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베개」는 우루과이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로 알려진 오라시오 키로가의 대표 단편이다. 발표 이래 무수한 앤솔로지에 실리고 있는 호러의 걸작. 1917년 아르헨타나의 유수 잡지 《까라시 까라테스 Caras y Caretas》에 발표된 직후 키로가에게 즉각적인 명성과 성공을 안겨준 작품이라고 한다. 앨리시어는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는 젊은 여성이다. 다만 애정 표현을 하지 않고 다소 냉담한 편인 남편이 살짝 아쉽다고 할까. 그런데 행복한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사는 집 또한 남편을 닮은 침묵과 냉기로 그녀를 거북하게 만든다. 그리고 별스럽지 않은 감기에 걸렸나 싶었는데 나날이 야위어가는 그녀. 의사들도 손을 쓸 수 없는 불가사의한 병세는 점점 더 깊어지는데…… 시시각각 그녀의 생명력을 빼앗는 뭔가가 있다. <책 속에서> 앨리시어는 신혼여행 내내 뜨겁고도 차가운 전율을 느꼈다. 아이처럼 공상에 잠기곤 하던 금발의 소심하고 천사 같은 이 아가씨는 신부가 되어, 남편의 무덤덤한 성격에 오싹해지고 말았다. 밤에 남편과 함께 거리를 지나 집에 돌아왔을 때, 한 시간 동안 말이 없던 거구의 조던을 훔쳐보며 가볍게 진저리를 칠 때가 많았음에도, 그녀는 그를 무척 사랑했다. 남편도 나름대로 그녀를 깊이 사랑했으나, 결코 표현하는 법은 없었다. 4월에 결혼하고 석 달 동안 그들은 더없는 행복 속에서 지냈다. 그녀는 사랑의 천국에서 엄격함은 덜하되 솔직함은 더하고 신중함은 덜한 애정을 원했다. 그러나 남편의 냉담한 태도는 언제나 그녀를 짓눌렀다. 그들의 집은 그녀가 느낀 오싹함과 전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조용한 스페인풍의 소벽과 기둥, 대리석 조각상을 보고 있으면 마법의 궁전에 찾아온 겨울날이 떠올랐다. 얼음처럼 빛나는 휑한 흙벽으로 둘러싸인 내부 공간에서 불쾌한 냉기는 더 확연해졌다. 방을 거닐 때마다 남편의 발소리는 집 안 전체에 메아리쳤고,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 자체가 소리에 민감한 것 같았다.
1878년 12월 31일 우루과이 살토에서 태어났다. 1896년 친구들과 ‘삼총사 모임’을 결성해 프랑스 퇴폐주의 시 등을 읽고 직접 시와 산문을 썼다. 그 무렵 모데르니스모의 미학과 레오폴도 루고네스의 시세계에 경도되었으며, 이듬해부터 『사회지』 『개혁』 등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1899년에는 『살토지』를 창간해 첫 단편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와 문학 및 사회 비평을 발표한다. 그다음해, 당시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에게 정치적·문화적 이상향이었던 파리로 떠나지만 두 달여 만에 실망과 환멸만 안고 돌아온다. 1901년 그동안 쓴 시와 산문을 엮어 『산호초』를 출간했다. 1903년 산이그나시오 예수회 유적 조사단에 사진사로 참가해 아열대 밀림 지역인 미시오네스주를 처음 방문한 뒤, 그 지역에 매료되어 차코 지방에 거처를 마련하고 목화를 재배하며 이 년을 보낸다. 그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 교사 일을 하며 다수의 단편을 썼고, 중남미 환상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작품이라 평가받는 「깃털 베개」와 「목 잘린 닭」 등을 통해 널리 이름을 알린다. 1908년 모데르니스모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자기만의 소설세계를 구축해나가며 「쫓기는 자들」을 발표했다. 1910년 산이그나시오로 이주해, 밀림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단편집 『밀림 이야기』 『야만인』 등을 출간했다. 1937년 위암 진단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17년 출간된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는 라틴아메리카 단편소설의 새 장을 연 키로가의 대표작으로, ‘사랑’ ‘광기’ ‘죽음’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통해 삶의 불분명한 표면 아래 숨어 있는 진실, 재현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 보인다.