챙겨 온 토끼발 중 하나를 건네받는다. 그날 이후 친구들은 말도 안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는데 심길용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17세기, 짚인형 제웅〉에서 채주연은 바람을 피운 남편과 이혼한 후 스트레스성 폭식에 괴로워한다. 살이 찌자 회사 동료들의 외모 평가에 시달리면서 스트레스는 나날이 심화된다. 그러던 중 친구와 우연히 호랑골동품점에 방문하고, 수상해 보이는 짚인형을 구매한다. 며칠 후 짚인형은 놓아둔 자리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움직이는 듯 보이는데…….
〈연도 불명, 콩주머니〉는 부모 없이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소하연의 이야기다.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가 끝내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살한 탓에 소하연은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귀신이 나타나 소하연마저 죽이겠다고 달려들자, 호미는 이를 막기 위해 소하연에게 알록달록한 수가 놓인 콩주머니를 건넨다. 신묘한 힘을 지닌 콩주머니는 과연 어떠한 힘으로 소하연을 지켜줄 수 있을까.
“단 한 사람이라도 사랑을 주면,
그것만으로 세상이 참 아름답더라”
흥미진진한 전개와 깊은 여운이 담긴 지금 우리를 위한 이야기
《호랑골동품점》 속 인물은 악인도 있지만 대부분이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다만 그들은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잘못을 저지르거나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사건에 휩쓸린다. 그때 골동품들은 기괴한 힘을 발휘하여 이들을 무섭게 벌하거나 뜻밖의 도움을 준다. “이 글은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호랑골동품점》을 읽는 동안 여러분이 조금 덜 외로웠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호랑골동품점》은 으스스한 기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위로와 연대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장에서 오랫동안 외로이 지내던 호미가 다음 세대의 호미가 될 아이를 기꺼이 맞아들이는 장면이나 그간 불화하던 이웃들과 오해를 풀고 정담을 나누는 모습은 따스한 감동을 준다. 아직 쓰이지 않은 호랑골동품점의 미래를 독자들이 상상하도록 이끌며 생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준다.
“손님이 산 물건은 손님의 것입니다. 애프터서비스로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상담에 응해드릴 테니 그때 찾아오십시오.” 채주연은 원을 주머니에 넣고 호랑점을 나왔다. 어두운 골목에 드리워진 호랑점의 희미하고도 긴 불빛이 포근했다. 채주연은 그 빛을 따라 걸었다.
■ 추천사
기억이 사람을 완성하니 《호랑골동품점》은 결국 우리를 완성하는 이야기다. 살다 보면 외면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 혹은 내 뜻대로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 생긴다. 어떤 과거는 탈각되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인연만큼은 소멸하지 않는다. 호랑골동품점은 물건 속의 숨은 기억을 건져내어 낡은 인연을 꿰매는 역할을 한다.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현재는 인연이라는 모자이크로 이뤄진 보자기이며, 섬찟한 바느질에는 분노와 그리움, 때로는 애수가 깃든다. 이유요와 동이 당신에게 놀랍도록 기막히고 음흉한 술래잡기를 제안하니, 그들을 쫓다 보면 어느새 당신에게도 흰 눈썹이 한 가닥 돋아날지도. 이제 당신을 발칙한 이야기 속으로 초대한다. 비극일지라도 말이다. _청예(소설가)
■ 작가의 말
특별한 사연이 없더라도 매일 사용하는 물건에는 그 사람의 일상이 스며든다고 생각합니다. 대단찮은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물건이 되는 것이 오히려 대단하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골동품점 안의 물건들을 살피다 보면 타인의 일기장을 엿보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오래된 것에 끌리면 기이한 것 역시 사랑하게 되는 법인지라 기담 형식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이 글은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호랑골동품점》을 읽는 동안 여러분이 조금 덜 외로웠으면 좋겠습니다.
■ 본문에서
새하얀 눈썹이 돋아난 청년은 방방곡곡을 돌며 이형의 것들이 일으키는 문제를 해결했다. 사람들은 그를 ‘호미(虎眉)’라고 불렀다. 호미는 땅의 목소리를 들어 기운 좋은 곳에 터를 잡아 집을 지었다. 바깥에서는 온갖 말썽을 부리던 이형의 것들이 호미의 집에만 오면 잠잠해졌다.
김규리와 눈이 마주치자 여자는 히죽 웃었다. 턱을 감싼 천이 느슨해지며 듬성듬성 이가 빠진 입안이 깊은 동굴처럼 열렸다. 아래턱이 반쯤 녹아 입안에 가득 찬 녹색의 액체가 천을 적셨다. 뚝.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김규리의 무릎 위로 떨어졌다.
낭랑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골목 안에 종처럼 울려 퍼졌다. 동시에 나무토막 세 개가 용광로 속에서 녹아내리는 유리처럼 서로 엉겨 붙더니, 사라진 못난이인형이 되었다. 눈앞에 나타난 인형의 웃는지 우는지 모를 얼굴을 마주한 김택구의 목울대가 크게 꿀렁거렸다. 김택구가 비명을 지른 것보다 인형의 머리가 열린 것이 먼저였다.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수백 마리의 메뚜기가 김택구에게 달려들었다.
여하튼 아버지, 이거 때문에 어머니한테 잔소리 엄청나게 들었어. 왜 이렇게 흉한 걸 사 오느냐고. 어쩔 수 없이 집 안에 못 두고 창고에 뒀거든? 그런데 밤마다 벨이 울리는 거야. 전화선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데.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잠든 심길용은 보지 못했다. 현관문 아래 틈으로 스멀스멀 기어드는 검은 그림자, 그리고 그 그림자를 노려보며 발로 바닥을 치는 롭의 모습을. 롭이 사납게 코끝을 찡긋거리자 그림자는 슬금슬금 뒷걸음질하듯 사라졌다.
가장 믿던 상대에게 버림받고도 애정을 갈구하는 것이 어찌 흉할까. 흉한 것은 그 믿음을 저버린 쪽이 아닌가.
소하연은 입을 틀어막은 채 소리 없이 엄마를 불렀다. 그날 할머니 집에 가지 말걸, 집에 있을걸, 그럼 엄마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계속 맺혀 있던 후회가 눈물과 함께 터져 나왔다.
언젠가 너에게도 흰 눈썹이 돋아날까. 어쩌면 똑같은 의문을 품게 될까. 혼자가 될 것을 두려워하게 될까. 이유요는 소하연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