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한 풍자와 사회비평 작품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 에드워드 프레더릭 벤슨. 오늘날엔 잊힌 감이 있지만 그는 호러 작가로서도 인상적인 자취를 남겼다. 벤슨의 단편 「버스 차장」에서 겁도 많고 예민한 나는 이상하게 유령에게 끌려서 흉가 체험을 즐긴다. 반면에 이런 유령 찾기에 곧잘 동행하는 친구 휴 그레인저는 이성적인데다 유령 따위에는 심드렁하니 요지경이다. 그런데 휴가 뜻밖에 초자연적인 경험을 털어놓는다. 물리적인 현실 세계와 영적인 세계의 중간 지대를 경험했다는 얘기. 이 두 개의 세계처럼 20세기 초 런던 거리엔 장의마차의 마부와 버스 차장이 공존한다. <책 속에서> 내 친구 휴 그레인저와 나는 이틀간 특별히 무섭고 잔인한 유령들이 출몰한다는 어느 음침한 저택을 방문하고 방금 돌아왔다. 유령과 관련된 장소가 대개 그렇듯이, 제임스 1세풍의 그 저택은 참나무 판벽과 길고 음침한 복도, 그리고 방마다 높다랗고 둥근 천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저택은 어둠 속에서 소곤대는 거무스름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외딴집인 데다 항상 거센 빗줄기를 동반한 강한 남서풍이 불어오는 통에 밤낮 굴뚝에서 기이한 목소리들이 신음하거나 꺼림칙한 영혼들이 나무 사이에서 대화를 주고받는가 하면, 느닷없이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처럼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절로 일어날 만한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당시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당시 내 정신 상태는 우리가 찾고자 한 광경과 소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거나 혹은 꾸며낼 정도로 매우 예민해져 있었다고 덧붙여야겠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그 집에 있는 동안, 나는 줄곧 비참한 불안 상태에서 이틀 밤 내내 겁에 질려 잠을 이루지 못했고, 어둠을 무서워하면서도 환히 밝혀진 촛불이 비출지 모르는 것들을 더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마을로 돌아온 날 저녁, 휴 그레인저와 나는 저녁 식사를 함께 했는데,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 흥미진진한 화제로 옮겨갔다.
에드워드 프레더릭 벤슨 (Edward Frederic Benson, 1867 - 1940)은 영국의 소설가이자, 전기 작가, 수필가, 지질학자이다.
그의 첫 소설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인기를 얻은 '도도 Dodo' (1893)이었는데, 그 작품은 풍자와 멜로드라마적 논센스 등으로 점철된 상당히 현대적인 스타일의 소설이었다. 이후 그는 첫 작품의 성공을 계승한 '도도: 두 번째 이야기' (1914), '도도: 방랑자' (1921) 등을 발표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평판을 이어갔다. 특히 그의 작품 중 영국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풍자적으로 다룬 연작 성격의 '마프와 루시아 Mapp And Lucia' 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시리즈는 6개의 장편 소설과 2개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벤슨의 당대에도 라디오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영국 TV 시리즈로 다시 제작, 방영되었다.
또한 풍자적이거나 익살스러운 요소가 가미된 유령 소설로도 유명하다. 그는 운동에도 능해서 피겨 스케이팅 영국 대표로 세계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