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간 법조인으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추리소설을 집필해 온 도진기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4의 재판』이 황금가지에서 출간됐다. 『4의 재판』은 보험을 노린 계획 살인으로 추정되는 한 사건을 중심으로, 법에 문외한인 평범한 소시민이 오로지 살인자에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하려는 의지로 동분서주하며 극적인 드라마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린 법정소설이다. 이미 대중에 잘 알려진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사망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한 이번 작품은, 단순히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를 넘어, '법망'이라는 체계가 어떻게 실체적 정의와 괴리될 수 있는지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치는 동시에, 20년 법조 경력의 작가가 설계한 치밀한 법정 공방에서부터 판세를 단숨에 뒤집는 충격적인 반전까지 장르적 재미 또한 충실하게 담아낸다.
"살인과 보험금. 막무가내의 탐욕 앞에서 '단순한 모욕을 넘어 인간이라는 근원을 부정'당하는 감각을 감지할 때, 우리는 무엇에 기댈 수 있을까. 도진기 작가의 『4의 재판』은 탐욕의 죄를 심판하는 법원의 풍경과 이를 둘러싼 논리 싸움을 공들여 묘사하고, 법조계에 몸담아온 작가만이 전달할 수 있는 섬세한 디테일과 더불어, 일반 정서대로 이뤄지지 않는 법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종사자와 의뢰인이 경험하는 무기력과 분노를 생생하게 담는다." -김용언(《미스테리아》 편집장)
대중에겐 범인이 명백해 보이는 사건, 그러나 법의 시선은 달랐다?
본 작품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사건'은, 2014년 교통사고로 인해 조수석에 타고 있던 만삭의 캄보디아인 아내가 사망한 사건이다. 운전하던 남편이 95억에 이르는 보험금을 타기 위해 의도적으로 교통사고를 냈다는 대중의 의심과 달리 법원은 무죄를 선고하고, 이어진 보험금 수령 재판에서도 남편은 보험금 95억을 수령했다. 도진기 작가는 재판 결과의 옳고그름을 판단하는 대신, 작가가 새롭게 창작한 사건과 보험금을 노린 명백한 악인을 등장시켜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말라’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이 오히려 99%의 심증이 있어도 1%의 입증 부족으로 면죄부를 주게 되는 기계적인 판결, 그리고 형사 재판에서 대법원까지 결정난 판결이 보험금 소송인 민사 재판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사법 시스템의 모순 등 법의 작은 허점이 범죄의 완성을 돕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4의 재판』을 통해 경고한다.
"제가 몸담은 법조의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판결이 정의감에 반한다 하더라도 섣불리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정의 말고도 법치, 질서, 속사정 같은 가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판결을 두고는 이렇게 되어도 정말 괜찮은 걸까……. 의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말하고, 독자와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쓰게 됐습니다." -작가의 말 중
"사람들의 큰 착각. 왜 법이 정의를 찾아줄 거라고 기대하는가. 법은 정의를 위해 있지 않다. 이 사회의 유지에 더 관심이 많다. 주먹이 아니라 신호등에 가깝다고나 할까. 법은 위기에 빠진 선량한 시민을 위해 정의의 주먹을 휘두르는 일보다는 돈과 사람, 거래라는 교통이 잘 오가도록 교통정리를 하는 일에 더 관심이 있다." -본문 중
완벽한 법리 뒤에 숨은 살인자를 향한 우아하고 치명적인 복수극
『4의 재판』은 법의 한계를 지적하는 묵직한 주제 의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는 웰메이드 복수극으로서의 미덕 또한 놓치지 않는다. 주인공 선재는 전직 사격 국가대표 출신으로 법에는 문외한이다. 단지 약혼자의 죽음과 얽힌 사건에서 명백한 살인범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에게 자신의 심증에 맞는 판결이 내리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법정의 판사가 모두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진 않다. 범인이 완벽한 법리 뒤에 숨은 채, 피해자를 조롱하고 공격해 오는 상황에서, 선재는 무기력한 피해자에서 냉철한 추적자로 변모하며, 살인자가 악용한 법의 논리를 역으로 비틀어 치명적인 덫을 놓는다. 20년 법조 경력의 작가가 설계한 정교한 수 싸움과 예측을 불허하는 전개, 마지막 순간까지 결말을 알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 등 미스터리 장르 본연의 몰입감을 충실히 담았다.
"소림사는 불공이 2순위이고 무술이 1순위라고 합니다. 그렇듯이, 제게도 어디까지나 주제는 2순위이고, 재미가 1순위입니다." -작가의 말 중
줄거리
지훈은 친구 양길과 떠난 필리핀 여행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고, 시신마저 현지에서 급히 화장되어 진실은 잿더미 속에 묻힌다. 검사는 양길이 지훈 앞으로 된 19억 원 사망보험금의 유일한 수익자라는 점을 들어 계획 살인 혐의로 기소하지만, 직접 증거가 없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하루아침에 약혼자를 잃은 선재는 정의로운 심판을 기대하며 매일 법정을 지키지만, 재판이 거듭될수록 법은 피해자의 편이 아님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완벽한 법리 뒤에 숨어 미소 짓는 피고인과 무기력한 사법 시스템 앞에서, 선재는 점차 깊은 절망과 함께 감당하기 힘든 분노를 마주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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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과 보험금. 막무가내의 탐욕 앞에서 “단순한 모욕을 넘어 인간이라는 근원을 부정”당하는 감각을 감지할 때, 우리는 무엇에 기댈 수 있을까. 도진기 작가의 『4의 재판』은 탐욕의 죄를 심판하는 법원의 풍경과 이를 둘러싼 논리 싸움을 공들여 묘사하고, 법조계에 몸담아온 작가만이 전달할 수 있는 섬세한 디테일과 더불어, 일반 정서대로 이뤄지지 않는 법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종사자와 의뢰인이 경험하는 무기력과 분노를 생생하게 담는다.
“합리적 의심이 조금도 없을 수준까지, 일말의 의혹도 없는 확신에 도달할 만큼의 증거”를 요구하는 게 한국의 법 현실이다. “개성이 있고, 세계관이 있고, 저마다의 확증편향”이 있는 판사들의 판단에 따라 “다른 절차, 다른 재판, 다른 결론”이 도출되는 것도 법 현실이다. 법이 “정의의 실현보다는 사회의 유지, 즉 질서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도 법 현실이다. 하지만 여러 착오와 개정을 거쳐 만들어진 법은 확고부동하지만은 않다. 사건별로 다른 해석을 적용하면서 조금씩, 아주 느리게 변한다. 법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며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소설 속 대사처럼, 결국 우리가 법이 움직이게끔 계속해서 들이박고 요구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4의 재판』 속 악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미세한 맹점을 파고들며 법을 마음대로 휘두를 때, 법은 피해자를, 의뢰인을 독사처럼 깨문다. 악인의 폭력만큼이나 법의 무심함이 맹독처럼 피해자를 무너뜨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악과 맞서기 위해 법이라는 형식과 제도를 연구한 이가 법의 틀 안에서 반격을 준비할 때, 법은 서서히 또다른 뱀처럼 머리를 세우기 시작한다. 밟히면, 꿈틀.
-김용언(《미스테리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